(사진설명: 장형의 좌상)
제4회 벼슬에서 물러나다
내 님은 태산에 계시는데(我所思兮在太山)
님을 따르고 싶지만 양부산이 험하네(欲往從之梁父難)
몸을 기울여 동쪽을 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側身東望涕霑翰)
님은 내게 금착도 주셨도다(美人贈我金錯刀)
무엇으로 보답할까 빛나는 옥이로다(何以報之英琼瑤)
길이 멀어 가지 못하고 배회만 하는구나(路遠莫致倚逍遙)
어이하여 근심 품고 애만 태우는가(何爲懷憂心煩勞)
…
장형은 하간(河間)왕의 상국(相國) 저택을 홀로 거닐다가 우수에 잠겨 붓을 날려 이 <사수시>를 지었다. 그리고 높은 소리로 시를 읊었다. “내님은 계림에 계시는데(我所思兮在桂林) 님을 따르고 싶지만 상강 물이 깊네(欲往從之湘水深). 몸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눈물에 옷깃이 젖네 (側身南望漏沾襟)…”
장형이 자택의 서재에서 시를 읊으며 마음 속의 응어리를 털어내는데 서동(書童)이 급하게 뛰어 들어와 아뢰었다.
“나리, 주흥(周興)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장형은 급히 서재를 나가 과거의 동료이자 절친인 주흥을 맞이하러 갔다.
주흥은 자리에 앉자 물었다.
“장대인, 여기서 상국(相國)을 하니 좋으시오?”
장형이 쓴 웃음을 지었다.
“뭐가 좋겠소? 나의 사람됨을 아직도 모르시오? 우리가 조정에서 하는 일은 사람을 적게 만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역법을 위해 우리 모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밉보였소? 결국 우리의 의견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말이오. 잊으셨소?”
“어찌 잊겠소? 그 일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크게 다쳤는데. 우리의 의견은 정확했소. 역법의 정확성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 천문을 관측하고 숫자를 계산했는데. 우리가 주장하는 <구도법(九道法)>은 가장 선진적인 역법이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한방에 부결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소. 그 사람들은 수백 년 전 한무제(漢武帝) 때의 <태초력(太初歷)>을 계속 사용하려 하다니. 또 그 때의 역법을 사용하면 그 때처럼 강토를 넓히고 인재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여기다니. 어디 그 뿐이오. 그 때의 황제처럼 자손이 많아 국운(國運)이 길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오. 그 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벼슬을 그만 둘까도 생각했었소.”
장형의 기색이 어두운 것을 본 주흥이 관심조로 물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소? 이상하네. 애초에 폐하께서 자네를 시중(侍中)으로 부르지 않으셨소? 자네를 슬기 주머니로 쓰려고 말이오. 그런데 왜 갑자기 자네를 여기 하간왕의 상국으로 보내신거요?”
장형이 탄식했다.
“나는 조정에서 두 번에 걸쳐 14년이나 태사령을 맡았소. 그 일은 참으로 나에게 적격이었소. 별자리를 관측하고 천문을 연구하고 사서를 읽고 문헌을 정리하고 여가시간에는 또 문자훈고(文字訓詁)도 연구하고 사부(辭賦)도 창작했소. 하지만 조정은 외척에게 장악되고 환관들이 정권을 잡아 나라가 점점 더 어두워져서 나 같은 사람은 정말로 계속 벼슬을 할 방도가 없었소. 아마 자네도 모를 거요. 그 때 경학(經學)을 연구하는 유자(儒者)들이 광무제(光武帝) 후의 황제들이 모두 도위잠언(圖緯箴言)을 믿는 다는 것을 알고 앞다투어 도위를 배워서는 요언으로 천자를 미혹시켰소. 그래서 나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도위의 허위성과 황당함을 반박하고 사람을 속이는 그런 허튼 소리는 절대로 성인의 이치가 아니니 그런 것을 믿지 마시라고 폐하께 고하는 소(疏)를 올렸지. 결국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밉보였소.”
주흥이 물었다.
“그 일 때문에 폐하께 밉보인건가?”
“아니. 폐하께서는 오히려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믿으셨소. 그런데 폐하께서 나를 시중으로 승진시키셔서 나는 늘 가까이에서 폐하를 모셔야 되고 폐하께서 뭘 물으시면 사실대로 말하는 바람에 많은 환관들에게 밉보이게 되었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더군. 그 환관들은 폐하께서 무슨 일만 있으면 나에게 묻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소. 그러던 어느 날 폐하께서 이 세상 백성들이 누구를 가장 미워하냐고 물으셨소. 그러자 환관들은 모두 독기 어린 눈길로 나를 지켜보았소. 내가 그들에게 불리한 말을 할까봐 말이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매일 천문과 지리를 연구하느라 백성들의 생각을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폐하께 아뢸 수밖에 없었지. 내가 이렇게 했음에도 환관들은 나를 미워했소. 그것은 그들이 정직한 성품의 내가 언젠가는 그들의 악행을 폐하께 아뢸 것이라 짐작한 것이오. 그들은 폐하께 장형이라는 사람은 천문도 알고 지리에도 익숙하지만 벼슬은 할 줄 모르니 이런 사람을 신변에 두면 언젠가는 그로 인해 민심을 잃게 될 것이라고 아뢰었소.”
주흥이 한 숨을 쉬었다.
“아, 환관이 권력을 장악하니 참으로 무섭구려. 그들이 자네를 비방한걸 자네는 어떻게 알았소?”
“폐하께서 알려 주셨소. 그래서 나는 <응한(應閑)>을 써서 그들에게 답했지.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천문과 지리 연구에 에너지를 쓰지 말고 아부하고 좋은 말만 하는 것을 배워 복을 받으라고 나에게 권고했지만 나는 군자는 지위가 존귀하지 않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품행이 고상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하며, 관직이 낮고 봉록이 적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재능이 없고 학문이 옅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소. 벼슬을 하기 위해 인격을 버리고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탐욕에 빠진 자의 소행이라고, 나는 그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이오.”
장형의 말에 주흥이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오!”
장형이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군자가 어찌 소인배와 싸워 이길 수 있겠소? 내가 권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환관들을 경계하라고 폐하께 권고했지만 폐하께서는 오히려 제후로 책봉된 환관들이 양자를 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려 그 양자가 작위를 이어 받아 환관이 귀족이 되게 하셨소. 그 후에 폐하께서는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나를 이 곳으로 보내셨소.”
“하간왕은 교만하고 음란하며 횡포한 자들과 결탁해 백성들을 못살게 군다고 들었소.”
주흥의 말에 장형이 대답했다.
“여기 상황은 자네도 잘 아니 그 환관들이 모를 리가 있겠소? 그 사람들이 폐하를 꼬드겨 나를 이 곳으로 보낸 의도는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나도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소. 벼슬을 한다는 것은 공을 세워야 함을 말하는데 나는 개인의 안위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소. 그래서 여기 오자부터 법에 따라 관리하고 암암리에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조사한 후 그들을 전부 투옥시켰소. 그 바람에 악인들이 놀라서 두려움에 떨며 말을 잘 듣고 있소.”
주흥이 장형의 말을 받았다.
“자네 하간왕에게도 밉보였군.”
장형이 웃었다.
“제후왕은 실권이 없고 상국은 중앙의 명령을 직접 따르게 되어 있소. 그러니 그가 나를 미워한들 어찌할 방법이 있겠소? 나는 여기서 벌써 3년이나 상국으로 있으면서 평가도 괜찮고 또 아직도 살아 있소. 하하하…”
주흥이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말했다.
“자네 정말 대단하네!”
벗을 배웅한 장형은 갑자기 더는 여기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서재로 돌아온 그는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내용의 소를 썼다.
사실 장형은 벌써부터 벼슬을 그만 둘 생각이 있었다. 그가 낙양(洛陽)을 떠나기 전에 쓴 <귀전부(歸田賦)>에 나오는 “하늘의 이치는 미묘하여 예측하기 어려우니(諒天道之微昧) 어부를 따라 산천에서 노닐지어다(追漁父以同嬉). 혼탁한 이 세상을 멀리 떠나(超埃尘以遐逝) 세간의 번잡함과 영원히 이별하리라(與世事乎長辭)”는 구절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소망과 어두운 조정에 대한 혐오를 잘 보여준다.
아마 장형은 그 때 그의 이 <귀전부>가 참신함과 우아함, 짧지만 째인 글,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 등으로 서정소부(抒情小賦)의 처녀작이 되어 한나라 부(賦)가 대부(大賦)로부터 소부로 전환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장형의 이 <귀전부>는 후세에 한나라 서정소부의 최고수준을 보여준다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상하게 황제는 장형의 귀향을 허락하지 않고 그를 상국보다 더 낮은 상서(尙書)에 임명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장형도 황제의 임명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형은 갑작스러운 병사(病死)의 방식으로 황제에게 가장 강력하게 항의했다.
장형은 그야말로 재능과 덕성에서 모두 빠진 데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번역/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