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고개지의 작품)
제4회 痴絶과 才絶 그리고 畵絶
고개지는 자신이 아끼는 그림 몇 점을 골라 궤짝에 넣고 봉인한 후 하인을 시켜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의 아들인 환현(桓玄)의 집으로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환현에게 말했다.
“나는 오로봉(五老峰)에 가서 설경을 감상하고 산수화를 그려야 하겠네. 아마도 며칠이 걸릴 것 같네. 시간을 들여 풍경을 자세히 보아야 다른 사람이 그린적이 없는 산수화를 그릴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동안 내가 그린 그림들을 이 궤짝에 넣었으니 나 대신 이 그림들을 맡아주시겠는가?”
환현이 대답했다.
“당연히 되지.”
고개지가 사생(寫生)을 떠난 후 환현은 매일 그 궤짝만 멍하니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신선이 있다고 믿는 장강(長康)은 사람이 아주 천진난만하다. 방법을 대서 궤짝의 그림을 훔치고 신선이 가져갔다고 하면 그는 반드시 내 말을 믿을 것이다.”
환현은 궤짝 뒷면의 판자를 떼내고 그림을 모두 꺼낸 다음 다시 궤짝을 원상 복귀시켰다.
고개지가 돌아왔다. 환현은 빈 궤짝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고개지가 보니 궤짝에 붙인 봉인이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고개지가 궤짝을 여니 그림 한 점 남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고개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환현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림들이 왜 감쪽같이 사라졌지?”
“신선이 가져간 것이 아닐까?”
환현의 말에 고개지는 신나서 떠들었다.
“사람이 표연히 사라져 신선이 되는데 왜 그림이라고 우화성선(羽化成仙)하지 못하겠는가? 내 그림은 영을 가지고 있으니 하늘로 날아 올랐을 것이네.”
고개지는 환현이 자신의 그림을 훔쳤으리라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는 고개지를 바라보며 환현이 몰래 웃었다.
“이러니 사람들이 장강을 치절(痴絶)이라 부르지. 이 천재는 정말로 바보 멍청이구나.”
고개지의 치절은 그의 재절(才絶), 그의 화절(畵絶)만큼이나 유명해서 경박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를 치켜세우지만 사실상은 그를 비웃었다. 시를 읊기를 좋아하는 고개지에게 사람들이 말했다.
“과거 낙양(洛陽)의 명사들은 콧소리로 시를 읊었는데 왜 그들을 따라 배우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 우아하고 풍치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말에 고개지가 말했다.
“콧소리를 내는 건 여인들이나 하는 짓이니 나는 그들을 따라 배우지 않겠소. 나는 그 따위 늙은 여인의 소리 같은 걸 내지 않을 것이오!”
고개지의 말에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고개지는 만년(晩年)에 산기상시(散騎常侍)를 담임하며 사첨(謝瞻)과 이웃으로 살았다. 고개지가 저택 마당에서 시를 읊자 담 너머 마당에서 사첨이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그러자 고개지는 더욱 신나서 더 높은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후에 사첨은 자신은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하인더러 자신을 대신해서 계속 갈채를 보내게 했다. 시 낭송에만 정신이 팔린 고개지는 사람이 바뀐 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이 밝을 때까지 시를 읊었다.
고개지가 사술(邪術)을 믿는다는 것을 안 환현이 나뭇잎 한 장을 가지고 고개지를 찾았다.
“매미가 이 나뭇잎에 몸을 숨기는 것을 보니 이 나뭇잎에 은신술(隱身術)이 씌었나 보네. 그대가 만약 이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면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보지 못할 것이네.”
그 말을 믿은 고개지가 놀라서 말했다.
“원래 이 나뭇잎이 바로 사라나무 가지였네 그려!”
사라나무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은신초를 말한다. 고개지는 그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환현의 앞에서 소변을 보았다. 은신술의 나뭇잎으로 인해 환현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거리라고 믿은 고개지는 그 나뭇잎을 보배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어떤 한 가지 일에 푹 빠진 사람은 모두 이렇게 바보가 되는 것일까. 고개지는 62세가 되는 해에 산거상시직에서 별세했다.
번역/편집: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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