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6 09:25:21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담사동 편: 제3회 유신변법에 실패하고 체포를 기다리다

(사진설명: 담사동의 동상)

제3회 유신변법에 실패하고 체포를 기다리다

독일이 산동(山東) 교주만(膠州灣)을 강점하고 제정 러시아가 요녕(遼寧) 여순구(旅順口)를 강점했다. 신주(神州)의 대지에 열강들이 중국 국토를 과분(瓜分)하는 광풍이 불었다! 나라가 곧 망하게 되었다. 여야가 들썩거리고 지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광서제(光緖帝)는 끝내 강유위(康有爲)의 제언을 받아들여 1898년 6월 11일 변법을 선포하는 조서를 발표했다. 이 변법이 바로 ‘무술변법(戊戌變法)’이다. 한림원(翰林院) 학사 서치정(徐致靖)은 황제에게 담사동(譚嗣同)을 천거하며 <밀보인재절(密保人才折)>에서 이렇게 담사동을 평가했다.

천재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학식이 두텁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일을 함에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방과 질의를 무서워하지 않으며 용감하게 임합니다. 안으로는 논사(論思) 관직에 오를 수 있고 밖으로는 절충(折沖)의 인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광서제는 흔연히 서치정의 제언을 받아들여 즉시 어지를 내렸던 것이다. 물론 밀지(密旨)였다!

호남(湖南)의 새로운 기풍과 애국의 열정을 가지고 담사동은 격정 높이 유신변법(維新變法)의 최전선에서, 역사 무대의 중심에서 활보했다! 군기장경(軍機章京)으로 임명된 담사동은 황제를 위해 조서를 작성하고 상주문을 읽고 나랏일을 논의했다. 그는 엄연히 신정(新政)을 밀고 나가는 군기대신이 되었다.

변법의 조서는 연이어 발표되고 유구한 경성은 새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중국 각지가 환희로 넘쳤다. 신심에 넘친 담사동은 붓을 들어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서신에 이렇게 썼다.

“조정이 변법을 밀고 나가니 나라의 전도가 유망하오. 이로 인해 나는 더욱 분발하여 한가할 틈이 없소.”

이는 제도의 변혁이자 생사의 격투였다! 유신파는 맹렬한 기세로 신속하게 밀고 나가고 보수파는 칼을 갈았다. 광서제는 영국을 모방해서 군주입헌(君主立憲)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명정국시(明定國是)> 조서를 발표한지 나흘 만에 자희(慈禧) 태후는 광서제에게 ‘군기대신인 제사(帝師) 옹동화(翁同龢)의 모든 관직을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광서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전략으로 아예 예부상서(禮部尙書)와 시랑(侍郞)을 비롯한 반대파 6명의 관직도 박탈했다.

투쟁이 날로 격렬해져 유신파와 보수파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내부적으로는 광서제가 10월 천진(天津)에 가서 열병식을 가지는 기회에 직예총독(直隸總督) 영록(榮祿)이 태후의 밀지에 따라 광서제의 퇴위를 핍박하고자 정변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성 곳곳에서 소문이 무성하고 민심이 흉흉했다. 태후의 음모를 알게 된 광서제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9월 14일 그는 밀지를 내려 강유위와 담사동에게 도움을 청했고, 9월 17일에는 또 난을 피해 급히 경성을 떠나라는 밀지를 강유위와 담사동에게 내렸다. 수중에는 군권을 장악하지 못했고 뒤에는 뒷심이 될 민중도 없이 비분과 슬픔만 안은 강유위와 담사동은 밀지를 손에 받쳐 들고 통곡했다.

급한 김에 담사동은 경성과 천진(天津) 지역의 3대 군사 우두머리 중 한 명인 원세개(袁世凱)를 설득시킬 방법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원세개의 수중에는 7천명에 달하는 신군(新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세개가 천진 열병 시 영록을 주살하고 태후를 구금해 황제를 구하고 신정을 계속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9월 18일, 밤은 고요하고 별빛은 희미했다. 법화사(法華寺) 원세개 공사국(公事局)에 뛰어든 담사동은 원세개에게 유신에 관한 전반계획을 다 설명하고 나서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폐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장군뿐입니다. 폐하를 구할 생각이 있으면 구하고 그럴 생각이 없으면…”

잠깐 말을 끊은 담사동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말을 이었다.

“이 담 아무개를 죽이든가 아니면 묶어서 태후께 갖다 바치십시오. 그러면 장군은 큰 부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원세개가 정색해서 물었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보는 거요?”

담사동은 계속 원세개의 약을 올렸다.

“영록은 장군을 좋게 대하고 또 조조(曹操)와 왕망(王莽)의 재능을 갖춘지라 그를 죽이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원세개가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께서 천진에 열병 차 오시면 나는 천자를 호위할 것이오. 폐하께서 명을 내리시면 내가 영록을 주살하는 것은 강아지를 죽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오…”

원세개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설득에 성공했다고 느낀 담사동은 만족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원세개는 날이 밝아오자 영록에게 밀고했고 영록은 태후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9월 21일 새벽, 풍운이 돌변했다. 자희태후는 광서제를 사면이 물에 감싸인 영대(瀛臺)에 감금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외부에는 황제가 병중이어서 자신이 다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자희태후는 영록에게 유신당을 잡아 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강유위는 북경을 떠났고 양계초(梁啓超)도 주중국 일본대사관에 은닉했으나 담사동은 유양회관(瀏陽會館)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관졸을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를 기다려도 관졸이 나타나지 않았다. 담사동은 자신의 <인학(仁學)> 원고와 시, 필기, 집에서 온 서신 등을 모두 상자에 넣어 들고 일본대사관으로 양계초를 찾아갔다.

양계초는 담사동이 건넨 상자를 받아 들며 권고했다.

“청산이 있는 한 땔나무 걱정은 하지 않는 법, 우리 함께 일본으로 갑시다!”

담사동이 말했다.

“어느 나라의 변법이 피 흘리지 않고 성공했습니까? 오늘날 중국에는 변법을 위해 피 흘리는 자가 없기에 이 모양입니다. 만약 피 흘리는 자가 있다면 나 담사동이 그 첫 사람일 것입니다!”

일본인 지인도 다가와 권고했다.

“담 군, 일단 우리와 함께 일본으로 갑시다! 일본에서도 계속 유신을 알릴 수 있습니다. 정세가 호전되면 다시 재기하여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수 있습니다.”

담사동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는 반드시 미래를 기다리고 누구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합니다.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더 말씀하지들 마십시오.”

유양회관으로 돌아온 담사동은 ‘망창창재(莽蒼蒼斋)’편액과 ‘멍청한 그대들 보니(視爾夢夢) 하늘은 어이 이리도 분명치 않은가(天胡何罪)? 이 곳에 눌러 앉아(於時處處) 사람들 하는 말 들으리(人亦有言)’라고 씌어진 대련을 바라보았다. 담사동은‘가문에 자산은 없지만(家無担石) 그 기상은 하늘을 찌르네(氣雄萬夫)’라고 썼던 원래의 대련이 생각났다. 양계초가 그 대련이 예기가 지나치다고 말하는 바람에 지금의 대련으로 바꾸었는데 자신은 여전히 이렇게 성질이 사납고 고집에 세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담사동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또 이 사합원이 원래는 부친이 예부랑중(禮部郎中)을 지낼 때 구입한 건물인데 자신이 기부해서 유양회관으로 개조한 일도 생각했다. 또 자신이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기억을 떠올린 담사동은 갑자기 부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아내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나서 슬픔이 북받쳤다. 그는 하인에게 벼루와 붓과 종이를 가져오라고 시켜서 가족들에게 절명서(絶命書)를 남기려 했다.

이 때 대도왕오(大刀王五)가 헐떡이며 달려왔다.

“지금 당장 나를 따라 가자!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네가 숨을 곳 하나 없겠느냐? 왜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느냐?”

담사동은 두 손을 읍하며 대답했다.

“사부님, 저를 구하시려 몸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사부님의 의협심에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협객 대도왕오는 본명이 왕정의(王正誼)이다. 왕정의가 담사동을 꾸짖었다.

“너는 아직 젊다. 이제 네가 해야 할 큰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죽으려 하느냐?”

“폐하와 아버님을 위해 저는 도주할 수 없습니다. 원세개 그 개 놈의 새끼를 믿다니 제가 너무 순진했어요! 지금 폐하께서 유폐되시고 유신조서는 폐지되었습니다. 저는 죽음으로 사죄하는 길 밖에 없어요. 그리고 지금 호북순무(湖北巡撫)로 계시는 저의 아버님은 지방의 장관입니다! 제가 도주하면 조정은 반드시 부친에게 대신 죄를 물을 것입니다. 아아, 아버님께 손자를 안겨 드리지 못해 이미 불효를 저질렀는데 어찌 제가 살겠다고 도주해 아버님께서 연루를 당하게 하겠습니까?”

담사동의 말에 왕정의도 할 말을 잃었다. 담사동은 몸에 지녔던 ‘봉구검(鳳矩劍)’을 끌러서 두 손으로 왕정의에게 넘기며 말했다.

“저는 문산(文山) 선생의 이 검을 줄곧 몸에 지녔습니다. 이제 사부님께 드리니 기념으로 하십시오.”

왕정의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너그럽고 의리를 지키고 충성심과 효심이 강한 내 제자, 일대의 명검을 욕되게 하지 않았구나!”

담사동은 또 ‘잔뢰금(殘雷琴)’과 ‘붕정금(崩霆琴)’을 왕정의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부님 유양에 가셔서 이 두 거문고를 저의 안 사람에게 전해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왕정의가 대답했다.

“반드시 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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