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10:13:04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이시진 편: 제1회 떠돌이 의사가 된 御醫

(사진설명: 벽화로 보는 이시진)

중의약학의 성인 이시진

그는 어릴 때 부모의 기대를 어기고 몰래 의서를 보며 의사가 되기로 작심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거리와 골목을 다니며 아픈 사람을 구했다. 그는 이렇게 수많은 범상한 날로 위대한 평생을 쌓았다.

그는 새로운 약전(藥典)의 편찬으로 백성들에게 복을 마련해주기 위해 황실 봉록을 받는 태의원(太醫院) 어의를 그만 두고 멀리 편벽한 시골을 다니며 갖가지 약초를 맛보면서 천신만고 끝에 동양의학의 거작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완성했다.

그가 바로 고대 중국의 위대한 의학자이자 약물학자이며 박물학자인 명(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이다. 그가 편찬한 <본초강목>은 당시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과학적이며 약물분류가 가장 체계적인 의서로 십 여가지 외국어로 번역되었고 다윈에 의해 ‘중국 고대의 백과전서’라 불린다.

중의약학의 성인 이시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떠돌이 의사가 된 御醫

명(明) 가정(嘉靖) 36년(1557년) 6월의 어느 평범한 여름 날이었다. 명 왕조의 국도인 북경성(北京城)에는 햇빛이 눈부시고 온갖 꽃이 만발했다. 하지만 자금성(紫禁城) 안의 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창 밖의 아름다운 경치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이 여전히 단약을 만들기에 바빴다.

태의원(太醫院)의 어의인 이시진은 이날 궁중 장서실(藏書室)에 들어갔다가 우연하게 반 세기 동안 먼지만 쓰고 있던 기서(奇書) <본초품회정요(本草品匯精要)>를 발견했다.

인생은 원래 예측불가이다. <본초품회정요>으로 인해 이시진의 인생궤적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그로부터 그의 삶이 어려운 가시밭 길로 향했지만 그로 인해 그의 전기적인 인생은 여름 날의 꽃처럼 화려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본초품회정요>가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시진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책은 책 자체가 레전드였다. 이시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인 명 홍치(弘治) 16년(1503년)의 일이다. 당시 황제들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근면한 효종(孝宗)제가 세상 명의를 불러 모아 왕조의 약전(藥典)을 편찬하라는 어명을 태의원에 내렸다. 누가 감히 어명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어의와 궁중 화가를 포함한 49명이 태의원판(太醫院判) 유문태(劉文泰)의 주관으로 약물 내용을 편찬·초록하고 그림을 그리고 약효를 검증하며 1년 6개월간 밤에 낮을 이어 끝내 <본초품회정요>를 완성했다. 효종제가 직접 책의 서문을 쓰고 명 나라 때 편찬한, 현재도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백과전서인 <영락대전(永樂大典)>의 격식을 모방해서 36권으로 장정한 후 녹나무 갑에 넣어 궁중의 필사본으로 두었다.

명 왕조의 약전 <본초품회정요>가 세상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약전이 완성되어서 2개월 후에 효종제가 갑자기 붕어했다. 그리고 그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관계로 약전의 편찬에 참가한 49명 중 12명이 황제시해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은 참으로 일리가 있다. 그 바람에 이 기서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황실의 장서실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다.

이시진은 약전이 만들어져서 반 세기 후에야 이 기서를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지만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답습한 이 저서에 오류가 적지 않고 설명이 제대로 안 된 부분도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황실이 소장한 저서가 이 정도니 민간 본초서(本草書)들의 오류는 더욱 많지 않겠는가. ”

이시진은 고향에서 의사로 있을 때 보았던 가슴 아픈 일들을 상기했다.

“그 때 한 의사가 <일화본초(日華本草)>에 근거해 호장(虎掌)을 누람자(漏籃子)로 잘못 알고 환자에게 복용시켰는데 다행히 내가 제때에 바로잡아서 환자가 죽지는 않았다. 아아, <일화본초>마저 호장과 누람자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어찌 사람 잡는 돌팔이 의사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약서(藥書)에는 오류가 너무 많다. 방규(防葵)와 낭독(狼毒)을 동일한 약초로 보니 졸의들이 낭독을 정신착란을 치료하는 방규로 알고 정신질환 환자에게 처방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보았겠는가! 이 저서는 또 황정(黃精)과 구문(鈎吻)도 분간하지 못해 독극물인 구문을 보약인 황정으로 여겨 많은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아, 나는 이런 일을 너무 많이 보았지.”

이렇게 탄식하던 이시진의 머리 속에 갑자기 섬광이 번뜩했다. 그는 남은 생을 약초의 실물을 보고 오류를 수정하며 선인들의 연구성과를 보충하여 새로운 <본초(本草)>를 쓰는데 바치자는 엄청난 생각을 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이시진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온갖 약초를 맛보고 고서를 정리해서 새로운 약전(藥典)을 쓸 생각이오. 우리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이시진의 말에 아내가 반문했다.

“태의원의 봉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도 안정적이고 황실에 속하잖아요. 그걸 버리려 구요?”

“큰 일을 하려면 안정된 삶을 버려야지. 태의원을 그만 둘 생각이오.”

“그럼 이제 우리는 뭘 먹고 살아요?”

아내의 말에 이시진은 웃으며 대꾸했다.

“태의원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무얼 했소? 우리가 굶어 죽었소? 이제부터 약초의 효능을 검증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할 것이니 생계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당신이 큰 일을 할 생각이라면 저는 당연히 당신편이에요.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두 아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마음 놓고 당신이 할 큰 일을 해요.”

그 해 이시진은 33살이었고 천거를 받아 태의원 어의로 임직한지 1년도 안 되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고상한 직업인 태의원 어의를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가 떠돌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시진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시진은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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