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09:05:22 출처:cri
편집:李仙玉

[화타 편-2] 건강, 그리고 오금희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화타)

제2회 건강, 그리고 오금희

화타와 조조(曹操)는 모두 패(沛) 나라 초(譙)현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고향을 떠나 낙양(洛陽)에 가서 벼슬길에 올랐고 후에는 허도(許都)에서 천자를 끼고 세상을 호령하면서 천하를 평정하고자 전장을 누비다 나니 화타를 알 기회가 없었다.

선비인 화타는 서주(徐州)에서 유학(遊學)하며 경학(經學)을 통독했다. 화타의 인생목적은 원래 벼슬을 하고 출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아에서 몇 번이나 관직을 주겠다고 해도 그는 모두 거절했다. 그것은 지방의 작은 벼슬이 큰 꿈을 가진 화타의 눈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술로 세상을 구하고 병을 치료해 환자를 구하는 것은 화타의 취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난치병 치료에 능하고 침구도 잘 하며 외과수술도 할 줄 아는 화타의 의학적 명성이 점점 높아져 사람들은 화타를 선비보다 명의로 보기 시작했다.

봉건사회에서는 “모든 것은 다 하찮고(萬般皆下品) 공부만이 고상했다(唯有讀書高)”. 그것은 과거 독서의 목표는 벼슬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당(唐)나라 때 학자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에서 “의사나 악사, 그리고 여러 가지 장인에 대해서(巫醫, 樂師, 百工之人) 군자는 모두 멸시했다(君子不齒)”고 말했다. 선비였던 화타는 자신이 하등 직업에 속하는 의사로 간주되는 것을 아주 싫어해 늘 의사 노릇을 시작한 자신을 후회했다. 거기다가 실의에 빠진 화타는 성깔도 있었고 성격도 좀 이상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거의 내왕하지 않았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화타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외모는 30대의 젊은이와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살도 없었고 신체도 아주 건강해 몸놀림도 민첩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머리칼도 전혀 하얗지 않고 흑발이었다.

당시 팽성(彭城)의 번아(樊阿)와 광릉(廣陵)의 오진(吳晉), 서안(西安)의 이당지(李當之)가 모두 화타를 스승으로 의술을 배웠다. 화타의 제자들도 후에 모두 명의가 되고 후세에 길이 전해지는 의서도 펴냈다.

오진은 늘 화타와 함께 산에 올라 약초를 캤다. 어느 하루 스승을 동반해 산을 오르던 오진이 숨을 헐떡이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화타는 저 멀리서 날렵한 걸음걸이로 평지를 걷듯 빠르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진이 부러워했다.

“스승님은 저보다도 더 젊어 보이시고 건강하십니다. 제가 스승님의 나이가 되면 아마 걷는 것도 힘들어질 텐데 등산은 더욱 생각도 못할 것 같습니다. 스승님, 무슨 선약(仙藥)을 드셨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타가 크게 웃었다.

“건강은 잘 먹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다져지는 거네. 문 기둥이 왜 벌레가 먹지 않는지 아는가? 그것은 문 기둥이 늘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흐르는 물이 썩는 걸 보았는가? 우리 몸도 마찬가지네. 늘 움직여야 청춘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네. 몸이 움직여야 음식물이 소화되고 혈관의 피도 흐르고 근육과 뼈도 단단해져 수명도 그만큼 길어지는 거네.”

“스승님, 스승님은 참으로 양생의 전문가이십니다. 전에 도를 닦고 연단을 굽는 사람들이 도가의 양생술을 중시해 기공(氣功) 수련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풍도골(仙風道骨)로 장수와 젊음을 말하는 것이군요. 그렇죠? 스승님은 도를 닦는 선인들보다도 더 대단하십니다. 젊음을 넘어서 백발홍안이시니 말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보통 산중에서 생활하면서 짐승의 동작에서 시사점을 받아 양생술을 발명하고 기공으로 수련하는 것이네. 자네 보게. 호랑이는 왜 그렇게 용맹하고 곰은 왜 그렇게 힘이 있으며 원숭이는 왜 그렇게 날래고 사슴은 왜 그렇게 빨리 뛰며 새는 왜 그렇게 높이 날 수 있겠는가? 산짐승이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잠만 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돼지처럼 살만 쪄서 사람들의 먹이가 되었을 걸세.”

“생명체는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이죠?”

“사람의 몸은 움직여야 하네. 운동이 아주 중요하네. 단, 운동도 지나치면 안 되네. 과도하게 움직여서 몸이 힘들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보게 되네. 내가 짐승의 동작을 모방해서 오금희(五禽戱) 체조를 만들었는데 이 오금희를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네. 하지만 오금희도 매일 두 시간 이상 하면 안 되네. 그러면 역효과를 가져와 건강에 해를 끼치게 되네.”

“오금희요? 스승님 장생불로의 비밀무기가 바로 오금희인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오금희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

“저도 오금희를 배울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체질적으로 허약한 사람일수록 더욱 운동해야 하네. 내가 만든 이 오금희는 호랑이와 사슴, 곰, 원숭이, 새의 동작을 모방한 체조이네. 호랑이처럼 팔을 흔들고 사슴처럼 머리를 돌리며 곰처럼 바닥에 엎드리고 원숭이처럼 발끝으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새처럼 두 팔을 활짝 펴는 동작을 하면 온 몸이 이완되고 관절이 원활해져 민첩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네. 몸이 단련되면 질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도 있네. 나는 오금희 체조를 할 때마다 온 몸에 땀이 흠뻑 나는데 그러면 온 몸이 가볍고 음식도 맛있게 먹게 되네.”

오진은 화타의 영향으로 오금희 체조를 중단하지 않았고 후에 90살까지 살면서 청각도 시각도 좋았고 치아 한 대 빠지지 않았으며 머리도 희지 않았다. 건강한 몸을 가졌기에 오진은 명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세에 널리 전해지는 의서 <오진본초(吳晉本草)>도 펴냈다.

화타는 중국에서 운동에 의한 양생이념을 제출한 첫 사람이다. 그는 또 동물의 동작을 모방해서 오금희 체조를 만들어 앞서 가는 과학적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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