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15:59:03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왕실보 편: 제4회 사랑 속에서 숨진 사랑꾼

(사진설명: 왕실보의 <서상기> 삽화)

제4회 사랑 속에서 숨진 사랑꾼 

<서상기(西廂記)>를 쓰기 시작한지 여러 해가 지나서야 왕실보는 초고를 완성했다. 벗들이 너도나도 노래를 불러보며 여러 가지 의견도 제출하고 서로 다른 생각도 내놓았다.

한상공(韓相公)이 말했다.

“‘장군서교주동창서(張君瑞巧做東窓婿), 장군서 교묘하게 사위가 되고, 법본사주지남선지(法本師住持南禪地), 법본 스님은 남선지의 주지라. 노부인개연북당춘(老夫人開筵北堂春), 노부인 북당촌에서 잔치를 열고, 최앵앵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 최앵앵 서상기서 달을 기다리네’라는 이 총 제목에서 동쪽 동(東)과 남쪽 남(南), 북쪽 북(北) 세 글자로 서쪽 서(西)자에 호응하니 참으로 절묘합니다.”

이번에는 이상공(李相公)이 나섰다.

“제1절의 제목이야말로 참으로 절묘합니다.”

노부인 봄날 정원에 들고(老夫人開春院)

최앵앵 야밤에 향을 피우네(崔鶯鶯燒夜香)

어린 홍낭 좋은 일 전하고(小紅娘傳好事)

장군서 도장에서 소란 피우네(張君瑞道場)

이 서두는 사실 노부인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그녀가 홍낭에게 앵앵을 데리고 정원에 가서 바람을 쏘이라고 한 덕분에 앵앵은 장생(張生)과 만나 첫 눈에 정이 들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노부인은 장생이 반란군의 난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면 앵앵과 혼인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위기가 해결되니 그 약속을 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장생을 쫓아내지 않았기에 장생은 서쪽의 별채 서상(西廂)에서 앵앵과 밀회를 즐길 수 있었다.

주렴수(朱簾秀)가 말을 받았다.

“이 극은 정말로 새롭군요! 극중에서 남자 주역과 여자 주역이 모두 노래를 많이 부르니 단본희(旦本戱)도 아니고 말본희(末本戱)도 아니네요. 그리고 심지어 조연까지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네요. 홍낭도 부르고 심지어 꼬마 스님인 혜명(惠明)도 노래를 부르니 이런 극본은 정말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어요!”

여러 사람의 말에 이어 왕실보가 입을 열었다.

“극의 형식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잡극은 항상 1본 4절이라 이런 형식은 아무리 복잡한 내용도 모두 기승전결을 거쳐 틀에 박힌 듯 간단합니다. 그러니 어찌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형식을 이렇게 장편으로 바꾸면 볼거리가 더 많아지고 내용도 더 풍부해질 수 있어서 1본 4절의 틀을 깨버렸습니다. 노랫말을 말하자면, 장편이니 극중 인물도 적지 않습니다. 기존의 잡극은 단본희가 아니면 말본희라 주역 혼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고 기타 인물은 들러리가 되어 버립니다. 너무 협소하지요. 그래서 이 장편극에는 남자 주역도 있고 여자 주역도 있습니다. 물로 두 주역이 주로 노래를 부르지만 다른 조연들에게도 자신을 나타낼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야 더 볼 멋이 있죠.”

허연연(許燕燕)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상기>가 잡극을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5본 21절이나 되다니요? 이런 장편극은 내용이 풍부하니 반드시 후세 사람들에게서도 치하를 받을 거예요. <서상기>는 반드시 자자손손 전해질 거예요.”

이번에는 반아가 말했다.

“노랫말 덕분에 <서상기>는 더욱 자자손손 전해질 거예요. 노랫말이 너무 아름다운데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부분을 한 번 들어와요.”

하늘에는 푸르스름한 구름, 땅에는 누런 국화 꽃잎, 가을바람 몰아치는데 기러기 남으로 날아가네. 새벽녘 가을 숲 누가 붉게 물들였는가? 모두 이별하는 이의 피눈물이라네.

반아가 계속 말했다.

“이 부분도 들어봐요.”

만나기는 더디더니, 헤어짐은 어찌 이리도 빠른가. 긴 버들도 임의 말 매어둘 수 없네. 앙상한 숲아 지는 해 붙잡아다오. 임의 말은 터벅터벅, 내 마차는 허겁지겁, 가슴앓이 면하나 했더니 초장부터 어느새 이별이라. 떠난다는 말 들으니 팔찌가 헐렁해지고 십리(十里) 장정(長亭) 바라보니 온몸이 야위는구나. 이 한을 뉘라서 알아줄꼬?

“이 구절두요.”

반야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임의 말 내 마차를 보니 안타까움에 마음만 태우다 어이 꽃 달고 보조개에 웃음 지을까? 베개 안고 이불 덮고 죽은 듯 잠만 자야지. 옷깃도 소매도 흐르는 눈물만 닦을 뿐이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슬프지 아니한가? 임이여 서글프지만 서신이라도 보내주오.

“이렇게 아름다운 곡조에 이렇게 화려한 문구에 이렇게 깊은 감정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얼마 있겠어요? 이걸 본 사람이라면 어찌 매료되지 않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런 극이 자자손손 전해지지 않으면 어떤 극이 대를 이어 무대에 오를 수 있겠어요?”

반아의 찬사에 이어 한상공이 말했다.

“물론 곡조도 절묘하지만 더 절묘한 것은 마지막에 외친‘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모두 사랑의 결실을 이루라’는 말이야말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지! 정말로 사람을 꿈 속에서 깨우는 굉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앵앵(鶯鶯)과 장군서(張君瑞)가 모두 사랑꾼인 것은 왕형께서 바로 사랑꾼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왕형께서 이 세상 제일의 사랑꾼이 아니시라면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이 세상 최고의 사랑의 절창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상공이 말을 받았다.

“잡극이라 함은 극 중의 첨예한 갈등이 아주 중요합니다. <서상기>의 극중 인물들 간에 갈등이 첨예하고 관계가 복잡하기에 왕형께서 5본 21절의 장편 극을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왕형, 어떤 줄거리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말씀해보시죠.”

왕실보가 대답했다.

“극중 인물들 간의 갈등을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노부인이 장생(張生)과 앵앵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한 갈래인데 극의 모든 이야기가 이 줄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하지만 선비 장생과 소저(小姐) 앵앵, 시녀 홍낭 간에도 작지만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저와 시녀의 신분, 선비와 소저의 신분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소양이 다른 사람들 간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는 그들 간의 갈등도 그려냈습니다. 그래야 재미 있지요. 사실 이 극을 보면 나의 창작의 고충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극이 다채롭지 못하고 예측성도 떨어집니다.”

반아가 먼저 대꾸했다.

“극은 생활을 따라야지요. 그래야 극이 진실성을 가질 수 있고 진실해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지요. 안 그래요?”

반아의 말에 왕실보가 대답했다.

“반아의 말이 맞다. 네가 극을 쓰는 우리들을 초과하는구나.”

벼슬을 싫어한 왕실보는 <원사(元史)>에 오르지 못했다. 그의 평생의 공적은 모두 <서상기>에 있었다. 하지만 <서상기>가 원대도에서 성황리에 공연되며 세상을 흔들 때 왕실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상기>는 이 세상 제일의 음서(淫書)라는 모함을 받아 원 나라 조정에 의해 금서(禁書)가 되었고 공연도 중단되었다. 원대도의 골목과 거리에서 의론이 분분했다. 심지어 왕실보가 아직 살아 있는데도 “왕실보가 잡극을 써서 음란을 선양하고 간통을 가르쳐 그 응보로 혀를 깨물어 죽어서 혀를 뽑히는 지옥에서 고생을 받고 있다”는 황당한 말도 떠돌았다.

이런 소문을 들은 왕결은 급히 집사를 옥경서회(玉京書會)에 보내 부친을 집으로 모셔오려고 했다. 하지만 왕실보는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살았으니 이곳에서 죽어야 눈을 감을 수 있다. 나는 잡극을 위해 살고 잡극을 위해 죽을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과연 왕실보는 옥경서회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는 그의 정인인 반아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의 사후 기녀들이 돈을 모아 그의 장례를 치렀다. 왕실보로 말하면 이는 아마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삶의 마감 방식이리라.

명(明) 나라 가중명(賈仲明)은 <녹귀부(錄鬼簿)>에 왕실보를 추모하는 글 <능파선(凌波仙)>을 추가했다.

풍월영(風月營)에 깃발 빼곡하게 꽂고 영화채(鶯花寨)에서 어지럽게 검을 휘두르고 취홍향(翠紅鄕)에서 큰 뜻을 이루었다. 문구는 아름답고 선비들 속에서는 몸을 낮추었다. 신 잡극, 구 전기 중 <서상기>가 천하 으뜸이로다.

가중명의 이 추모사는 왕실보의 생애에 대한 최종 평가이자 <서상기>에 대한 최고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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