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조조의 석상)
제3회 작전의 실패 그리고 短歌行
강은 넓고 물은 유유하게 흘렀다. 조조는 장강(長江) 북쪽 기슭의 전함에 서서 줄지은 전함의 숲을 이룬 돛대와 하늘을 가리는 정기(旌旗)가 웅장한 것을 보았다.
조조는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을 낳을 거면 손권과 같아야 하고(生子當如孫仲謀), 유표의 아들은 개돼지와 같구나(劉景昇兒子如豚犬耳)”.
그랬다. 조조가 동정(東征)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로 향하자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의 시신이 썩기도 전에 유표의 아들인 유종(劉琮)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 형주를 고스란히 조조에게 넘겼다. 하지만 손견(孫堅)의 아들이자 손책(孫策)의 동생인 손권(孫權)은 강동(江東)의 옛 신하들과 함께 조조의 80만 대군과 결전을 치르려 다짐했다.
조조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아들들을 기억에 떠올렸다.
“나에게는 25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들 중 누가 손권처럼 능력이 있을 것인가? 비(丕)는 문학적 재능에서 식(植)에 미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식은 어질고 효도하며 총명함에서 비보다 못하다. 이번에 남부지역을 평정하고 돌아가면 후계자문제를 생각해야 하겠다.”
조조는 또 우환덩어리 유비를 떠올렸다.
“형주에 기거하던 유비는 유종이 항복하려 하자 강릉(江陵)으로 물러갔다. 나는 유종의 항복을 받은 후 유비의 세력이 강해지기 전에 그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겨 몸소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3백리를 강행군하여 강릉을 공격했으나 유비는 또 한 번 그물에서 빠져나갔다. 아, 조운(趙雲)이 천군만마 속에서 무인지경을 가듯 거침이 없으며 장비(張飛)가 한 번 울부짖자 장군 한 명이 놀라 죽는 것을 보며 나는 과거 유비가 찾아 왔을 때 방법을 대서 그를 제거하지 않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이번에 또 다시 그를 살려 둔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조조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모사(謀士)인 정욱(程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공(主公), 강에 바람이 큽니다. 뭍에 오르셔서 군영으로 돌아가시지요!”
조조는 배를 강기슭에 대게 하고 뭍에 올랐다. 그러자 또 정욱이 말했다.
“북방의 병사들은 물에 익숙하지 않아 배에 오르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조조가 대답했다.
“어제 밤새 이 문제를 생각했소. 전함들을 쇠사슬로 연결하겠소. 그러면 배가 흔들리지 않아 병사들이 평지를 걷듯 해서 문제가 되지 않소.”
정욱이 놀라서 말했다.
“아마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적들이 화공(火攻)을 하면 모든 전함들이 불바다로 변할 우려가 있습니다.”
조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 문제를 생각했소. 지금은 북풍이 부는 겨울이오. 그들이 만약 화공을 들이댄다면 불장난을 하는 결과에 이르러 스스로 불바다에 뛰어들게 될 것이오.”
정욱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우러러 탄복했다.
“주공께서는 위로 천문(天文)도 아시고 아래로는 지리(地理)에도 능하십니다. 이렇게 빈틈이 없으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천문과 지리를 모르면 군대를 인솔할 수 없소. 나는 다년간 전장을 누비며 이 분야에서 종래로 틀린 적이 없소.”
조조가 군영의 막사에 들어서자 장간(蔣干)이 들어와서 보고했다.
“주공, 강동의 장군 황개(黃蓋)가 주유(周瑜)에게 매를 맞고 홧김에 항복하려 한답니다. 저는 이미 그와 항복의 신호를 약속했습니다.”
그 말에 조조는 생각에 빠졌다.
“설마 하늘이 나를 돕는 건가? 아니다. 황개는 삼대 째 이어지는 중신(重臣)으로 손씨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다. 그가 어찌 한 번 매를 맞았다고 해서 역모를 꾀하겠는가? 이런 보잘것없는 기량으로 나를 속이려고? 이건 위장 항복일 것이다. 주유가 꾸민 술수일거고. 하지만 괜찮다. 황개를 역이용해보자.”
조조가 장간을 보고 말했다.
“황개가 항복하는 날 내가 몸소 나가서 맞이하겠다. 사전에 나에게 보고하라.”
조조는 머리 속으로 거짓 항복한 황개를 이용해 손권에게 한 방 먹일 계획을 짰다.
장간이 막사를 나가자 정욱이 들어왔다.
“최근 군영에서 돌림병이 돌아 쓰러진 병사들도 적지 않고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조조가 이마를 찌푸렸다.
“돌림병 상황을 알아보았소. 병사들 다수가 야위고 복부팽창과 식욕부진을 보이니 아마도 기후와 물이 맞이 않은 것이 그 원인 같소. 이번 작전은 반드시 속전속결해야지 더 늦출 수 없소.”
그날 저녁 달은 밝고 별빛은 희미했다. 달빛을 밟으며 거닐던 조조의 마음에 홀연히 슬픔이 차 올라 머리 속에 일찍 썼던 <호리행(蒿里行)>의 시구가 떠올랐다.
…
오랜 전쟁으로 갑옷에 서캐가 생기고(鎧甲生蟣蝨)
만백성이 죽어 나갔구나(萬姓以死亡)
백골이 들판에 나뒹굴고(白骨露於野)
천리에 닭 울음소리 들을 수 없구나(千里無鷄鳴)
백 사람 중 하나만 살아남은 백성(生民百遺一)
생각하니 창자가 끊어질 듯 하도다(念之斷人腸)
이 시는 장례식 노래에 가사를 쓴 신악부시로 한나라 후반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난세의 비참한 정경을 진실되게 반영했다. 조조는 북방지역에서는 전란이 끝나 농업생산이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백골이 들판에 나뒹굴고 천리에 닭 울음소리 들을 수 없는”정경이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는 것에 다소 위안을 느끼며 스스로 만족하기도 했다.
조조는 또 세상을 뜬 곽가를 생각했다. 인재는 참으로 얻기 힘들다. 조조의 머리 속에는 <시삼백> 중의 “나에게 귀한 손님이 온다면(我有嘉賓)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하리라(鼓瑟吹笙)”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좌우에 명령했다. 조조는 여기서 귀한 손님으로 인재를 비유했다.
“장창을 가져오라!”
장창을 잡은 조조는 시흥이 북받쳐 시를 읊었다.
술잔을 들며 노래를 부르노라(對酒當歌)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는가(人生幾何)
마치 아침이슬과 같으니(譬如朝露)
지난날 괴로움이 많았도다(去日苦多)
슬프게 탄식을 해도(慨當以慷)
근심을 잊기 어렵구나(憂思難忘)
무엇으로 근심을 풀 수 있을까(何以解憂)
오직 두강술만 있을 뿐(唯有杜康)
그대들의 푸른 옷깃(靑靑子衿)
내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노니(悠悠我心)
다만 그대를 위해(但爲君故)
이제까지 나지막하게 읊조렸도다(沈吟至今)
…
산은 그 높음을 꺼리지 않고(山不厭高)
바다는 그 깊음을 꺼리지 않는 법(海不厭深)
나도 주공처럼 인재를 예우하리니(周公吐哺)
온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오기를(天下歸心)
갈증이 난 사람이 물을 그리듯 인재를 바라는 조조의 마음은 노래를 따라 고요한 밤하늘에 오래도록 메아리 치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12월 초사흘 황혼, 장강에 짙은 안개가 끼어 초승달이 보일 듯 말 듯 한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한 폭의 깃발이 끊어졌다. 조조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큰일 났다. 왜 풍운이 돌변해서 동풍이 불지?”
조조가 배를 묶은 쇠사슬을 풀라고 좌우에 분부하는데 장간이 환호했다.
“주공, 보세요! 황개가 항복하러 옵니다!”
조조가 머리를 드니 10 척의 작은 배가 백기를 꽂고 날렵한 제비처럼 수면을 흘러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쪽배에 큰 불이 일더니 10개의 불덩이가 조조의 군사를 향해 다가왔다.
조조는 급히 크게 외쳤다.
“전함의 병사들은 즉시 뭍에 오르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북의 전함은 벌써 불바다가 되었고 강동의 전함이 열을 지어 다가오며 목숨을 살리려고 강물에 뛰어든 조조의 군사를 하나씩 장창으로 찔렀다. 강물에 뛰어드는 족족 창에 찔린 병사들로 인해 푸른 강물이 붉게 변해갔다.
세찬 바람에 힘입어 불길은 강북 기슭의 막사에까지 번져 군영도 깡그리 타버렸다. 조조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화용도(華容道)를 거쳐 강릉으로 도주했다. 동풍이 큰 비를 몰고 오는 바람에 도로는 질퍽거려 걷기조차 힘들었다. 군사들이 도주하는 중 서로 짓밟는 통에 조조는 또 적지 않은 군사를 잃었다. 주유의 군대는 남군(南郡)까지 쫓아와서야 추격을 멈추고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갔다. 조조는 80만 대군 중 반 이상을 잃었다.
강릉에 이른 조조는 자신이 관도 전쟁에서 소수의 전력으로 다수를 이겨 북방의 제후 평정에 기반을 닦았는데 오늘 주유가 자신의 남방 평정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일찍 세상을 뜬 곽가가 머리에 떠올라 대성통곡했다.
“그대가 내 곁에 있었다면 결단코 나를 이렇게 패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