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 09:37:48 출처:cri
편집:李仙玉

[이정 편-1] 공으로 과실을 미봉하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탁탑천왕 이정)

당왕조의 개국명장 이정

그는 오천의 정예군사로 양(梁)나라를 멸하고 삼천의 기병으로 돌궐의 십만 대군을 격파했다. 평생 전장을 누빈 그는 한 번도 패전한 적이 없다. 그가 바로 당(唐) 왕조의 개국명장 이정(李靖)이다.

당나라 초반의 유명한 군사가인 이정은 국토를 확장하고 정변을 진압하며 침략을 막는 데서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후작에 책봉되고 이십사공신(二十四功臣) 중 한 명이 되어 사서에 길이 남았다.

중국의 소설 <서유기(西遊記)>에는 몸에 갑옷을 두르고 손에 영롱한 보탑(寶塔)을 들고 십만의 천병(天兵)을 지휘하는 탁탑천왕(托塔天王)이 나오는데 그 원형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정이다.

당(唐) 왕조의 개국명장 이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공으로 과실을 미봉하다

“첩보를 올립니다! 이정이 반군을 섬멸해 반군두령 염조즉(冉肇則)의 목을 베고 적병 오천을 사로잡았습니다!”

당태조(唐太祖) 이연(李淵)은 첩보를 듣자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곁에 있는 조카에게 말했다.

“이정은 팔백 명 의 기병을 거느리고 만 명이 넘는 개주(開州)의 반군을 파하고 두령의 목까지 베었구나. 참으로 공이 있는 사람보다 과실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낫구나!”

조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공이 있는 사람보다 과실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낫다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거 짐이 태원(太原)에 있을 때 양광(楊廣)의 측근인 고군아(高君雅)를 돌궐과의 싸움에 파견했다. 돌궐의 손을 빌어 고군아를 멸하려 한거지. 그런데 이정이라는 놈이 짐의 이 책략을 알아버리고 짐이 역모를 꾀한다고 생각했지 뭐야. 이정이 양광을 찾아 장안(長安)으로 갔는데 다행히 당시 양광이 강남에 있어서 이정의 보고를 받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이 장안에 쳐들어가 이정의 목을 자르려고 했어. 그런데 그 자식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알고 곧 자신의 목을 내리칠 칼을 보며 짐에게 ‘나리, 나리께서 군사를 일으켜 잔혹함을 제거하시니 큰 일을 이루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세상의 영웅들을 모으셔야지 왜 사적인 울분으로 장사를 죽이려 하십니까?’라고 외치지 않겠느냐. 짐이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인데다 또 진왕(秦王, 이연의 아들 이세민)이 곁에서 살려주라고, 이정의 용기가 가상하니 죽이지 말고 자신의 참모로 두게 해달라고 해서 처음으로 살려두었다.”

“처음으로 살려주시다니요? 그럼 폐하께서 그 뒤에도 그의 목숨을 살려 주셨는가요?”

조카의 말에 당태조 이연이 말을 이었다.

“짐이 그렇게 원수를 쉽게 잊는 사람인줄 아느냐? 과거 짐은 그 자식 때문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어. 그가 진왕의 막부(幕府)에 가입할 때 나이가 47살이었고 당시 진왕은 19살이었는데 이상하게 두 사람은 금방 친해졌어. 짐은 장안에서 보위에 오르자 그에게 보복하려고 그를 불러 곁에 두고 기회를 기다렸지. 마침 양(梁)나라를 공격하는데 순조롭지 않지 뭐냐. 그래서 이정에게 20일 안에 양나라를 해결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것도 군사는 팔백의 기병만 준다고 말이야. 짐은 이 기회에 그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었거든. 그런데 이 때 개주의 염조즉이 난을 일으켜 군사 만 명을 거느리고 기주(夔州)를 공격했다. 조군왕(趙郡王)이 몸소 출전했으나 패했는데 이정이 팔 백의 기병으로 반군을 전멸할 줄이야. 그래서 공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기보다 과실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이정은 공을 세워 죄를 씻어야 했으니 더욱 열심히 하지 않았겠느냐.”

“듣고 보니 이정은 두 번이나 죽다 살았네요. 큰 재난에도 죽지 않았으니 그는 훗날에 반드시 큰 복을 받을 거예요. 폐하께서는 이 복 많은 사람을 중용하세요. 그리고 듣자니 이 사람은 여자복도 많다고 하던데요.”

“뭐라고? 이 자식이 여자복도 있어? 얼른 말해보거라.”

당태조의 재촉에 조카가 사연을 이야기했다.

“양광이 강도(江都)로 유람을 떠나면서 사공(司空) 양소(楊素)를 장안에 남겼대요. 하루는 이정이 양소를 만나러 갔는데 양소와 몇 마디 말도 나누기 전에 양씨가문의 한 시녀의 눈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그날 밤으로 이정을 찾아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지 뭐예요. 당시 이정은 뜻을 펴지 못하던 때였어요. 그 미인이 재상부의 부귀를 버리고 이정과 함께 하고자 했으니 이정의 이런 여자복은 이 세상에서 얻기 쉽지 않은 거죠.”

당태조가 감탄했다.

“그런 일도 있었느냐? 이정이 확실히 인재는 인재인가 보구나. 여봐라! 이정에게 표창장을 내려라!”

내감(內監)이 즉시 황제의 어명에 근거해 표창장을 작성했다. 당태조는 표창장에서 “더는 그대의 과거를 추궁하지 않는다. 짐은 그대의 옛일을 벌써 다 잊었다!”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표창장을 받은 이정은 황제가 더는 원수를 갚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황제의 넓은 흉금에 심히 감동을 받아 황제에게 소를 올렸다. 이정은 상소문에서 성은에 사은을 표한 동시에 양나라를 격파할 열 가지 계책을 올렸다.

이때부터 당태조 이연은 진정으로 이정을 중용하여 그를 양나라를 공격하는 행군총관(行軍總管)으로 임명했다. 행군총관이란 오늘날의 참모총장과 맞먹는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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