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09:41:02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유백온 편: 제4회 범상하게 삶을 마감하다

(사진설명: 유백온의 사당 일각)

제4회 범상하게 삶을 마감하다

원래 잔인하고 포악한 성품의 주원장(朱元璋)은 황제가 되자 본성을 드러냈다. 보위에 오르기 전에는 어떻게 강적을 소멸하고 강산을 통일할 것인가만 생각했다면 황제가 된 지금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공신들을 제거할 것인가만 고민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고 적국을 멸하면 모신(謀臣)이 죽는 것은 천고의 교훈이었다. 지혜로운 인걸인 유백온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너그러운 마음에서든지 부득이해서인지 더는 주원장을 위해 계략을 내지 않고 대명률(大明律)의 편찬에만 집중했다.

회서(淮西) 일대에서 거사를 시작한 주원장에게 있어서 회서그룹은 가장 믿음직한 버팀목이자 측근이었다. 따라서 명(明) 왕조 건국 후 이선장(李善長)을 중심으로 하는 회서 측근들은 최고의 상을 받아 이선장은 한국공(韓國公)에 책봉되고 관직도 승상(丞相)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일의 모신인 유백온은 3등에 머무는 성의백(誠意伯)에 책봉되고 관직도 언관(言官)인 어사중승(御史中丞)에 그쳤다.

참으로 화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홍무(洪武) 원년(1368년), 이선장의 측근인 이빈(李彬)이 법을 어겨 주원장이 참형을 명하였다. 이선장이 유백온을 찾았다.

“선생은 천문의 이치에 능하니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경성에 가뭄이 들었는데 이 때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대사령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선장의 말에 강직한 유백온은 이렇게 대꾸했다.

“이빈이 죽으면 하늘이 비를 내릴 것입니다.”

이빈이 죽고 이선장이 노했다. 이빈이 죽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비를 내리지 않았다. 이선장은 이 기회에 사람을 황제에게 보내 유백온을 헐뜯었다.

군자는 소인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 유백온은 스스로 벼슬을 그만 두고 귀향하며 양헌(楊憲)을 자신의 후임자로 지목했다. 경성을 떠나면서 유백온은 황제에게 두 가지를 권고했다.

“봉양(鳳陽)이 폐하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제왕의 도시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원(北元)의 기병은 여전히 강하니 막북(漠北)에는 출병하지 마십시오.”

유백온의 예리한 안목과 정확한 판단은 그 후의 사실이 증명했다.

주원장은 유백온이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다시 그를 불렀다.

“이선장이 노쇠해졌소. 선생이 보기에 누가 승상이 될 수 있겠소?”

“폐하, 이 일은 폐하께서 스스로 결단하실 일입니다.”

주원장이 또 물었다.

“짐이 양헌(楊憲)을 생각하는데 선생 생각은 어떻소?”

황제의 속마음을 안 유백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양헌은 승상의 재능은 가지고 있으나 승상의 도량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파벌을 만들지 않는 걸 봐서 유백온은 이선장보다 현명하다.”

유백온의 대답에 이렇게 생각한 주원장이 질문을 계속했다.

“왕광양(汪廣洋)은 어떻소?”

왕광양은 회서출신이 아니다. 유백온은 황제가 자신과 왕광양이 파벌을 만들었다고 의심한다고 판단해 이렇게 대답했다.

“왕광양은 천박해서 승상에 맞지 않습니다.”

주원장이 또 회서출신의 한 명을 지목했다.

“호유용(胡惟庸)은 안 되겠소?”

유백온은 자신의 판단을 사실대로 말했다.

“호유용은 송아지라 언젠가는 밭을 가는 쟁기 줄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주원장이 탄식했다.

“아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안 된다면 선생만이 이 중임을 맡을 수 있겠소.”

황제의 말에 유백온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마음 속 말을 뱉어버렸다.

“제가 그럴 능력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악한 것을 원수같이 미워하는 성격이니 저 역시 승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폐하께서 스스로 정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유백온의 말에 주원장은 더 질문하지 않았다. 유백온은 황제와의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 마디 곁들였다.

“조정의 문무대신들 중 제가 보기에 승상에 적합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유백온은 주원장과 같은 황제가 있는 한 그런 황제의 승상이 될 사람이 없다는 참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백온의 이 말로 주원장은 은근히 화가 났다.

홍무(洪武) 3년(1370년), 주원장은 이선장을 중심으로 하는 회서파(淮西派)가 결탁하여 사리사욕을 꾀하고 그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여겨 이선장을 제거하려 했다. 주원장은 이 일을 유백온에게 맡기려 했으나 개국공신을 제거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고 하물며 언젠가는 자신도 황제의 제거명단에 들 것이라고 생각한 유백온은 이렇게 말했다.

“기둥을 바꾸려면 반드시 거목을 써야 합니다. 작은 막대기를 쓰면 집이 금방 무너질 것입니다.”

유백온은 이렇게 중신(重臣)을 쉽게 제거하지 말라고 황제에게 권고한 동시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주원장은 유백온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면서도 여전히 화가 나서 유백온에게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어지를 내렸다.

이로써 유백온은 평안하게 고향에 돌아가 천륜을 누리면서 천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오히려 유백온의 액운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홍무 6년(1373년), 호유용이 승상이 되었다. 소인배는 군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 법이다. 유백온이 관직도 없이 집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신세임에도 호유용은 유백온을 모함했다. 그는 주원장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알았기에 형부상서(刑部尙書) 오운(吳雲)을 시켜 유백온을 탄핵하게 했다. 그들은 천문과 지리에 능한 유백온이 고향의 담양(談洋)이라는 산지를 빌어 사람을 모아 역모를 꾀하며 자신의 아들을 시켜 담양에 순검사(巡檢司)를 설립하게 해달라는 소를 조정에 올리게 했는데 그것은 사실 담양에 제왕의 기운이 있기 때문이라고 황제에게 고했다.

“뭐? 제왕의 기운? 그가 역모를 꾀하는 거냐?”

원래부터 유백온의 예지와 지혜를 두려워한 주원장은 ‘제왕의 기운’이라는 말에 유백온을 제거해서 후환을 없애려고 작심했다.

큰 화가 곧 도래할 것임을 안 유백온은 스스로 경성에 올라와 주원장의 시야 범위에 들었다. 과연 주원장은 잠시 그를 죽이지 않기로 작심했다.

홍무 8년(1375년), 유백온이 질환에 걸렸다. 주원장이 호유용을 보내 병문안을 했다. 호유용이 가져온 약을 먹은 유백온의 병세는 갈수록 중해서 주원장은 유백온을 고향에 돌려보냈다. 유백온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설적인 65년의 인생을 마감했다.

중국문명사에서 눈부신 별 하나가 졌다. 하지만 그의 신묘함에 대한 전설은 중국인들 속에서 길이길이 전해지며 영원히 지지 않는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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