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09:54:04 출처:cri
편집:李仙玉

[갈홍 편-4] 아름다움과 득도성선

흰 구름이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붉은 놀이 산마루를 넘나들며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갈홍은 나부산에 올라서부터 연단을 조제하고 글을 쓰는 여가에 늘 혼자 산을 마주하고 묵상하며 혼잣말을 했다. 어느 날, 그는 채색의 구름이 산골짜기에서 피어나 하늘가로 흘러 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하늘에 왜 신선이 없겠는가? 저 하늘가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라. 반드시 누군가 득도성선했을 것이다. 예로부터 선도(仙道)와 선술(仙術)이 있었으니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천명해보자. 그러면서 나 자신의 견해도 그 속에 담고 말이다.”

천 년 수령의 용수나무 줄기가 긴 수염처럼 바람에 한들거리는 것을 본 갈홍은 갑자기 상상이 나래를 펴서 용수나무 요정이 집에서 잠을 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 인간이 신선이 되는데 왜 나무는 요정이 될 수 없겠는가? 도동(道童)은 흰 수염의 노옹이 용수나무 아래 앉아서 쉬는 것을 자주 보았다고 하는데 그 노옹이 바로 용수나무 요정일 것이다.”

갈홍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신선을 믿었고 만물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로써 갈홍은 위진(魏晉)시기 신선도교이론 형성의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신선도교 형성의 이론적인 체계를 수립한 갈홍은 민간의 원시적인 도교를 종말 짓고 신선도교이론을 창립했다. 또 그가 창작한 <신선전(神仙傳)>은 신선도교의 중요한 저서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갈홍은 깊이 사색하며 책을 보기를 좋아했다. 그는 조비(曹丕)의 <전론·논문(典論·論文)>을 보고 또 보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모두 문장은 성현의 도를 밝힌다고 말했다. 문장은 도를 담는 도구에 그친다는 것이다. 위문제(魏文帝)는 ‘문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일이자(經國之大業) 영원히 썩지 않는 훌륭한 일(不朽之盛事)’이라고 말했다. 문학의 지위를 아주 높게 쳐준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문학은 도구에 그치고 덕을 쌓는 것이 의견을 제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내가 보기에 문장은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는 덕행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아, 문장과 덕행은 마치 10척(尺)과 1장(丈)의 관계와 같다. 문장 자체의 의미, 즉 상천수상(上天垂象), 응부팔괘(鷹負八卦), 구배육갑(龜背六甲), 호병표위(虎炳豹尉) 등 문장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의 존칭, 주문왕과 주공단의 시호처럼 중요하다. 문장이 있어서 사물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갈홍은 중국에서 문장 자체의 가치를 인식하고 문장과 덕행을 동등하게 논한 첫 사람이다. 그는 덕행의 우열은 쉽게 갈리지만 문장의 심미안적 가치를 가늠하는 표준은 정하기 어렵다고 여겼으며 여러 가지 예술적 아름다움은 평등하다고 인정했다.

나부산에 살면서 가을 달과 봄 바람, 산과 들에 가득한 흐드러진 들꽃, 화려한 단풍과 푸르른 소나무에 익숙한 갈홍은 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봄날의 꽃과 가을의 달, 붉은 단풍과 푸른 소나무는 각자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설마 높고 낮음의 구분이 있겠는가? 비록 <논어(論語)>에 ‘악자탈주(惡紫奪朱)’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옛 사람들이 보라색을 정색(正色)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천지간에서 울긋불긋 피어난 온갖 꽃 중에 보라색 꽃이 붉은 색 꽃보다 훨씬 더 많다. 어느 색깔의 꽃이 아름답지 않고 어떤 아름다움이 평등하지 아니하겠는가? 아름다움은 다양하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감상기준도 다양해야 한다. 문장 자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감상자들의 서로 다른 감상취미와 감상능력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문장의 예술적 가치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하늘가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저녁놀을 바라보는 갈홍의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사람의 감상취미는 천태만상을 이루며 늘 강한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는 마치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지만 황제(黃帝)는 추녀인 모모(嫫母)을 아내로 들였으며 진(陳)나라 임금은 엄청 못 생긴 돈흡(敦洽)을 좋아한 것과 같다. 보통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만 한순제(漢順帝)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좋아해 새 울음소리가 거문고를 훨씬 초과한다고 여겼다. 사람들의 감상취미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감상능력 또한 상이하다. 감상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눈앞에 남위(南威)와 서시(西施)가 서 있다 해도 보지 않을 것이고, 귓가에 장엄한 음악이 들려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감상능력의 높고 낮음은 감상취미와 연관된다. 저속하거나 상스러운 음악에 습관된 사람은 훌륭하고 고상한 음악을 감상할 수 없다.”

중국문화에서 가장 결여되는 것이 바로 다원화와 평등의식이다. 문학과 예술의 미학에 대한 갈홍의 기여는 바로 최초로 문학의 아름다움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것이며 여러 가지 아름다움은 모두 평등하다고 제출한 것이다. 갈홍의 미학적 관념은 한결같음을 강조하고 등급을 나누는 중국의 전통문화로 말하면 대담한 모반이자 유력한 충격이다.

갈홍이 나부산에 올라 연단을 조제하고 수행하며 의술을 행하고 저서를 쓰는 동안 산중에서 봄날의 꽃이 몇 번 피고 지고 가을철 단풍이 몇 차례 날렸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등악(鄧岳)은 갈홍의 서신을 받았다. 갈홍은 서신에서 스승을 찾아 곧 먼 길을 떠날 예정이라며 산을 내릴 날짜를 정했다고 썼다. 등악은 갈홍과 작별인사를 나누려고 급히 나부산에 올랐다. 하지만 등악이 산에 오르니 갈홍은 도관(道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자는 듯 81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갈홍의 입관을 책임진 도동(道童)이 등악에게 말했다.

“선사(仙師) 입관 시 몸이 아주 가벼웠습니다. 아마도 선사께서 신선이 되시어 하늘로 올라가신 듯 합니다.”

그로부터 민간에는 갈홍이 나부산에서 득도성선(得道成仙)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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