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3 11:01:59 출처:cri
편집:李仙玉

[조충지 편-4] 끝내 빛을 본 <대명력>

(사진설명: 조충지의 <대명력>)

제4회 끝내 빛을 본 <대명력>

황실에 또 내분이 일어나고 북쪽의 왕조가 남침해 제(齊)나라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은 도탄 속에서 허덕였다. 장수교위(長水校尉)로 임명된 조충지는 황제에게 <안변론(安邊論)>을 써서 올렸다. 제명제(齊明帝)는 변경 수비의 둔전(屯田)과 농업의 발전, 국력의 증진, 민생의 안정, 국방의 강화에 관한 조충지의 제안을 높이 사서 그를 지방으로 파견해 생산을 지도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펴기도 전에 제명제가 붕어하고 제나라에 대란이 일어나 나라 위한 뜻을 펴지 못한 조충지는 벼슬을 그만 두고 집에서 수학서 <철술(綴術)>을 썼다.

그 때 벌써 성장해 젊은 수학자가 된 아들 조환(祖暅)은 구체(球體)의 체적 계산에 몰두해 있었다. 하루는 부친이 붓을 던지고 한탄하는 것을 본 조환이 급히 다가가서 관심조로 물었다.

“아버님, 무슨 난제에 부딪치셨습니까?”

“아니다. <철술>을 다 마쳤다. 이 책이 후세에 <구장산술(九章算術)> 못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는다. 이 아비 소원 하나는 푼 셈이다.”

“그런데 왜 장탄식을 하십니까? 빨리 저의 구체의 체적 계산을 도와주십시오.”

“우리 모합방개(牟合方盖)로 계산하기로 합의를 보지 않았느냐?”

사각 호소헤드론을 말하는 ‘모합방개’는 고대 중국의 과학자 유휘(劉徽)가 발견하고 채용한 구체의 체적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조환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조충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너의 구체 체적 계산만 생각하고 이 아비가 아직 무슨 일을 다 하지 못했는지는 묻지도 않느냐? 이 아비 올해 나이 일흔 둘이다. 이제 살면 며칠을 더 살겠느냐?”

조환이 급히 대답했다.

“아버님, 설마 정말로 아직 못다한 일이 있으십니까? 제가 아버님을 관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께서 평생 거두신 성과가 너무 많으셔서 이 생에 유감이 없으실 것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조충지가 눈을 부릅떠도 조환은 계속 말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버님께서는 역법에서도 거대한 성과를 거두셔서 <대명력>을 만드셨고, 수학에서는 더 놀라운 성공을 거두셔서 아주 정확하게 원주율을 계산했음은 물론이고 <중차주(重差注)>, <철술>과 같은 수학서도 쓰지 않으셨습니까? 또 나침반 수레와 물레 방아, 천리선(千里船), 기기(欹器) 등 기계도 만드시고 <역노장의석(易老莊義釋)>, <논어효경주(論語孝經注)>”와 같은 경학서, 문학서인 <술이기(述異記)>도 쓰시고…”

조환이 부친의 성과물과 저서를 하나씩 말하는데 조충지가 아들의 말을 끊었다.

“그런 쓸데 없는 소리 그만 하거라. 너도 <대명력>을 기억하지? 그런데도 이루지 못한 내 소원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냐?”

“알겠습니다. <대명력>이 지금까지 조정에 채용되지 못해서 마음이 안 좋으시군요. 그렇죠?”

조환의 말에 조충지가 또 길게 탄식했다.

“그 때 소상지(巢尙之)가 대법흥(戴法興)의 강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대신해 공정한 말을 했지. 나는 또 <대명력>에 근거해 원가(元嘉) 13년(436년)과 원가 14년(437년), 원가 28년(451년), 대명(大明) 3년(459년) 네 차례에 걸친 월식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원가력(元嘉曆)>으로 계산하면 오차가 아주 컸는데 말이다. 그래서 조정은 대명 9년(465년)부터 <대명력>을 사용하기로 했으나 대명 8년(464년)에 송효무제(宋孝武帝)가 붕어하고 나라가 대란에 빠지는 바람에 이 일이 또 보류되었다. 제무제(齊武帝) 때는 문혜(文惠) 태자가 <대명력>을 높이 사서 조정에 소를 올렸는데 그가 바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대명력>은 또 빛을 보지 못했다. 나의 <대명력>은 왜 이렇게도 빛을 보기 어려우냐?”

“아버님, 만약 아버님 생전에 대명력이 빛을 보지 못하면 제가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아들의 약속을 받아서인지 조충지는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조충지는 꿈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조충지에게는 훌륭한 아들이 있었다. 조환은 부친 별세 후에도 조충지에게 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대명력>의 시행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양무제(梁武帝) 천감(天監) 9년(510년), 조환이 세 차례나 소를 올려서야 <대명력>은 끝내 조정에 채용되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때는 조충지가 세상을 뜬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환은 부친 조충지처럼 유명한 수학자였다. 그는 끝내 구체의 체적을 계산하는 교묘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가 채용한 원리는 ‘멱세기동(幂勢旣同), 즉적불용이(則積不容異)’이다. 다시 말하면 평행선에 놓여 있는 두 평면 사이에 끼어 있는 두 개의 입체를 이 두 평면과 평행하는 임의의 한 평면으로 절단하고 두 절단면의 면적이 서로 같다면 두 입체의 체적이 같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후에 조환 원리라 불렸다. 서구에서는 이탈리아 수학자 카빌리에리(Cavalieri)가 이 원리를 발견했다고 해서 카빌리에리 원리라 부른다. 조환은 카빌리에리에 비해 천 년 전에 벌써 이 원리를 발견했다.

조환의 아들도 이렇게 유명한 수학자니 조씨 가문은 참으로 수학의 명문가라 할 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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