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1 09:19:20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악비 편: 제1회 외적의 침략을 막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악비)

애국 영웅 악비

모친이 악비(岳飛)의 몸에 ‘정충보국(精忠報國)’이라는 네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 넣을 때 나라에 대한 충성은 이미 그의 뼛속 깊이 스며들어 그의 영혼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평생으로 이 네 글자의 함의를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송(宋)나라 때의 유명한 전략가이자 군사가이며 학자인 악비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민족 영웅이자 애국 장군이다. 외적과의 싸움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청렴하고 품행이 고상하며 효심도 깊은 세상의 본보기이다.

하지만 외적에 대항한 애국 영웅 악비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충성하고 목숨 바쳐 지켰던 송나라의 어리석은 황제의 손에 죽었다.

애국 영웅 악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외적의 침략을 막다 

꿈속에서 울렸던 외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고 눈부신 칼날이 막 내려치려는 찰나 허둥대며 남쪽으로 도주한 남송(南宋)의 황제 조구(趙構)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황제가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도 전에 내시가 들어와서 아뢰었다.

“올술(兀術)이 10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장강(長江)을 건너 건강(建康)을 점령한 후 항주(杭州)를 향해 오고 있다 하옵니다!”

절반의 강산을 잃고 백성들이 오랑캐의 지배를 받으며 두 황제가 금에 끌려간 정강(靖康)의 치욕이 가시기도 전에 금(金)의 야망은 끝이 없어 한달음에 장강을 건너 아직 안정을 가지지 못한 남송을 건국 초반에 소멸하려고 했던 것이다.

당시 송고종(宋高宗) 조구는 18살이었다. 그는 금의 군사를 피해 도주의 길에 올라 임시 수도 건강을 떠나 양주(揚州)로 도주했다. 양주에 이른 고종제가 미처 숨도 돌리기 전에 금의 군사가 양주에서 100리(里, 1리=0.5km) 거리까지 들이 닥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놀란 황제는 대신들에게 통보할 여유도 없이 측근 몇몇만 거느리고 진강(鎭江)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강회(江淮)일대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떠나 금의 군사에 대항하자 금은 그제서야 남침의 발걸음을 멈추고 일단 북쪽으로 퇴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발생한지 어제 같은데 오늘 갑자기 올술이 또 장강을 건너 건강을 점령하고도 만족하지 않다니? 조구는 또 다시 놀란 가슴을 누르며 진강을 떠나 명주(明州)로 갔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 풀을 알고(疾風知劲草) 난세에야 충신을 알 수 있다(板蕩識忠臣)’는 말이 있는데 송나라의 충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금에 대항한 가장 유명한 장군 악비는 당시 부장(部將)에 지나지 않았다. 갑갑해서 막사 밖에서 창을 연마하는 악비의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건염(建炎) 원년(元年, 1127년) 음력 5월 초하루 대송(大宋)이 다시 세워지고 황제가 보위에 올라 금에 대항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황잠선(黃潛善)의 군대는 수개월째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전쟁에 나가겠다고 황제에게 소를 올렸다. 그에 황잠선 대인은 크게 노해서 나를 꾸짖었다.

교관(校官)이라는 말단 관직의 네가 뭔데? 감히 월권해서 소를 올려! 나랏일은 조정의 대신들이 할 일이지 어디 네가 참견할 일이냐? 누가 너보고 쓸 데 없는 말을 하라고 했느냐?

황 대인은 안하무인에 겁 대가리가 없다고 나를 욕하며 나의 관직을 빼앗고 군직까지 박탈했다. 아아, 영웅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라를 위하려 해도 길이 없구나. 나는 북상해서 하북(河北) 초도사(招討使) 장소(張所) 대인의 군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좋게 본 장소 대인은 나를 7품 경무랑(經武郞)으로 승진시키고 도통제(都統制) 왕언(王彦) 대인을 따라 잃어버린 위주(衛州)를 수복하게 했다. 출전한 우리는 신향(新鄕) 석문산(石門山)에서 금의 군사를 만났다. 내가 한 손을 펴서 나라의 치욕을 씻으려는데 왕 대인이 이리 저리 재면서 감히 출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다 못해서 왕 대인을 꾸짖었다.

두 폐하께서 난을 겪으시고 적군이 황하 북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잃은 땅을 수복하고 폐하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속히 출전하지 않고 관망만 하니 설마 적군에게 항복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나는 왕 대인의 허가 없이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했다가 벌떼처럼 몰려드는 적군에 크게 패했다.

나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태항산(太行山)으로 진입했다. 왕언 대인이 나머지 군사를 거느리고 적군에 맞섰다고 들었다. 팔자군(八字軍)이라 불리는 그들은 군사의 규모가 수만 명까지 확대되었으며 수 백리에 달하는 땅을 수복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왕 대인을 잘못 꾸짖었다는 것을 느낀 나는 그를 찾아가 사죄했다. 왕 대인이 말했다.

나라가 힘든 지금은 사람이 필요할 때이다. 너는 인재이니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 하지만 너를 내 수하에 남기고 싶지 않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

참으로 내 인생의 침통한 교훈이었다. 나는 종택(宗澤) 대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악비가 지나간 일을 돌이키며 혈기왕성한 젊었을 때의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데 첩자가 올술이 황제를 뒤쫓아 지금 광덕(廣德)성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악비는 즉시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광덕으로 향했다. 그는 광덕에서 6전6승의 눈부신 승리를 거두고 금의 장군 왕권(王權)을 생포했다.

금의 다른 한 갈래 군사가 상주(常州)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들은 악비는 연속작전을 벌여 또 4전 4승의 첩보를 올렸다. 그리고 후에 악비의 든든한 용장이 된 우고(牛皋)는 당시 궁수(弓手)에 지나지 않았는데 민병(民兵)을 거느리고 맹(孟) 태후를 추격하는 금의 군사를 대파하고 금의 장군 야율마오(耶律馬五)를 생포했다.

악비가 적군을 견제하고 한세충(韓世忠)이 황천탕(黃天蕩)에서 올술과 수전(水戰)을 벌여 금의 군사를 크게 이긴 덕분에 송나라는 황제가 또 다시 금에 생포되는 치욕을 면하게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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