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1 10:39:40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조설근 편: 제2회 한직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여가에 소설을 구상하다

(사진설명: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

제2회 한직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여가에 소설을 구상하다

세월은 흘러 조설근(曹雪芹)은 어느덧 마흔 살이 되었다. 그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거인(擧人)이 되었지만 벼슬을 하지 않고 황실의 우익종학(右翼宗學)에서 훈장으로 있었다. 종학이란 황제가 황실의 자손을 위해 차린 학교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종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모두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의 자손들인 것이다. 황제가 종학을 차린 취지가 겉으로는 황실의 자손을 가르치기 위한 듯 보이지만 황제의 깊은 뜻은 분수를 지키도록 그들을 교화하고 그들의 언행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처참하기 그지 없는 황족 내부의 ‘황권 탈취 싸움’은 모든 황제들 최고의 골칫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주공(周公)의 적장자계승(嫡長子繼承) 제도를 채용하지 않은 청 황실에서는 왕후가 낳은 정실 소생이든 비빈이 낳은 첩실 소생이든 모두 황제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가 되기 위해 종실 내부에서 그룹을 만들었고 보위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골육상잔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날 때부터 반항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조설근이 종학에서 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황실의 포의(布衣) 노예가 황실 후손의 스승이라니 이는 더욱 알지 못할 일이었다.

종학에서 글을 가르치면서 조설근은 돈민(敦敏), 돈성(敦誠) 두 형제와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돈민과 돈성은 누르하치의 제12대 손이자 석영친왕(碩英親王) 아제격(阿濟格)의 제5대 손이었다. 아제격이 황권다툼에서 패배해 죽음을 사사 받은 것으로 인해 돈민과 돈성 형제는 종실 내부에서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니 종학에서 돈민과 돈성이 조설근과 사제간의 정을 맺고 마지막에는 마음을 나누는 평생의 절친이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조설근에 비해 다섯 살 어린 돈민과 열 살 어린 돈성은 조설근과 사제관계이면서 형제와 같은 사이였다.

돈민 형제와 조설근이 겪은 유사한 경력이 그들 간 우의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조설근의 인격적 매력이 더욱 그들 형제를 매료시켰는데 그 원인은 조설근이 잘 생겨서가 아니었다. 조설근은 오히려 못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머리가 크고 피부가 검으며 살짝 비만까지 온 조설근의 외모는 출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설근은 성격이 밝고 대범했으며 말솜씨가 좋고 익살맞았다. 돈민 형제는 조설근과 만날 때마다 그의 이야기에 빠지고 그의 유머에 배꼽을 잡았다.

변론을 할라치면 조설근은 거침 없이 웅변을 토하고 많은 자료로 자신의 견해를 증명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돈민 형제는 또 조설근의 재능과 박학다식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입만 열면 명언이 튀어나오고 붓만 들면 명문장을 쓰는 그는 재능은 남달랐으며 모르는 것이 없는 그는 박식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 번, 술을 마신 조설근이 돈민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제일 싫어한 것이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고 팔고문장(八股文章)을 쓰는 일이었다는 것을 자네들은 모르지? 그 때 나는 배우들과 함께 하는 공연놀이를 가장 좋아했었네. 한 번은 극장에 있다가 부모님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 나는 막 무대에 오르려던 참이었거든. 부모님은 온 얼굴을 채색으로 칠하고 비천한 짓거리를 하는 나를 보시고 너무 화가 나셔서 나를 3년이나 서재에 가두셨어.”

돈민이 물었다.

“그럼 갑갑해서 그 3년을 어떻게 버텼어요?”

“갑갑하긴? 나한텐 나만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돈성이 끼어들었다.

“갇히는 것은 죽기만도 못한 일이잖아요? 3년 동안 갇혔으면 미치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데 즐거움이라니요? 저의 조상인 화석친왕께서는 감금되신 후 집에 불도 질러보고 굴을 파고 도주하려 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폐하로부터 자결하라는 어명을 받았지요.”

조설근이 대답했다.

“우리 부모님은 폐하처럼 인간성을 잃지는 않았지. 나는 3년간 감금되기는 했지만 방안에 책이 가득했었거든. 그 3년 동안 나는 책을 보지 않으면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사색이 사방을 날아 다니게 했는데 너무 자유로웠네. 사색은 어디든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즉시 그 곳으로 날아가니깐.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속에 섬광이 번뜩해서 나는 웅장한 계획을 하나 세웠어. 그로부터 고민은 더더욱 하지 않았지.”

돈민이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갇혀서 웅장한 계획을 만들어요?”

“사람들에게 소일거리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줄 거작을 쓸 계획이었네. 생각들 해보게. 거작이라면 많은 인물들을 구상해야 하는데 나는 갇혀 있는 동안 내가 보고 들은 모든 인물과 이야기들을 떠올려서 먼저 각자 이야기를 썼지. 이런 자료가 있으면 거작을 쓰기가 훨씬 쉬울테니.”

돈민이 손뼉을 쳤다.

“잘 됐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구상하고 축적했으니 이제 빨리 써요. 제가 그 거작의 첫 번째 독자가 될 거예요!”

“벌써 적지 않게 썼네. 다만 생계를 위해 이 종학에서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하지만 별로 볼 일이 없는 한가한 종학은 썩어빠진 관아보다 훨씬 깨끗하고 우아한 곳이어서 여가를 타서 글을 쓸 수 있지. 안 그러면 내가 어찌 이 곳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겠는가?”

조설근은 참말을 했다. 어제 눈부셨던 조씨 가문이 오늘은 완전히 몰락해 그가 종학에서 일하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유지되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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