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역도원의 생가)
제2회 황실에 밉보인 嚴官
역도원은 엄격하게 일을 처리함으로 인해 어느 곳의 지방 관리로 부임하든 모두 오래 있지 못했다. 실적은 항상 좋았지만 어디서나 누군가 항상 그를 조정에 신고하는 바람에 역도원은 끊임 없이 이 곳 저 곳 옮겨 다녔다. 그는 부친 역범(酈范)의 작위를 이어 영녕백(永寧伯)으로 책봉 받은 후 기주(冀州) 진동부(鎭東府) 장사(長史)와 노양(魯陽) 태수(太守)를 맡은 외 선후로 태부연(傅掾), 상서랑(尙書郞),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 영천(潁川) 태수, 보국(輔國) 장군, 동형주(東荊州) 자사(刺史), 하남윤(河南尹) 등 직무를 맡았다.
역도원은 소년 시절에 청주(靑州) 자사를 맡은 부친을 따라 청주에도 가서 산동(山東)의 모든 하천을 돌아보았으며 자신이 지방관리를 담임하는 동안 한 곳에 이를 때마다 그 주변의 하천을 돌아보아 장성(長城)의 남쪽, 진령(秦嶺), 회화(淮河) 북쪽의 모든 땅을 다 돌아보았다. 이런 풍부한 경력으로 인해 역도원은 <수경주>를 복합적인 지리 전문서로 썼을 뿐만 아니라 필력이 뛰어난 여행기 문학저서가 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도원은 서주(徐州) 자사 원법승(元法僧)의 역모를 평정한 공으로 어사중위(御史中尉)로 승진했다. 진(晉) 나라의 어사중승(御史中丞)에 해당한 이 관직은 감찰과 법의 집행, 모든 관리의 탄핵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이 관직을 맡은 역도원이 우레같이 맹렬하고 바람같이 신속하게 법을 엄격하게 집행했다. 그러는 바람에 그는 전에는 민간인들과 지방 관리들에게만 밉보이다가 이번에는 황실과 권세가의 눈에도 나게 되었다.
어사중위가 되고 나서 역도원은 황실 내분의 큰 사건을 맡게 되었다. 황제의 숙부인 원연(元淵)과 분쟁을 일으킨 황제의 사촌동생 성양왕(城陽王) 원미(元微)가 원연이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했다. 역모는 전 가문을 멸하는 큰 죄이다. 역도원이 역모의 확실한 증거를 대라고 원미에게 요구하자 원미는 원연 저택의 한 아전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 증인은 역도원의 정색한 모습과 강렬한 눈빛을 보자 급히 머리를 숙여 자신의 속마음까지 환히 들여다 보는 듯한 역도원의 눈빛을 피하며 풀썩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황숙께서 방안에서 작은 부인에게 ‘만약 내가 황제가 되면 당신을 황후로 봉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역도원이 물었다.
“주인 내외가 방안에서 하는 귓속말을 한낱 외부인인 네가 어떻게 들었다는 거냐?”
아전이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때…그 때 저는 침대 아래에 숨어 있었습니다.”
역도원이 탁자를 내리치며 외쳤다.
“주인의 침대 아래에 남몰래 숨어 있었다니,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구나! 사실대로 말하라!”
아전은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역도원이 다시 외쳤다.
“형구를 가져오라!”
역도원의 형벌이 엄한 것을 모를 리 없는 아전이 혼비백산해서 애원했다.
“형구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역도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라!”
“작은 부인이 저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황숙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어디 도망칠 곳이 없어서 침대 아래 숨었습니다.”
역도원이 대로해서 명령을 내렸다.
“이 소인배가 감히 주인을 모함하다니! 그런 말을 어떻게 증거로 내놓느냐! 여봐라! 주인을 모함한 이 범인을 하옥시켜라!”
사실 원연의 작은 부인과 부정당한 관계에 있던 그 아전은 원연이 자신을 처리할 것이라는 소식을 사전에 알고 먼저 원미를 찾아가서 원연을 모함하는 증인으로 나선 것이었다. 사건의 진실을 조사한 역도원은 원연의 억울함은 풀어주었으나 그로 인해 성양왕 원미에게는 확실하게 밉보였다.
역도원은 학문을 함에 빈틈이 없고 창작에서도 세련된 언어 사용에 심히 까다로웠으나 이와 반면에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벌써 황제의 동생에게 밉보인 그지만 황제의 또 다른 동생에게 밉보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황제의 친 동생인 여남왕(汝南王) 원열(元悅)은 당시 경기(京畿)의 최고장관인 사주목(司州牧)을 담당하고 있었다. 원열에게는 구념(邱念)이라는 정인이 있었는데 그는 원열의 권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남용하고 뇌물을 받았다. 그 바람에 돈으로 벼슬을 사려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심지어 구념의 가족들도 제멋대로 온갖 나쁜 일을 다 저질러 민원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를 묻는 어사중위가 한 명도 없었다. 하물며 경기 관리들은 다수가 구념에게서 벼슬을 샀으니 자연이 공손하게 구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횡포를 부리는 구념의 가족들을 응징하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부임한 어사중위는 두려움이란 무엇인지 모르는 엄정한 관리 역도원이었다. 구념의 악행을 알게 된 역도원이 대로해서 말했다.
“이런 사악한 소인배를 용인하다니 참 어이가 없구나. 그 동안 어사중위들은 허수아비였느냐?”
부하가 대답했다.
“나리께서 어사중위로 부임하신 후 구념은 겁이 나서 매일 여남왕의 왕부에 숨어 한 발자국도 왕부를 나서지 않습니다. 왕부에서 나오면 나리께 잡혀서 감방에 갇힐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합니다.”
“이 구념이라는 자가 심히 간교하구나. 하지만 그가 황실의 친척이든, 철옹성에 숨어 있든 나는 두렵지 않다. 악인은 반드시 잡아서 응징할 것인데 그가 여남왕부에 숨어 들어 폐하의 어명이 없는 한 누구든지 왕부를 수사할 수 없는 것이 문제로구나.”
“나리께서 정말로 그를 잡으시려면 방법이 있긴 합니다.”
“무슨 방법이냐? 빨리 말하거라.”
“구념이 여남왕 왕부에 숨어 있기는 하지만 가끔 몰래 집으로 돌아가 뒷문으로 들어가 가족들을 만납니다. 보통 달빛 없는 어두운 밤이나 비 내리는 저녁에 말입니다.”
그 말에 역도원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두운 밤이나 비 내리는 저녁에 구가네 저택의 뒷문 근처에 대기하거라. 이 여우를 반드시 잡을 것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역도원은 구념을 체포했다. 여남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미소년이 잡혔다는 것을 알고 공정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역도원이 그를 사형에 처할 것 같아 걱정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역도원을 찾아가 사정하려고 생각했다가 그 생각을 접었다. 그것은 인정사정 보지 않는 역도원이 황제의 동생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모욕을 자초한 꼴이 될 터라고 생각한 여남왕은 생각을 바꾸어 밤도와 호(胡) 태후를 찾아 입궐했다.
당시 북위(北魏) 정권은 사실상 호태후의 손에 장악되었다. 아들의 하소연을 들은 호태후는 연민의 마음이 생겨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구념을 즉시 석방하라는 어명을 어사대(御史臺)에 내려주세요. 그리고 역도원이 더는 경성에서 황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방법을 대서 그를 변방으로 보내버립시다.”
“날이 밝으면 어명을 내리겠다. 그러니 일찍 돌아가서 자거라!”
“구념이 없이 소자 어찌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알았으니 낯간지러운 소리는 그만 하거라!”
하지만 역도원은 원열이 호태후를 찾아갈 것을 벌써 알고 밤도와 구념을 취조했다. 내일이면 여남왕이 반드시 자신을 구할 것이라 짐작한 구념은 일단 눈앞의 형을 피하려고 모든 죄를 다 인정했다.
이튿날 아침 호태후의 조서가 전해졌지만 그 때는 벌써 구념의 목이 떨어진 뒤였다. 경기의 백성들은 너도나도 손뼉을 치며 공정하고 청렴하며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역도원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여남왕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여남왕은 역도원을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는 원수로 보며 이를 갈고 마음 속으로 맹세했다.
“역도원, 나 여남왕은 반드시 이 원수를 갚을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