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4 09:29:42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악비 편: 제4회 애국영웅 억울하게 죽다

(사진설명: 악비의 무덤)

제4회 애국영웅 억울하게 죽다

송(宋)과 금(金)의 강화가 이루어지자 조정 안팎이 들썩하고 애국지사들이 분분히 항의했다. 비분에 찬 악비가 축하소를 올렸다. 악비의 소는 축하를 표시했지만 실은 항의서였다. 악비는 소에서 강화내용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금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을 반대하며 연운(燕雲)을 수복해 금이 송의 속국이 되게 해야 한다고 썼다. 이는 악비의 비분의 외침이자 당시 송나라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였다. 10만의 군사를 장악하고 싸우면 싸울수록 용감한 악가군을 거느린 악비의 소는 유난히 당당했고 송나라의 군민들에게 큰 자신감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달빛도 별빛도 없는 어느 가을 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악비는 역모죄를 지었다는 모함을 받아 대리사(大理寺)에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예로부터 역모죄는 가장 쉽게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핑계였다.

악비사건을 맡은 심문관 어사중승(御史中丞) 하주(何铸)가 물었다.

“악가군의 부통제(副統制) 왕준(王俊)이 장헌(張憲)이 역모를 꾀했다고 발고했다. 장헌의 역모는 악운(岳雲)이 사주한 것이고 악운은 당신의 아들이니 주모자는 당신이 아닌가?”

악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옥의(獄衣)를 쫙~ 찢고 하주의 앞에 등을 대고 돌아섰다. 하주는 악비의 등에 ‘정충보국(精忠報國)’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놀란 하주는 눈물을 머금고 취조실을 나갔다. 하주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바탕 통곡한 후 벼슬을 그만 두었다.

취조관이 악비의 역모를 믿지 않으니 사건을 종료할 수 없게 되었다. 진회(秦檜)는 마음이 독하기로 소문난 만사선(萬俟線)을 찾아 악비의 죄명을 지어내게 했다. 하주 대신 진회의 심복이 자신을 심문하는 것을 본 악비는 그로부터 더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옥중에서 단식으로 항의했다.

악비가 하옥되자 천하가 놀랐다. 분개한 대신들이 너도 나도 황제에게 소를 올려 악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세충(韓世忠)이 노기등등해서 진회에게 따졌다.

“악 장군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소? 증거가 있소?”

“막수유(莫須有), 있을 지도 모르오.”

“막수유(莫須有) 세 글자로 세상 사람들을 감복시킬 수 있겠소?”

그로부터 ‘막수유’는 중국에서 보기 드문 삼자성어가 되었으며 억울함의 대명사가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원래의 뜻 대신 ‘날조되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세충은 송과 금의 강화에서 금나라가 ‘악비를 죽이면 강화를 맺겠다’는 유일한 요구를 제출했음을 알리 없었다.  진회는 악비에게 역모죄와 어명을 어긴 죄, 황제를 욕한 죄 등 세 가지 죄를 씌워 송고종에게 소를 올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대의를 무시한 어리석은 황제 송고종은 어필로 소에 ‘악비에게 죽음을 내리고 장헌과 악운은 군법에 따라 벌하라’고 썼다.

풍파정(風波亭)에 이른 악비는 황제가 내린 독주를 보자 소리 높이 말했다.

“붓을 가져오라!”

옥졸 외순(隗順)이 급히 문방구를 가져왔다. 악비는 일필휘지로 인생의 절필을 남겼다.

천지가 밝다(天地昭昭), 천지가 밝다(天地昭昭)!

붓을 던진 악비는 독주를 들어 단숨에 마셨다. 금에 대항한 영웅이 전장이 아닌 자신이 충성을 바친 어리석은 군주의 손에 죽었다. 당시 악비는 39살이었다.

자신이 끝없이 우러르고 숭배하는 악비가 억울하게 죽는 것을 본 외순은 실망하여 더는 옥졸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밤에 남몰래 악비의 유체를 업고 임안성(臨安城)을 나왔다. 전당문(錢塘門) 밖의 구곡총사(九曲丛祠) 옆에 맨 손으로 무덤을 파고 충성의 영혼을 묻은 외순은 평생 악비의 무덤을 지켰다.

악비는 후세 사람들에게 ‘문관이 돈을 좋아하지 않고 무관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명언도 남기고 ‘전략이 승패를 가른다’는 용병술도 남겼지만 처세에서는 전혀 변통할 줄 몰랐다. 그는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고 잡혀간 두 황제를 맞이할 생각만 하고 북벌이 성공해서 두 황제가 돌아오면 송고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점이 바로 송고종이 그에게 죽음을 내린 근본적인 원인이었는데 말이다.

애국의 영혼은 세월과 함께 하고 천고의 억울한 사건에 사람들은 지금도 분노를 참지 못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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