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17:06:41 출처:原创
편집:林凤海

인민의 지도자--한 폭의 서예작품에 담긴 가풍


1999년 3월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이 가풍 전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사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모친 치신(齊心)이 필사한 명나라 시기부터 전해내려온 관잠(官箴)이다. "吏不畏吾严而畏吾廉,民不服吾能而服吾公;公则民不敢慢,廉则吏不敢欺;公生明,廉生威", 이는 "부하들이 나를 경외하는 것은 엄격함이 아니라 청렴함이며, 백성들이 나를 믿는 것은 내가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정하게 일을 하는 데 있다. 공정하면 백성이 감히 속이지 못하고, 청렴하면 부하들이 감히 홀대하지 못한다.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청렴 결백해야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뜻으로 관리는 사심이 없이 공정하고, 청렴 결백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함을 일깨워 준다.

필적이 수려한 이 한 폭의 서예작품에서 우수한 가풍의 전승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3월. 시진핑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부인 치신의 서예작품 '관잠'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다. 

1953년 6월, 시진핑 주석은 가정과 가정교육, 가풍을 중시하는 혁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은 부모를 가장 걱정시키는 것은 자녀의 성장이라며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1972년 겨울, 치신과 자녀들. 앞줄 오른쪽으로부터 치차오차오(齐橋), 치신, 시안안(習安安). 뒷줄 오른쪽으로부터 시진핑, 시위안핑(習遠平)

시진핑 주석은 어릴 때 남동생과 함께 누나들이 입었던 옷을 입거나 신었던 신발을 신었다. 열여섯 살도 안 돼 시 주석은 집을 떠나 섬북(陝北)의 농촌생산대에서 일했다. 그 때 모친 치신이 담요를 만들어주었는데, 알록달록한 천 조각으로 만들어진 담요는 헌 옷을 재단해 이어 붙여 만든 것이었다. 시 주석은 "그 담요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지도직에 오른 후 치신은 가족회의를 열어 다른 자녀들이 시 주석이 일하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시 주석은 2001년 바쁜 일상 업무로 아버지의 88세 생신잔치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해 춘제(春節·설)에도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설을 쇠지 못했다. 아들이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치신은 오히려 흐뭇해했다. 그는 시 주석에게 "일을 잘하면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가장 큰 효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신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면서 다년간 줄곧 검소한 생활 습관을 유지했다. 직장이 집에서 멀고 가족과 항상 떨어져 있었지만 그는 남편의 관계를 이용해 직장을 옮겨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시중신 곁에서 20년간 일해온 장즈궁(張志功)은 치신은 "삶에서 특별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일에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혁명 가정의 '공'(公)과 '렴'(廉)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1972년 생산대에서 귀경하여 휴가할 때 시진핑 주석의 모습이다.

세월이 흘러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는 모친의 이야기를 듣던 어린이에서 량자허(梁家河) 마을 사람들이 인정한 "고생을 잘 견디는 젊은이", 푸젠(福建) 인민들이 높이 평가하는 "백성 성장", 나아가 14억이 넘는 중국 인민을 이끌고 민족 부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새로운 여정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시진핑 주석은 시종일관 부모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있다.

그는 항상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청렴한 것은 공산당원의 본색"이라며 "우리는 반드시 이 본색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풍을 전승해온 시진핑 주석은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며 입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그는 '혀끝의 낭비'를 없애기 위한 '빈그릇 운동'을 요구하는 서면지시를 여러 번 내렸다. 2018년 시진핑 주석은 "근검절약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며 "우리 집에서는 지금도 그릇에 남은 밥 한 알도 버리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부모 못지않게 가족에 대한 요구도 엄격하다. 지도 간부로 부임한 후 그는 가는 곳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어떠한 상업 활동도 하지 말고, 내 이름을 걸고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당부했다.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여사는 딸의 이름을 밍쩌(明澤)라고 지었는데, '결백한 사람,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시 주석은 모친이 필사한 '관잠'의 구절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그는 한 중요한 회의에서 이 관잠을 인용하여 전당 동지들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청렴 결백해야 위신을 세울 수 있다"고 간곡히 당부하기도 했다.

"공금은 '공'씨 성을 가진 것으로 단 한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며, 공권은 백성을 위한 것으로 조금도 사적으로 써서는 안 됩니다."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시진핑 주석은 작풍건설이 '민심의 향배와 당의 대중적 기반을 결정한다'는 견지에서 솔선수범하고 청렴을 견지하도록 격려했다. 그간 중앙정치국은 매년 민주생활 회의를 개최해 왔으며, 시진핑 주석이 회의를 주재하고 연설을 하는 등 비판과 자기비판에 앞장서 왔다. 올해 초 제20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시 주석은 새로 개정된 징계 규정을 학습하고 시행하는 것을 계기로 당 전체에서 집중적인 규율 교육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당 규율 학습과 교육이 한창 진행 중이며 당원과 간부가 규율과 규범을 정치적 자각, 사상적 자각, 행동적 자각으로 진정으로 전환하도록 이끌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부모에게서 힘을 얻어 순수하고 인민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12년 연속 빈곤학생에게 '독서의 꿈'을 실현하도록 후원했으며 8번의 방문과 5번의 답신을 보내 이 빈곤학생을 격려했다. 닝더(寧德)에서 일할 때 그는 도로와 수력발전소 건설을 결정했다. 총서기가 된 후 그는 각급 당원과 간부들이 마을에 직접 주둔하여 '일대일' 빈곤 퇴치를 전개하도록 요구하면서 중국이 인류 빈곤 감소의 역사적 기적을 창조하도록 이끌었다.

시진핑 주석, 펑리위안 여사, 부친 시중쉰과 모친 치신이 함께 찍은 사진.

하나 또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가정의 가풍이 전승되고 있다.

⁠⁠⁠⁠⁠⁠⁠시 주석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생활 패턴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가정 건설을 중요시하고 가정을 잘 돌보며 가정 교육에 공을 들이고 가풍을 잘 전승해야 합니다"라고 늘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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