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5 08:22:08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이청조 편: 제2회 이별과 창작

(사진설명: 이청조의 석상)

제2회 이별과 창작 

과연 벼슬길은 부침의 반복이었다. 송휘종(宋徽宗)이 보위에 오르고 채경(蔡京)이 권세를 장악하면서 변법을 반대하는 원우당(元祐黨)을 깡그리 동경(東京)에서 쫓아냈다. 후소문사학사(後蘇門四學士) 중 한 사람인 이청조의 부친 이격비도 연루되어 경동제형(京東提形)직에서 파면되었다.

손 델 만큼 뜨거운 권세를 장악한 이청조의 시아버지 조정지는 조정에서 그 권력이 수상(首相) 채경의 버금이었다. 이청조는 남편에게 친정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게 했다. 하지만 정치는 냉혹하고 정치인은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었다. 조정지는 자신이 사돈을 도와주면 그를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연루될 것이라고 짐작해 침묵을 선택했다. 아아, 참으로 냉정한 세상에서 마음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 시아버지의 냉정함에 이청조는 마음 속으로 탄식하면서 친정 아버지가 낙담해서 동경을 떠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숭령(崇寧) 2년(1103년), 자연에는 따스한 봄이 소리 없이 찾아 왔지만 조정에는 정치의 광풍이 휘몰아쳐 더운 여름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뼛속까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채경은 황제를 대신해 ‘원우당의 자식들은 입궐도 하지 못하고 어전에도 서지 못하며, 황실은 원우당의 자손과 혼인을 맺지 못하고 이미 혼인을 약속한 상황이면 혼인을 파기하라’는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

조씨 가문은 비록 황실은 아니었지만 조정지는 조정의 1품 관직에 있었고 조씨 가문의 며느리 이청조는 원우당의 딸이었다. 이에 조정지는 며느리는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지만 벼슬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슬이 좋은 아들과 며느리를 헤어지라고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생각 끝에 조정지는 그 일을 아내에게 시켰다.

이청조의 시어머니 곽씨(郭氏)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서재에 와서 고서를 정리하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이제 더는 말을 안 하지 않을 수 없구나. 명성도 이제는 태학을 마치고 벼슬을 해야 하는데 조정에서 구법당(舊法黨)의 자식은 반드시 경성을 떠나야 한다고 규정했으니 명성의 앞날을 위해서 아마도 네가 한 동안 고생해야겠다.”

이청조의 마음은 칼로 에이는 듯 했다. 창백한 얼굴의 이청조가 멍한 눈길로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먼저 친정으로 가서 좀 지내거라.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지면 너를 데리러 사람을 보내마.”

그 순간 이청조는 누군가 두 손을 자신의 가슴에 집어 넣어 심장을 꺼내는 듯 울컥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 두 손으로 아픈 가슴을 붙잡은 이청조는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석(七夕)절이었다. 연인이 서로 만나는 이 날에 이청조는 연인과 헤어져야 했다. 그녀가 창 밖을 내다 보니 날씨는 화복을 예상하기 어려운 조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음침하게 흐려 있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청조의 가슴은 찢어지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었다. 이청조는 이별시 <행향자·칠석(行香子·七夕)>을 써서 남편에게 주었다.

숲 속에선 귀뚜라미 슬프게 울고(草際鳴)

놀란 오동나무 가지 후드득 떨어지네(驚落梧桐)

속세의 경관에 천상의 슬픔 떠오르니(正人間天上愁濃)

구름의 계단 달의 땅 별나라에(雲階月地)

닫힌 관문 천 겹이라(關鎖千重)

뗏목이 은하수를 오가듯(從浮來, 浮去)

견우와 직녀 만나지 못하네(不相逢)

은하수에 오작교 놓여(星橋鵲駕)

견우와 직녀 일 년에 한 번 만나(經年才見)

상봉의 기쁨보다 이별의 슬픔 더 큰데(想離情別恨難窮)

견우와 직녀(牽牛織女)

또 헤어졌나 보네(莫是離中)

여기 날씨 맑았다(甚爾晴)

비가 왔다(爾雨)

바람이 부는 걸 보니(爾風).

남편과의 이 이별은 이청조에게 있어서 생애 가장 큰 아픔이었지만 이 때 그녀는 이왕보다 더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남편과 헤어져 있으면서 이청조는 그리움을 담은 사를 많이 썼던 것이다. 그 중 <일전매(一剪梅)>는 이청조가 남편 조명성에게 보낸 연서이다.

붉은 연꽃 향기로 남은 가을이 대자리 위에 머물렀네(紅藕香殘玉秋)

비단 치마 살며시 풀어 놓고(輕解羅裳)

홀로 목란배에 올랐어라(獨上蘭舟)

저 구름 속 그 누가 님의 편지 내게 전해 주려나(雲中誰寄錦書來)

기러기는 돌아오고(雁字回時)

서쪽 누각엔 달빛만 가득하네(月滿西樓).

꽃잎은 바람에 흩날리고 강물은 무심히 흐르는데(花自飄零水自流)

서로를 향한 이 사랑의 마음(一種想思)

두 곳에서 고요히 견디는 슬픔이여(兩處閒愁)

깊은 정 풀어버릴 길 없어(此情無計可消除)

눈을 꼭 감아 보지만(下眉頭)

도리어 그리움이 다시 솟네(却上心頭)

음력으로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황혼이었다. 홀로 술잔을 기울인 이청조는 말없이 정원을 거닐었다. 불어오는 서풍은 어느새 한기를 머금고 울타리 곁에는 국화가 만발해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그 광경에 갑자기 시흥이 떠 오른 이청조는 붓을 들어 <취화음(醉花陰)>을 썼다.

엷은 안개 짙은 구름 시름에 젖은 긴 하루(薄霧濃雲愁永盡)

향로에 향불도 꺼졌네(瑞腦消金隨)

중양이라 절기 좋은 때(佳節又重陽)

옥 베개와 비단 휘장(玉枕紗)

깊은 밤 찬 기운이 스며드는구나(半夜凉初透)

저녁놀 진 동쪽 울타리 아래 술잔 기울이니(東籬把酒黃昏後)

그윽한 국화 향기 옷소매에 가득한데(有暗香盈袖)

그리워 않는다 말하지 마시라(莫道不消魂)

가을 바람에 주렴이 올라가면(簾捲西風)

국화보다 야윈 사람 있을 테니(人比黃花瘦).

이 <취화음>을 받아 본 조명성은 사랑하는 아내의 깊은 정에 감동을 받고 아내의 재능에 깊이 감복했다. 하지만 그는 가슴 속에 뜨거운 피가 솟아 오르고 영웅의 기개가 넘치는 남자였다.

“떳떳한 사내가 돼서, 당당한 태학생(太學生)이 설마 일개 아녀자보다 못할까?”

이렇게 생각한 조명성은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고심한 끝에 사(詞) 50수를 쓰고 그 속에 아내가 쓴 <취화음>의 구절도 넣어 절친인 육덕부(陸德夫)에게 건넸다.

“이 졸작에서 어떤 구절이 가장 좋은지 좀 감별해보게.”

육덕부도 사를 잘 쓰는 고수라 51수의 사를 다 보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나보고 감별하라고 했으니 사실대로 말하겠네. 가작은 많지 않고 세 구절만 절묘하기 그지 없네.”

조명성이 급히 물었다.

“어느 세 구절인가?”

“‘그리워 않는다 말하지 마시라(莫道不消魂) 가을 바람에 주렴이 올라가면(簾捲西風) 국화보다 야윈 사람 있을 테니(人比黃花瘦).’이 세 구절이 참으로 절묘하네!”

조명성이 아내의 재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어 탄식했다.

“이 세 구절은 바로 집사람이 쓴 것이네. 그녀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네 그려.”

육덕부가 치하했다.

“널리 알려진 자네 부인의 재능,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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