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같을 여(如 rú), 해석할 석(釋 shì), 무거울 중(重zhòng), 짐 질 부(負fù).
◎뜻풀이: ①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 같다. ②몸과 마음이 홀가분하다(가뿐하다).
◎출전: 『곡량전•소공29년 (穀梁傳•昭公二十九年)』
◎유래: 춘추시대(春秋時代) 노양공(魯襄公)이 죽고 노소공(魯昭公)이 즉위했다. 당시 노나라의 실권은 계손숙(季孫宿) 등 세명의 중신(三卿)들이 장악했으며 그중에서도 계손숙의 세력이 제일 막강하여 왕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소공은 향락에 빠져 국사는 뒷전으로 했기에 점차 민심을 잃어갔다. 대부 자가기(子家羁)가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왕실의 힘을 키울 것을 몇번이나 간언했으나 소공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후 소공은 계손씨 등 세명의 대신이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임을 알아 차리고 대신들중에서 이 세명을 반대하는 사람을 물색해 대항마로 삼으려 했다.
얼마 후 계손숙이 죽고 그의 손자인 여의(如意)가 계속 권력을 장악했다. 대부 후손(郈孫) 등 사람들이 계손여의와 알륵이 있어 여의를 제거하려 했다. 이들은 소공의 장자인 공위(公爲)와 이 일을 가지고 밀담을 나눴다.
공위가 궁에 돌아가 이 사실을 소공에게 알리니 대신들간에 알륵이 있음을 안 소공은 크게 기뻐하며 은밀히 이들을 궁에 불러 함께 계손씨를 척살할 방도를 의논했다.
이해 가을, 삼경(三卿) 중의 한명인 숙손표(叔孫豹)가 다른 사정이 있어 도성을 떠나자 소공은 이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후손 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계손씨의 저택을 포위하도록 했다. 그러나 형세가 돌변해 삼경의 군대가 연합하게 되었고 오히려 소공을 역공하니 대세가 기울어 졌을 느낀 소공은 제나라를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소공이 민심을 잃었기에 백성들은 도망친 왕을 동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듯 한 느낌이었다.(여석중부)
성어 “여석중부”는 사학자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내린 평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