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7 08:31:26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이청조 편: 제4회 노후와 羽化登仙

(사진설명: 이청조 기념당의 일각)

제4회 노후와 羽化登仙

정강(靖康) 원년(元年, 1126년), 풍운이 돌변하고 야만이 문명을 대체했다. 금(金)나라 인들의 긴 칼이 금수강산 중원(中原)을 휩쓸고 금나라 인들의 말발굽이 번화한 동경을 짓밟았으며 송(宋)나라의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금나라 인들에게 잡혀갔다.

나라를 곧 잃게 되자 조명성과 이청조 내외는 급히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온 금석(金石)·서예·그림을 15대의 수레에 싣고 난민을 따라 강남(江南)으로 가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이 때 조명성은 큰 형님의 서신을 받았다. 고향을 그리던 모친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건강(建康)에 이르러 병석에 누웠다는 내용이었다. 조명성은 급히 건강으로 떠나며 이청조에게 청주(靑州)에 가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 때 강왕(康王) 조구(趙構)가 건강 응천부(應天府)에서 보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송고종(宋高宗)이다. 건강에서 모친의 장례를 치른 조명성은 송고종의 어명으로 호주(湖州) 태수(太守)가 되었다. 이청조가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15수레의 문화재를 가지고 건강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조명성이 과로로 병석에 누웠다. 원래 그렇게 잘 생긴 남편은 간데 온데 없고 남편의 누렇게 뜬 얼굴과 움푹 들어간 두 눈을 바라보며 이청조는 가슴이 아파 소리 내서 울었다. 조명성이 갈린 목소리로 아내를 위로했다.

“지금 울 때가 아니오. 당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오. 금석과 서예와 그림은 우리 평생의 심혈이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다 지니지 못하고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책을 버리고 그 다음 금석을 버리오. 고서(古書)와 그림은 절대 버리지 말고 당신의 생명과 함께 하오. 꼭 기억하오.”

말을 마친 조명성은 끝내 두 눈을 감았다.

이청조의 하늘이 무너졌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이청조는 남편의 유물을 바라보며 ‘난세에는 황금을 소장하고 성세에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고고학자인 남편의 모든 유물은 골동품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난세에 골동품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무거운 짐에 불과했다. 이청조는 과거 이런 골동품을 모으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금석록(金石錄)>을 쓰기 위해 밤에 낮을 이은 것을 생각하며 남편의 <금석록>과 자신의 <철종실록(哲宗實錄)>, <수옥집(漱玉集)>을 소지하기로 작심했다. 남은 문화재 중에서는 휴대하기 편한 그림과 서예작품만 지니고 나머지는 멀리 홍주(洪州)에서 황실 호위로 있는 매제에게 맡겼다.

가장 중요한 일을 정리하고 난 이청조는 갑자기 자신이 혈혈단신이 되고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모두 잃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임시거처의 마당에 나가니 정원의 국화꽃은 벌써 시들고 말랐다. 시든 국화꽃을 슬퍼하고 있는데 갑자가 머리 위에서 외기러기 울음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이청조는 과거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 볼 때와 지금 자신의 심경이 다름을 느꼈다. 하늘이 눈물을 흘리는가? 이청조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자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방에 들어오니 칠흑같이 어두워 인생의 앞길도 보이지 않았다. 이청조는 촛불을 켜고 일필휘지로 천고의 절창 <성성만(聲聲慢)>을 썼다.

찾고 또 찾아도(尋尋覓覓)

싸늘하고 또 싸늘하여(冷冷淸淸)

처참하여 견디기 어려워라(悽悽慘慘戚戚)

잠깐 따스했다 또 추워지니(乍暖還寒時候)

더욱 견디기 어려워라(最難將息).

두 잔 세 잔 술 마셔도(三杯兩盞淡酒)

어찌 견디겠나 저녁 되어 바람결 급해지니(敵他晩來風急)?

기러기 날아가니(雁過也)

더욱 가슴 상하는 것은(正傷心)

그 옛날 서로 알았던 때문이리라(却是舊時相識).

뜰 가득 국화꽃 쌓이고(滿地黃花堆積)

몸 초췌하여 말라가니(憔悴損)

지금 누가 꽃 따 주리오(如今有誰堪摘)?

창문에 서니(守着爾)

나 홀로 어찌하여 이리도 가슴이 답답한가(獨自生得黑)?

오동잎 보슬비 맞으며(梧桐兼更細雨)

황혼녘에 엉긴 빗방울 방울 방울(到黃昏點點滴滴)

이를(這次第)

어이 슬프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리(一個愁字了得)!

아아, 이 슬픈 나날에 이청조는 고국을 그리고 산천을 그리며 새로 즉위한 황제가 나라의 치욕을 씻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동생 이성(李晟)이 18살의 황제는 금나라 군사가 두려워 계속 남쪽으로 몽진하며 잃어버린 북쪽 땅을 다시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비분에 찬 이청조는 옛날을 빌어 현실을 풍자하는 수법으로 시(詩) <하일절구(夏日絶句)>를 썼다.

살아서는 마땅히 인걸이었고(生當作人傑)

죽어서도 귀신 중의 영웅이 되었으니(死亦爲鬼雄)

지금 항우를 그리워하는 것은(至今思項羽)

강동으로 가려 하지 않았음이어라(不肯過江東).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 시이다(詩言志).’ 이청조는 자신의 뜻을 사(詞)로 표현할 수 없어 굳세고 웅혼한 시로 표현했던 것이다.

어느 날, 이청조가 북벌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작은 영토의 안락함에만 만족하는 조정을 통분하는데 동생 이성이 와서 황망한 어조로 말했다.

“누님이 국보라 불리는 옥호(玉壺)를 금나라 사람에게 헌납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조정이 적과 내통했다는 죄로 누님을 엄하게 응징한대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청조는 깜짝 놀랐다.

“참으로 소문이 무섭구나! 형부가 아플 때 왕비경(王飛卿)이라는 대신이 옥호 하나를 가지고 와서 형부에게 감별을 부탁하더구나. 형부는 그건 옥호가 아니라 백옥과 비슷한 돌로 만든 것이라 옥호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왕대인이 그 옥호를 가지고 돌아갔는데 어떻게 이런 소문이 날 수 있느냐?”

“이런 소문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방법이 없어요!”

동생의 말에 이청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비통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형부가 남긴 모든 청동기를 조정에 헌납하겠다! 난세에 무슨 골동품을 소장하겠느냐? 화만 가져다 주는 골동품을.”

‘옥호를 금에 헌납했다는’소문은 이청조가 조정에 보물을 헌납한 것으로 인해 점점 잦아들었고 이청조의 다른 문화재도 금나라 군사가 홍주를 공격하면서 다 사라졌다. 이제 이청조에게 남은 것이란 항상 곁에 둔 서예와 그림뿐이었지만 그것마저 사기꾼인 장여주(張汝舟)의 표적이 되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여유롭고 심플한 생을 살아온 이청조는 아무런 사회경험도 없었다. 난세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이청조는 장여주를 진사(進士) 출신의 동명인으로 잘못 보고 그의 미사여구에 매혹되어 그와 혼인을 맺었다. 하지만 결혼 후 장여주는 본색을 드러내고 이청조의 그림과 서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게 된 이청조는 자신이 감방에 가는 대가로 장여주를 고발했다. 송나라의 법률은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면 아내 역시 2년 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청조의 명성이 높고 장여주의 사기꾼 행실이 가증스러운데다 많은 사람들이 이청조의 편을 든 덕분에 이청조는 감방에서 9일만 보내고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이청조는 동생과 함께 살면서 집에만 있고 좀처럼 외출하지 않았다. 이청조의 <영우락(永遇樂)>에서 노후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쓸쓸하고 슬픈지 엿볼 수 있다.

지는 해는 쇠를 녹인 듯(落日熔金)

노을 진 구름은 주옥을 합친 듯한데(暮雲合壁)

님은 어디에 있는가(人在何處)?

버드나무에 짙은 안개 가득 끼고(染柳煙濃)

매화 향기 따라 들려오는 애절한 피리 소리(吹梅笛怨)

봄은 어디에 와 있을까(春意知)?

정월 대보름 이 좋은 시절(元宵佳節)

날씨도 화창하건만(融和天氣)

그렇다고 어찌 비바람이 없을까(次第無風雨)?

술 친구 글 벗들(來相召)

꽃마차 타고 찾아오지만(香車寶馬)

나는 같이 놀러 가길 마다했네(謝他酒朋詩侶)

과거 동경에서 살 때엔(中州盛日)

규방에 좋은 일도 많았지만(閨門多)

그 중에도 정월 대보름이 제일 기억이 나네(記得偏重三五)

물총새 깃털로 장식한 관 쓰고(鋪翠冠爾)

몸에는 황금으로 만든 버드나무 붙이고(捻金雪柳)

허리띠 매고 아름다움 겨루었지(簇帶爭濟楚)

그러나 지금은 초췌하기 이를 데 없어(如今憔悴)

헝클어진 머리도 빗지 않고(風鬟霧)

밤 마실 조차 두렵다네(見夜間出去)

창문가 발 아래 서서(不如向簾爾底下)

다른 이들 이야기하는 거나 들으리(廳人笑話).

이청조는 강남의 항주(杭州)에서 말년을 보냈다. 사단의 재녀 이안거사(易安居士)는 어느 해 늦가을에 외기러기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속세의 밖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이루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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