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2 09:39:42 출처:cri
편집:李仙玉

[조식 편-2] 후계자 후보에서 제외되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조식)

제2회 후계자 후보에서 제외되다

건안 16년(211년), 조조는 조식을 데리고 마초(馬超)를 정벌하러 서북으로 떠났다. 출정 길에 낙양(洛陽)을 지나면서 무너진 담벽 사이에 잡초가 무성하고 그 사이로 뱀이 출몰하는 황폐한 황궁을 보면서 조식은 망국의 슬픔을 느꼈다.

이 때 조조가 말했다.

“동탁(董卓)이 낙양을 소각한지 벌써 21년인데 조정은 지금까지도 황궁을 복원할 재력을 갖추지 못했구나.”

조식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응창(應玚)과 그의 동생 응거(應琚)를 만나 그들 형제도 북방으로 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송별연을 베풀었다. 술을 마시고 환담하면서 고도(故都) 낙양의 황폐한 정경을 생각하고 난세에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백성들을 떠올린 조식은 당장에서 응씨 형제를 위해 시 2수를 지었다.

시문을 떼니 눈앞에 낮에 보았던 낙양의 모습이 펼쳐져 조식은 그 낙양을 시에 담았다.

응씨를 보내며(送應氏)

한 걸음 한 걸음 북망산에 올라(步登北邙阪)

저 멀리 낙양을 둘러싼 산발을 바라보네(遙望洛陽山)

낙양은 얼마나 고요한가(洛陽何寂寞)

과거의 황궁이 모두 소각되었네(宮室盡燒焚)

어딜 가나 무너진 성벽만 보이고(坦牆皆頓)

키 높이 자란 가시나무 하늘을 찌르네(荊棘上參天)

더는 어제의 노인을 볼 수 없고(不見舊老)

보이는 것은 모두 어린 소년뿐(但睹新少年)

땅을 밟아도 길을 찾지 못하고(側足無行徑)

황폐한 밭은 누가 갈리오(荒疇不復田)

오랜만에 돌아온 나그네(遊子久不歸)

얼기설기한 밭둑 길을 못 알아보네(不識陌與阡)

들판은 너무도 소슬하고(中野何蕭條)

천리에 사람 사는 곳이 없네(千里無人煙)

평소에 함께 살던 사람을 생각하니(念我平常居)

슬프고 목이 메어 할 말 찾지 못하네(氣結不能言)

조조는 조식의 시와 부를 읽을 때마다 항상 마음이 끌렸다.

“이런 천재가 있다니, 참으로 이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야.”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식을 태자로 삼고 싶지만 그는 필경 네 번째 아들이다. 장남이 이 세상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두 형이 있다. 장남이 아닌 어린 아들을 태자로 세우는 것은 변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차남인 비는 문학에서는 식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모두 식을 훨씬 초과한다.”

이런 생각에 조조는 심히 마음의 갈등을 겪었고 따라서 누구를 태자로 세울 지는 계속 미결상태로 남아 있었다.

건안 19년(214년), 조조는 손권(孫權) 토벌을 떠나면서 조비를 데리고 가고 조식에게 업성을 지키게 했다. 출발에 앞서 조조는 조식을 타일렀다.

“식아, 과거 내가 돈구(頓丘)에서 현령(縣令)을 할 때 스물 세 살이었다. 너도 올해 마침 스물 세 살이구나. 경험을 많이 쌓고 한 몫 막는 걸 배워야 하겠다. 이 아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거라!”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업성을 지키라는 조조의 명이 있음에도 조식은 늘 일은 하지 않고 집에서 거문고를 뜯고 시를 읊으며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일이 있든 없든 언제나 둘째 형수 견(甄) 부인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조식은 어릴 때 그녀와 함께 생활했고 현재 자신도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줄곧 그 아름다운 형수를 잊지 못했다. 그녀에게 안부를 전하고 돌아온 때면 조식은 항상 취하도록 술을 마셨으며 가끔은 술주정을 하면서 울고 웃었다. 그러는 조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느 날, 만취한 조식은 취기를 빌어 마차를 몰고 치도(馳道)를 질주했다. 황제 전용의 고속도로 격인 치도는 당시 위공(魏公)인 조조의 전용 도로였다. 임의로 치도에 오르면 목이 날아가는 죄를 지은 것인데 조식은 그것도 모자라 공거령(公車令)에게 사마문(司馬門)을 열라 명령하고 차를 몰고 사마문을 경유해 금문(金門)까지 달렸다. 이 드라이브로 조식은 자신의 눈부신 앞길을 막아 버렸다.

업성으로 돌아온 조조가 이 사실을 알고 대로해서 독직한 공거령을 사형에 처하고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치후(臨淄侯) 식이 너무 겁이 없구나. 법 무서운 줄 모르고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이제 나는 더는 제후들을 믿을 수가 없구나. 내가 없으면 무슨 일이든 다 저지르니 어떻게 그를 나의 측근으로 볼 수 있겠느냐?”

잠깐 생각에 잠겼던 조조가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제후장사(諸侯長史)와 그 부하 관리들은 내가 자리를 비우면 제후들이 법을 어기지 않는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기록했다가 내가 돌아오면 사실대로 보고하라.”

그로부터 제후들의 행동은 엄격한 감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조식은 조조의 총애를 깡그리 잃게 되었다.

하지만 조조는 남다른 재능을 가진 이 아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는 조식을 남중랑장(南中郞將)에 임명하고 정노장군(征虜將軍)이 되어 관우(關羽)에게 포위된 조인(曺仁)을 구하러 가게 했다. 조조는 그 출정에서 조식이 정치적 자본을 조금이라도 쌓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조식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출발에 앞서 술을 잔뜩 마셔 출정을 떠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조조는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조식에게 맡긴 것을 후회하며 탄식했다.

“거름이 들어간 흙으로 담벼락을 칠 할 수 없구나(糞土之墻不可塢也)”!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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