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10:31:46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이시진 편: 제4회 <본초강목>을 편찬한 聖人

(사진설명: 이시진의 동상)

제4회 <본초강목>을 편찬한 聖人

이시진(李時珍)은 평생의 심혈을 기울여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며 표본을 채집하고 그림을 그리며 30년만에야 끝내 천고의 거작 <본초강목(本草綱目)> 편찬을 마쳤다. 그 동안 이시진은 혈기왕성하고 걸음도 나는 듯 하던 중년으로부터 머리는 은발,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노인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흐뭇해했다.

<본초강목>은 52권에 도합 190여만자에 달하며 1,160여폭의 삽화도 망라한다. 기록된 약용 물질은 1,892종이고 그 중 이시진이 새롭게 추가한 약용 물질은 374종이며 수집한 처방전은 1만 1,096종이나 된다. <본초강목>에서 강(綱)은 약물의 명칭을 말하고 목(目)은 분류별 해석을 말한다. 약용 물질을 분류하여 열거함으로써 명칭을 통한 편리한 검색이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시진은 당시에 벌써 생물진화론을 알았던 것 같다. 그는 <본초강목>의 약물을 자연의 진화체계에 근거한 것처럼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간단한 데서 복잡한 데로, 저급에서 고급으로 분류했다. 그리하여 진화론을 창제한 다윈도 이시진의 <본초강목>을 ‘중국 고대의 백과전서’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과학적인 분류법은 <본초강목> 전에는 없었던, 중국 최초로 되는 이시진의 창조이다! 그는 약용 물질을 광물질과 약용 식물, 약용 동물로 분류했고 광물질은 또 금(金)과 옥(玉), 석(石), 노(鹵) 등 네 부분으로 나누었으며 약용 식물은 초(草)와 곡(谷), 채(菜), 과(果), 목(木) 등 다섯 부분으로 분류하고 초(草)는 또 성산초(成山草)와 방초(芳草), 성초(醒草), 독초(毒草), 수초(水草), 만초(蔓草), 석초(石草) 등으로 나누었다. 약용 동물은 충(蟲)과 린(鱗), 개(介), 금(禽), 수(獸), 인(人) 등 여섯 분류로 나누었으며 그 밖에 복기부(服器部)도 별도로 두어 과학적으로 분류했다.

식물에 대한 이시진의 과학적인 분류는 스웨덴 과학자 칼 린네의 생물 분류학 발명에 비해 200년이나 앞섰으니 이시진은 또 최초의 분류학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시진이 평생을 기울여 이런 거작을 편찬한 목적은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편찬을 마친 이시진은 노후에 <본초강목>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많은 환자들이 잘못된 약물로 생명을 잃지 말며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75세 고령의 이시진은 <본초강목> 출간을 위해 쇠약한 노구를 끌고 몸소 호북(湖北)으로부터 남경(南京)으로 가서 서적상인을 찾았다. 그런데 이시진의 원고를 본 그 서적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에서 사람은 불로장생할 수 없고 단약을 먹으면 더 일찍 죽는다고 했는데 이는 황제폐하께서 제일 꺼리시는 일입니다. 선 황제폐하께서는 단약제조를 제일 좋아하시고 불로장생을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선 황제폐하께서는 붕어하셨지만 작금의 폐하께서는 선 황제폐하의 손자이시니 이런 내용을 보면 반드시 노하실 것입니다. 제왕의 위엄을 범할 수 있습니까? 제왕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습니까?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 아마 우리 두 가문 모두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정말 책을 내려면 제왕의 뜻을 거스르는 이 부분을 삭제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시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닌데 왜 삭제하겠습니까? 그리고 단약을 먹고 붕어한 선 황제폐하 때문에 단약에 빠진 온 세상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게 내버려 두어야 하겠습니까?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서적상인은 양보하지 않았다.

“선생의 말이 금과옥조라 해도 만에 하나 황제폐하의 기분이 나쁘면 우리는 화를 당하게 됩니다. 자신이 먼저 죽으면 어찌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단약이 독이 있다는 그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만들지 못하겠습니다.”

우울한 심정을 안고 집에 돌아온 이시진은 단약의 피해를 설명하고 <본초강목>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황제에게 올릴 소를 썼다. 그리고 그는 또 반드시 <본초강목>을 책으로 펴내서 세상 사람들이 보게 해달라는 유언을 아들에게 남겼다.

<본초강목>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위대한 의약학자 이시진은 75세 때 돌연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평생을 바쳐 쓴 거작이 출간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을 마련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했다.

눈부신 보석은 영원히 진흙 속에 묻혀 있지 않는 법이다. 이시진이 세상을 뜬 3년 후에 남경의 한 대담한 도서상인 호승룡(胡承龍)이 이시진의 아들로부터 원고를 받아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글자도 수정하지 않고 한 폐지도 삭제하지 않은 완전한 <본초강목>을 책으로 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초강목>은 온 세상에 이름을 날려 사람들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의서(醫書)로 여겨졌다. 조정 관리들의 추앙으로 인해 <본초강목>은 또 명 왕조 사대부들이 집집마다 갖추는 필독서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여전히 중국 의학자들이 반드시 읽는 고전이며 해외에까지 전파되어 전세계 의학자들의 숭배를 받으며 전 세계가 공인하는 동양의학의 권위적인 약전(藥典)으로 평가 받는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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