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09:33:19 출처:cri
편집:李仙玉

[제갈량 편-4] 떨어진 별

(사진설명: 제갈량의 무덤)

제4회 떨어진 별

제갈량은 또 다시 북벌을 준비했다. 그 때 그의 나이 54살이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당시 제갈량에게는 8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위해 <계자서(誡子書)>를 썼다.

무릇 군자의 행실이란(夫君子之行),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靜以修身) 검소하게 덕을 기르는 것이다(儉以養德).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非淡泊無以明志)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지 못하면 원대한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非寧靜無以致遠). 무릇 배울 때는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고(夫學須靜也) 재능을 쌓으려면 배워야 한다(才須學也). 배우지 않고서는 재능을 쌓지 못하고(非學無以廣才) 뜻하는 바가 없다면 배움을 완성할 수 없다(非志無以成學). 방자하고 오만하면 정신을 전념할 수 없고(淫慢則不能硏精) 불안하고 조급하면 심성을 다스릴 수 없다(險躁則不能勵精). 시간과 더불어 나이는 들고(年與時馳) 하루하루 지나감과 더불어 뜻도 점점 사라지니(意與日去) 마침내 가을날 초목이 시들 듯(遂成枯落) 세상사와 무관하게 된다(多不接世). 그때가 되어 초라한 집에 들어 앉아 슬퍼한 들(悲守窮廬) 어떻게 지난날로 되돌아 갈 수 있겠느냐(將復何及)!

글자마다 주옥 같고 구절마다 경전인 <계자서>는 자식을 훈계하는 영원한 경전으로 남았다.

제갈량은 또 황제에게 소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 소에서는 자신의 가족 일을 언급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소신의 가문에는 성도(成都)에 뽕나무 8백 그루, 농경지 15이랑(頃)이 있으니 우리 가족이 먹고 살기에 넉넉합니다. 국정을 운영하고 군사를 다스리는 소신의 생활비는 모두 관가에서 대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 소신에게는 부를 늘릴 다른 일거리가 없습니다. 소신이 세상을 떠나면 소신의 가족들에게는 절대로 여분의 비단이나 남아 도는 부가 없을 것입니다. 이로써 폐하의 신뢰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대권을 장악한 승상, 한 나라의 조정을 이끄는 제갈량의 청렴함을 잘 보여주는 소이다. 그의 빛나는 형상은 후세 사람들의 추앙을 받아 사람들은 <후출사표(後出師表)>의 내용을 빌어 ‘죽는 순간까지 이 한 몸 최선을 다 한다(鞠躬盡瘁, 死而後已)’는 말로 그를 형용했다.

제갈량은 확실히 이 세상의 귀재였다. 그가 발명한 연노(連弩)는 활 10개를 연속 발사해 수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또 그가 발명한 수송기계 목우유마(木牛流馬)는 얼마나 많은 인력을 대신했는가! 아쉽게도 제갈량의 이런 발명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귀재 제갈량에게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시대가 그의 재능을 제한했고 그의 적수들인 조조와 조조의 뒤를 이은 사마의(司馬懿)는 모두 위 나라와 진(晉) 나라를 세운 뛰어난 능력자들이었다!

두 번째 북벌에 앞서 제갈량은 사절을 손권에게 보내 두 나라가 동시에 위 나라를 공격해 위 나라의 병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이번에 제갈량은 사곡(斜谷)을 경유해 위수(渭水)에서 위 나라 군대와 결전을 벌이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제갈량의 군대가 사곡을 벗어날 때는 사마의가 먼저 위수강의 남쪽 기슭에 배수진을 친 뒤였다. 제갈량은 군대를 위수강 남쪽 기슭의 오장원(五丈原)에 주둔시키고 위 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그는 또 군사를 나누어 둔전(屯田)하면서 오 나라의 움직임과 전승의 기회를 기다렸다.

위명제와 한 차례 전역을 치른 손권은 승전고를 울리지 못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위 나라는 서남부의 전역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교활한 사마의는 100일이 넘도록 제갈량과 대치하면서 출전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출전을 자극하기 위해 여인의 옷을 보내서 그를 모욕하기도 했으나 사마의는 여전히 출병하지 않았다. 사마의는 시간을 무기로 제갈량을 격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의는 한(漢) 나라 사절로부터 제갈량이 밤낮으로 격무에 시달리고 모든 일을 몸소 행하며 매일 수면 시간이 4시간도 안 되고 식사량도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이렇게 몸을 혹사하면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사마의는 시간을 끌면서 싸우지 않고 제갈량을 이기려 계획했다.

결과 사마의가 이겼다. 234년 음력 8월의 밤 하늘에서 눈부신 별 하나가 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떨어져 드넓은 우주로 사라졌다. 과로로 병에 걸린 제갈량이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오장원의 소슬한 가을바람 속에서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 해 그의 나이 54살이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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