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5 08:40:28 출처:cri
편집:李仙玉

[조조 편-2] 북부지역 통일과 觀倉海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조조)

제2회 북부지역 통일 그리고 觀倉海

동으로 갈석산에 올라(東臨碣石)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以觀滄海)

바다는 푸르고(水何澹澹)

섬은 높이 솟았구나(山島竦峙)

울창한 나무들과(樹木生)

무성한 풀들(百草豊茂)

소슬한 가을 바람과(秋風蕭瑟)

넘실대는 큰 파도(洪波湧起)

해와 달의 운행이(日月之行)

그 중에서 나오는 듯(若出其中)

은하수 빛나는 별들도(星漢燦爛)

그 속에서 나오는 듯 하구나(若出其里)

정말로 다행이로다(幸甚至哉)

이 시로 내 품은 뜻을 노래하노라(歌以詠志)

조조가 높은 갈석산에 올라 쏴하고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마주하니 조금 한기가 느껴졌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바다는 넓고 푸르렀다. 밀려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우레 같은 소리를 내고 눈꽃 같은 하얀 물보라를 만들었다. 마음의 전율을 느끼고 시상(詩想)이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든 조조는 천고에 길이 전해지는 이 미묘한 시 <관창해(觀滄海)>를 즉흥적으로 읊었다.

조조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창망하고 작은 섬은 보일 듯 말 듯 했으며 초목은 은은했다. 해와 달이 바다에서 떠오르고 은하가 바다에 빛을 뿌리는 것은 모두 그의 아름다운 상상이었다. 그렇다. 이 바다의 경치가 낮에도 이토록 미묘하고 현란한데 밤이 되어 밝은 달이 떠오르면 별무리가 떠 있는 밤하늘과 바다가 어울려 얼마나 몽롱하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드넓은 바다가 조조의 아름답고 기이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그는 천하를 정복하고자 하는 호기스러운 기상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건안(建安) 7년(202년), 원소가 죽고 그의 두 아들인 원담(袁譚)과 원상(袁尙)이 내분을 일으켰다. 변덕이 심한 두 사람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다시 반란하기를 거듭했다. 후에 조조가 원담을 멸하자 원상은 유주(幽州)로 도주해서 당시 유주 자사(刺史)로 있던 둘째 형 원희(袁熙)를 찾아갔으며 두 사람이 함께 북쪽 삼군오환(三郡烏桓)을 찾아갔다. 한(漢)나라 후반에 요동(遼東)과 요서(遼西), 우북평(右北平) 세 개 군의 유목민족과 오환족들이 연합하여 형성한 지역을 삼군오환이라 한다. 원씨와 친분이 있었던 삼군오환의 두령인 답돈(蹋頓)은 여러 차례 한나라 국경을 범하고 한나라 백성을 잡아 갔으며 재물을 약탈했다. 조조는 원씨의 잔여세력의 뿌리를 뽑고 오환이 국경을 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오환 원정에 나섰다.

유목민족의 기병은 언제나 흉악하고 용맹했으나 대신 포진술과 용병술에는 약했다. 조조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오솔길로 오환의 본거지 유성(柳城)에 이르렀다. 조조가 높은 곳에 올라 진영을 내려다 보니 오환은 많은 기병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진영이 어수선하고 아무런 진법도 없었다. 조조는 대장(大將) 장료(張遼)을 선봉으로 하고 공격을 개시했으며 적진에 소동이 일어나자 맹렬한 공격을 들이댔다. 결과 오환의 기병이 혼잡을 빚어 서로 짓밟으며 무너졌다. 답돈은 당장에서 목이 날아가고 항복한 병사는 20만명이 넘었다.

원씨 형제는 이번에는 평주(平州)로 도주해서 그 지역의 할거세력인 공손강(公孫康)을 찾아갔다.

장료가 조조에게 물었다.

“계속 추격할까요?”

조조가 대답했다.

“우리가 손 쓸 필요 없소. 공손강이 원씨 형제의 목을 베어 나에게 가져올 것이오.”

그리고 나서 조조는 군사를 거느리고 개선 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조조는 갈석산에 올라 본 회 서두에 나온 시를 썼다. 조조는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는데 ‘염(艶)’이라는 서곡에 이어 본문은 <관창해>와 <동십월(冬十月)>, <사불동(士不同)>, <구수수(龜雖壽)> 등 네 개 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 <구수수>에 나오는 “늙은 천리마는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老驥伏櫪) 뜻은 천리 밖을 달리고(志在千里) 열사는 말년이 되어도(烈士暮年) 원대한 뜻을 품는다(壯心不已)”는 구절은 비장한 분위기로 끝까지 분투하려는 조조의 큰 뜻을 보여주며 사언시(四言詩) 중 천고의 절창이 되었다.

조조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고악부(古樂府)를 빌어 시사(時事)를 쓴 위대한 시인이다. 그가 바삐 돌아가는 전쟁의 현장에서 쓴 이런 신악부시(新樂府詩)는 과거에는 없었으며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있었다. 당(唐)나라 때에 와서 위대한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신악부시의 선양을 자신의 소임으로 했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공손강이 원씨가문의 두 형제를 죽이고 그 수급을 조조에게 바쳤다.

장료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대장군은 참으로 신인이십니다. 공손강이 이렇게 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조조가 웃었다.

“과거에 원씨 가문의 세력이 클 때 공손강은 그들을 두려워했소. 그 때 우리가 만약 원씨 형제를 뒤쫓아 가서 죽이려 한다면 공손강은 우리가 자신도 죽일 것을 우려해 원씨 형제와 손 잡고 우리에게 저항했을 것이오. 그런데 우리가 원씨 형제 제거에 급해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공손강은 오히려 원씨 형제가 자신의 구역을 차지할 까봐 걱정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들 사이에는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공손강이 원씨 형제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요.”

조조의 군대가 개선할 때 날씨가 춥고 기후가 건조해 2백리(里, 1리=0.5km)를 가도 수원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허기지고 갈증이 난 군사들은 수천 필의 군마를 사살해 먹거리를 해결하고 땅을 30여 장(丈, 1장=10자) 깊이로 파서야 맑은 물을 취할 수 있었다.

허도에 돌아온 후 조조가 원정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상황을 알아보니 그들은 모두 아주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승전고를 올린 조조가 돌아와서 원정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잘못된 제안을 추궁하고 결판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조는 오히려 그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그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번에 대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습니까?”

조조가 대답했다.

“이번에 오환원정은 아주 위험했소. 물론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건 하늘이 도와 운 좋게 이룬 것이오. 사실 이번에 아주 험난한 일이 많아서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소. 이런 위험한 일은 후에 절대 다시 하면 안 되겠소. 그대들의 간언은 모두 일리가 있는 완벽한 계략이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그대들에게 큰 상을 내려야 하오. 그대들이 후에도 간언을 아끼지 말기 바라오. 그래야 내가 옳은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오.”

건안 20년( 215년), 조조는 북방을 기본 평정하고 방향을 남방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해 조조를 보좌하던 천재적인 모사 곽가(郭嘉)가 유명을 달리한 한편 천하무쌍의 기재 제갈량(諸葛亮)이 유비에게로 갔다. 천하를 통일하려던 조조의 위업이 그렇게 순풍에 돛 단 배만은 아니게 되었다.

역사에 전환 포인트가 생기게 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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