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7 09:33:19 출처:cri
편집:李仙玉

[비하인드 스토리] 담사동 편: 제4회 사람은 가고 기개는 영원하다

제4회 사람은 가고 기개는 영원하다

담사동(譚嗣同)은 부친이 자신의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부친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서신을 썼다. 그는 서신에서 부친의 어조를 모방해서 대역무도한 언행으로 불충불효(不忠不孝)하며 하늘을 거스른다고 자신을 질타하고 부자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담사동은 19살 때 썼던 시 한 구절을 기억에 떠올렸다.

내 말에 채찍을 휘두르니(策我馬) 바람이 옷깃을 잡고(曳我裳) 낭랑한 천풍 영원하네(天風終古吹琅琅)!

언제 곤륜산 산정에 올라(何當直上崑崙顚) 겹겹으로 창망한 천하 명산을 바라보랴(觀天下名山萬疊來蒼茫)!

담사동은 젊었을 때 10년여의 시간을 들여 만 리 길을 걸으며 벗을 사귀고 13개 성을 돌아보던 어제를 생각했다. 그 때 사막에서 피여 오르는 외로운 연기와 강물에 비친 석양을 보며 천 리의 설산과 십 리 벌의 벼 향기에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누더기를 입고 정처 없이 떠도는 백성과 골짜기에 가득한 아사자를 보면서 어려운 백성의 생활에 마음도 아팠다! 바로 백성의 고난을 직접 보았기에 그는 사회를 개변하고 전제제도를 타파하려 결심했던 것이다…

서신을 쓰며 과거를 돌이키니 또 뜨거운 피가 거꾸로 솟아 담사동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북 치듯 문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담사동은 자신을 잡으러 관졸들이 왔다는 것을 알고 태연자약하게 걸어가서 문을 열고 두 손을 내밀어 수갑을 찼다…

감방에서 담사동이 한 유일한 일은 불에 탄 나무 막대기로 벽에 절명시 한 수를 쓴 것뿐이었다.

문중에 묵는 사람 보니 장검이 생각나(望門投止思張儉)

사람들 그를 대하듯 떠난 사람 대하기를(忍死須臾待杜根)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늘 향해 웃는다(我自橫刀向天笑)

떠난 이나 남은 이나 모두 곤륜의 영웅이거늘(去留肝膽兩崑崙)

9월 28일, 담사동과 양예(楊銳), 임욱(林旭), 양심수(楊深秀), 유광제(劉光第), 강광인(康廣仁) 등 무술육군자(戊戌六君子)는 사형장인 채시구(菜市口)로 압송되었다. 가장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담사동 등이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 백성들이 그들에게 채소를 던지며 나쁜 놈이라고 욕한 것이다. 바로 이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는데 이런 백성들을 본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지만 담사동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적을 죽일 마음은 있으나 힘이 없구나. 가치 있게 죽으니 통쾌하도다!”

참수는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칼을 한 번 휘두르면 목이 잘려 나가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위엄이 있고 눈빛이 형형한 담사동을 본 회자수는 무서워서 벌벌 떨며 칼을 연속 세 번 휘둘렀지만 목을 자르지 못해 수차 시도해서 겨우 담사동의 목을 베었다. 담사동의 시신을 거두러 온 담씨 가문의 하인은 온 몸이 피범벅이 된 담사동의 시신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정의(王正誼)는 ‘잔뇌금(殘雷琴)’과 ‘붕정금(崩霆琴)’을 담사동의 아내 이윤(李閏)에게 전했고 담사동의 영구도 1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유양(瀏陽) 우석향(牛石鄕) 책수촌(翟水村)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그의 인생을 가장 시적으로 평가한, 슬프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시가 적혀 있다.

예로부터 영원한 창망한 천지 간의 바위(亘古不磨, 片石蒼茫立天地)

홀로 우뚝 솟아 기복을 이룬 산발은 파도인 듯(一巒挺秀赴若波濤)

담사동의 절친인 당재상(唐才常)은 열사의 무덤 앞에서 한바탕 통곡한 후 담사동을 위해 쓴 시를 ‘붕정금’에 새겼다.

이십 년의 문경지교 함께 죽자 했거늘(忍不携二十年刎頸交同赴泉臺)

홀로 떠난 길에 외로운 퉁소 소리 흐느끼네(漫將去楚孤臣簫聲嗚咽)

사백 만만을 위해 지하에 영면하고(甘永抛四百兆爲奴種長埋地獄)

부상 삼걸의 검 기운만 하늘에 남았네(只留得扶桑三傑劍氣摩空)

뒷이야기지만 당재상은 ‘삼호망진의 마음으로 적과 싸워(三戶亡秦緣敵愾) 공을 이루고 둘이서 곤륜에 오르자(功成犁扫兩崑崙)’던 열사의 말을 떠올리고 청 왕조의 전제제도에 맞서 봉기를 조직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년 후 그도 장렬하게 희생된다.

담사동은 의협심으로 뭉친 묵가(墨家) 혈맥의 절창과 중국이 현대문명으로 나아간 천고의 절창을 불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담사동은 이런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다. 그는 중국이 현대문명사로 향하는 길을 밝게 비춘 가장 밝은 횃불이었으며 중국 근대역사의 하늘을 가로 지르며 눈부신 빛으로 중국 땅을 영원히 비춘 가장 눈부신 유성이다.

백 년이 지난 후에도 담사동처럼 안목이 예리하고, 담사동처럼 대담하게 동방의 전제주의를 폭로하며, 담사동처럼 나라를 위해 의연하게 죽음을 마주하는 청년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담사동의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으며 담사동의 정신은 천고에 길이길이 전해진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