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3 10:15:39 출처:cri
편집:李仙玉

[도연명 편-1] 벼슬을 그만 두고


(사진설명: 도연명 석상)

전원시의 비조 도연명

그는 원래 벼슬길에 올라 큰 일을 하려 했으나 난세에 태어나 어두운 사회에 실망하고 은둔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술로 우울함을 달래던 그는 압박과 착취가 없는 대동(大同) 사회 ‘도화원(桃花源)’을 꿈 꿀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중국 최초의 전원시(田園詩) 시인이자 전원시의 비조라 불리는 도연명(陶淵明)이다. 고요하고 자연스러우며 순박하고 운치가 있으며 이미지가 산뜻하고 감정이 솔직한 그의 전원시는 후세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연명이 물욕에서 벗어나 자유를 숭상하며 스스로를 방종한 것은 권세에 대한 멸시이자 고귀한 품성에 대한 고수(固守)이기도 하다. 그의 위대한 인격과 고상한 정신은 중화문명의 소중한 유산으로 길이 남아 있다.

전원시의 비조 도연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벼슬을 그만 두고 

숙부 도규(陶逵)의 천거로 팽택(彭澤) 현령(縣令)으로 있은 지 81일만에 도연명은 또 벼슬을 그만 둘 생각을 했다.

“수차 벼슬을 그만둔 게 어디 내 탓인가? 이 벼슬길이 너무 어두워서 정말로 참을 수 없으니 말이다.”

도연명은 자신의 심기를 아주 불쾌하게 만들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 때 나도 큰 뜻을 품은 피 끓는 청춘이었다. 비록 증조부 도간(陶)이 동진(東晉)의 개국 공신이고 대사마(大司馬)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으며 조부와 부친도 태수(太守)라는 높은 벼슬을 했지만 내가 9살일 때 부친은 세상을 떠났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우리의 생활은 궁핍하기 그지 없어서 모친은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친정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외조무 맹가(孟嘉)도 높은 관직에 있었으나 내 눈에는 그냥 안하무인의 풍류객으로만 보였다.

맹씨네 집에서 나는 유가(儒家)의 서적과 도가(道家)의 서적들을 많이 읽으면서 출세하려는 큰 뜻을 품은 동시에 세상을 벗어나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재삼재사 벼슬을 그만 둔 것은 아마도 자연을 좋아하는 나의 천성(性本愛丘山)때문이리라.

언제 첫 벼슬을 그만두었던가? 아마도 28살 나던 해일 것이다. 그 때 나는 백성을 위하려는 큰 뜻을 품고 강주(江州) 제주(祭酒)로 부임했으나 지위가 낮아 잡다한 일만 하고 내 말은 듣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매일 다른 사람의 기색을 살피고 무시를 당하느라 내 뜻을 펼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홧김에 벼슬을 그만 두었고 후에 강주에서 나를 주부(主簿)직에 불렀으나 거절했지.

그리고 7년이 지나 대사마 환현(桓玄)이 큰 일을 할 사람 같아서 그를 따르면 나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형주(荊州)로 가서 그의 문하에 들어가 속리(屬吏)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눈이 멀었지, 야심이 큰 그런 자를 나라의 기둥으로 보다니. 황권을 넘보는 못된 심보를 가진 환현은 몸은 형주에 있었으나 건강(建康)을 엿보며 진 나라 황제를 대체할 망상에 젖어 있었다. 설마 역모를 꿈꾸는 이 역적과 한 배를 타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환현을 찾아온 자신을 후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친이 별세했다는 비보가 전해져 나는 급히 벼슬을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모친의 묘소를 지켰고 환현은 건강에 쳐들어가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초(楚)라 했다. 진 나라 황제는 환현에 의해 심양(陽)에 유폐되고 말이다. 하비(下) 태수 유유(劉裕)가 군사를 일으켜 건강을 공격했고 환현은 유유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진 나라 황제를 납치해서 강릉(江陵)으로 도주했다.

나는 천 리 길을 걸어 군주의 은혜를 갚은 후한(後漢)의 전주(田疇)를 본받아 변장하고 몰래 건강으로 갔다. 나는 유유에게 환현이 진 나라 황제를 납치해 강릉으로 간 과정을 설명하고 그의 수하에서 참군(參軍)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정의에 넘친 자신의 행동에 만족하며 당시의 마음을 보여주는 시도 한 수 지었지.

올해 나이 마흔에 공명은 이루지 못해도(四十無聞)

떨쳐 일어나 두려움을 모르네(斯不足畏)

좋은 말과 차가 다 갖추어져(脂我名車)

채찍 휘둘러 살같이 말 달리네(策我名驥)

천 리  멀다 해도(千里雖遙)

어찌 이르지 않을 수 있으랴(孰敢不至)

아아, 솔선수범하여 부패를 척결하고 관리들을 다스리는 유유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자 바람으로 그가 이분자를 제거하고 충신을 살해하며 사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을 보았고 야망을 가지고 항복한 역적들을 받아 들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역모를 꾸미다가 물러나니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 황권을 엿보니 이 어찌 한심하지 않으며 이 어찌 실망스럽지 않겠는가? 벌써 타향의 풍경에 질려(目倦川途異) 오직 전원의 집만 그리네(心念山澤居). 전원생활이 그리워 나는 또 벼슬을 그만 두고 시골로 내려왔지

여기까지 생각한 도연명은 이번에는 또 눈앞에 닥친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원생활이 좋기는 한데 가족을 먹여 살리기가 쉽지 않다. 숙부가 팽택의 현령을 소개시킨 것도 호의인데 내가 이 현령을 맡은 지 81일만에 심양군(潯陽郡) 독우(督郵)가 업무를 시찰하러 왔지 뭐야. 속관(屬官)이 독우를 맞이할 때는 반드시 옷 차림을 단정히 하고 독우를 만나면 자세는 겸손하게 해야 하며 독우가 욕을 해도 절대 말대꾸를 하지 말라고 몰래 일러주었다. 독우가 무슨 말을 해도 모두 ‘나리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리의 명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든가 혹은 ‘제가 잘못 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나리, 노여움을 푸십시오’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아아, 내가 어찌 쌀 서말의 녹봉을 위해 권세에 머리를 숙이고 눈치를 보며 소인배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만 두겠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그만 둘 것이다! 전원에 돌아가 굶어 죽고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관리들과 어울리며 공무에 시달리고 상사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이 기아와 추위보다 더 고통스럽지 아니한가?”

여기까지 생각한 도연명은 벼슬을 그만 두려고 다짐했다. 그러자 마음도 가벼워져 마치 밭에서 자라는 새싹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듯 하고 둔덕을 불어 지나는 바람이 황혼에 전야를 거니는 것이 얼마나 후련한지를 소곤소곤 말해주는 듯 했다. 도연명은 또 사립문이 열리고 강아지가 뛰어 나오며 아들이 달려 나오는 것도 보았다…도연명의 마음은 감동과 따스함으로 점철되고 두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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