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고개지의 그림작품)
제3회 <傳神論>의 <낙신부도>
고개지는 몇 달 째 방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낙신부도(洛神賦圖)>를 그렸다. 긴 두루마리 장권(長卷)이 곧 마무리 되는 때 고개지는 정신이 흐리멍덩해져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멍한 표정으로 저 멀리 물결 위에 떠 있는 낙신(洛神)을 정답게 바라보는 그림 속 조식(曺植)의 꿈을 꾸는 듯한 눈에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놀라서 날아오르는 기러기 같고(翩若驚鴻) 멋진 용과도 같은(婉若遊龍)’자태의 낙신은 머리를 높게 쪽지고 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선녀처럼 우아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그녀의 눈에도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깊은 정이 어려 있었다.
고개지는 눈앞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그는 조식이 살아 나고 낙신이 움직이는 것을 분명 보았다. 두 사람은 그림 속에서 만나고 또 만나 사뿐사뿐 걸으며 바람에 치맛자락을 날렸으며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물가를 거닐며 웃는 듯 우는 듯, 말할 듯 하다가도 또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마지막에는 서운해하면서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며 낙신은 용운거(龍雲車)에 앉아 구름 속을 날아 점점 멀어져 가고 망연자실한 조식은 정처 없이 물가를 거닐다가 처량하게 자리를 뜨군 했다…
고개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물을 그리려면 그 인물의 성격을 그려내고 인물의 표정과 정신적 세계도 보여주어야 한다. <낙신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데 사람들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은 그림이 나오겠는가?”
그 때 아마 고개지는 그가 그린 <낙신부도>가 긴 두루마리에 연이어 그림을 그림으로써 스토리가 완전하고 창작수법이 다양하며 예술형식이 심오하고 인간과 신선 간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묘사한 시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때로부터 같은 제재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고개지의 <낙신부도>는 중국 회화역사의 절품(絶品)이 되고 중화문명의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낙신부도>를 다 그린 고개지는 이렇게 탄식했다.
“정말 늙었구나. 이 두루마리를 그리고나니 머리가 다 희고 에너지가 다 소모되었구나. 과거에는 한 달 내내 와관사(瓦官寺)의 벽화를 그려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말이다. 젊음이 참으로 좋았구나!”
고개지는 저도 모르게 젊었을 때 와관사의 벽화를 그리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렸다…
건강(建康)의 와관사가 완공되었다. 절을 짓는데 돈이 엄청 들어서 절에는 빚이 가득했다. 주지스님은 신도들의 모금을 받기로 결정했다. 첫 날에는 그래도 모금이 잘 되었다. 1백 전(錢)을 낸 사람도 있고 1천 전(錢), 1만 전(錢)을 낸 사람도 있었으며 최고로는 누눈가 5만 전(錢)을 냈다. 주지스님은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 날 내가 가서 모금 기록부에 100만 전(錢)을 쓰자 주지스님이 깜짝 놀라 말했다.
“시주님, 석가모니불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말 한대로 할 것입니다. 단, 저에게 불상을 그리도록 흰 벽을 하나 내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한 달 후에 반드시 100만 전을 모금하도록 담보하겠습니다.”
절의 문을 닫고 나는 한 달 동안 벽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주지스님에게 말했다.
“유마힐(維摩詰)의 벽화를 다 그렸습니다. 이제 절 문을 열면 눈을 그리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첫 날에 그림을 보러 올 경우 한 사람이 절에 10만 전을 기부하고 두 번째 날에는 반으로 줄여 5만 전을 내며 세 번째 날부터는 임의로 기부하라고 말하십시오.”
주지스님이 벽에 그려진 유마힐의 화상을 보니 아직 눈을 그리지 않았지만 불상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해서 부르면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았다.
주지스님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절 문을 열자 나는 유마힐의 눈을 그렸다. 그 순간 부처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 나와 절 안을 가득 채웠다. 문밖에 있던 신도들은 한꺼번에 들이닥쳐 벽화를 바라보며 절하고 염불했다.
“자비로운 석가모니불이시여 중생을 제도하시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그 벽화는 담묵(淡墨) 훈염(薰染)의 방식으로 질감을 더해주고 철선(鐵線) 붓으로 윤곽을 그려 석가모니의 오관은 세밀하고 표정은 고요하면서도 자비로웠다. 또 승의(僧衣) 라인은 미끈하고 바람에 날리는 듯 해서 석가모니는 불성(佛性)으로 가득하면서도 우아하고 생동했다. 건강 전체가 들썩였고 벽화를 보러 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반나절도 안 돼서 모금 액은 몇 백만 전을 초과했다. 나는 끝내 약속을 지켰다…
추억에 잠겨 있던 고개지는 문득 “나이도 들고 체력도 전 같지 않은데 중요한 일을 잊었구나. 그렇게 많은 인물화를 그렸는데 소감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쓰지 않으면 후에는 쓸 겨를이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전신론(傳神論)’을 반드시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고개지는 하인에게 붓과 종이를 준비하게 하고 <위진승류화찬 (魏晉勝流畵贊)>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그림작품의 분류를 나누고 그림을 평가하는 최고 표준으로는 첫째, 내용으로 정신세계를 그리는 이형사신(以形寫神), 둘째, 서로 제약하는 객관과 주관적 관계를 말하는 천상묘득(遷想妙得)을 꼽았다. 다시 말하면 인물화를 잘 그리려면 인물의 모양을 사실 그대로 그려야 하는 동시에 인물의 표정과 내적인 정신세계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양과 표정을 다 갖추어야 가작(佳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