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2 09:46:18 출처:cri
편집:李仙玉

[이세민 편-2] 어질고 넓은 마음의 황제

(사진설명: 이세민의 화상)

제2회 어질고 넓은 마음의 황제

과거(科擧)시험에서 새로운 인재들이 선발되었다. 신입 진사(進士)들을 본 태종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세상의 영웅들이 모두 짐의 수하에 들어왔구나!”

태종제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방현령(房玄齡)이 근래 아주 공사 다망했겠다. 과거제도를 보완하고 상거(常擧)와 제거(制擧) 등 어느 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있었겠는가? 해마다 있는 과거시험에서 제목만 짐이 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방현령이 담당하지 않았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태종제는 시흥이 나서 붓을 들어 오언시 <방현령에게 하사하다>를 썼다.

봉래선경 태액지는 저 멀리 있고(太液仙舟)

서원의 방현령은 인재 찾기에 바쁘네(西園引上才)

날 밝기도 전에 인재들 들어오고(未曉征車度)

닭이 울자 관문은 그들 위해 열렸네(鷄鳴關早開)

이튿날 조회 때 태종제가 자신이 친필로 쓴 시작을 재상 방현령에게 주기도 전에 어느 대신이 이렇게 아뢰었다.

“군례(君禮) 규정에 의하면 황제는 넓고 높은 단 위에 지어진 궁전에 기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폐하께서 기거하시는 궁전은 지세가 낮고 습한 곳에 위치해 거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폐하의 옥체를 위하여 높은 곳에 폐하의 새로운 궁전을 지을 것을 주청드립니다. 폐하께서 윤허하시기 바랍니다.”

태종제가 대꾸했다.

“그대들의 말에 일리가 있소. 근래 짐은 기가 쇠진함을 느껴 확실히 습한 저지에서 기거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소. 하지만 지금 이 나라의 국고가 넘치지 않은데다 궁전을 신축하려면 많은 돈이 소요되오. 전에 한문제(漢文帝)는 노대(露臺)를 축조하려 했으나 10만 가구의 자산에 맞먹는 지출이 아까워 결국 노대를 짓지 않았소. 짐이 비록 덕행에서 한문제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설마 한문제의 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지출이 들어가는 궁전을 새로 짓겠소? 경들의 이 주청을 윤허할 수 없소.”

이 때 방현령이 아뢰었다.

“올해 하남(河南)과 하북(河北)에 큰 물이 져서 백성들이 자식까지 팔고 있습니다. 폐하, 이재민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주십시오.”

태종제가 즉시 조서를 내렸다.

“국고를 열어 팔려간 아들딸을 찾아 부모에게 돌려주라. 그리고 흠차(欽差)대신을 파견해 이재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준 지방 관리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조사하라.”

조금 뜸을 들인 태종제가 말을 이었다.

“순자(荀子)가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 했소. 물을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水能載舟) 배를 뒤집을 수도 있소(亦能覆舟). 이런 교훈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소! 수양제(隋煬帝)를 보시오. 백성의 피땀을 긁어 사치와 황음무도함을 누리더니 결국 어떻게 되었소? 백성이 역모를 일으켜 자신도 죽고 나라도 잃지 않았소? 짐은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식은 땀이 나는 구려!”

방현령이 또 아뢰었다.

“폐하께서 자애로우시어 전에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도 장례를 치러 주시고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한 백성들에게 포백(布帛)을 내리시어 장려하셨습니다. 오늘 또 국고를 열어 팔려간 이재민들의 아들딸을 데려오라 하시니 백성들은 감지덕지할 것입니다.”

방현령의 말이 맞았다. 그로부터 백 년이 흐른 후 백거이(白居易)의 시 <칠덕무(七德舞)>에서 나오는“죽은 병사들 유해를 비단을 나누어 주며 수습케 하셨고(亡卒遺骸散帛) 굶주린 자들이 자식을 팔아버리니 금을 나누어 주며 되사게 하셨네(飢人賣子分金贖)”라는 두 구절이 바로 태종제의 이 두 가지 사건을 말한다. 백성들은 자자손손 당태종의 선행을 칭송했다.

태사령(太史令)이 아뢰었다.

“올해 음력으로 7월 초하루에 일식이 들게 됩니다. 폐하께서 확실히 옥체강녕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 말에 태종제가 대꾸했다.

“일식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소. 방 경(卿)이 말해보시오. 수문제(隨文帝)는 어떤 사람이오?”

방현령이 아뢰었다.

“수문제는 자신에게 아주 엄격하고 군자의 예에 맞는 말과 행동을 했으며 나라를 다스림에 근면하고 모든 일을 몸소 행하여 늘 밤 늦게까지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가끔 대신들과 국가대사를 논하면서 수라상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든 힘을 다 해 나라를 다스린 황제라 할 수 있습니다.”

태종제가 방현령의 말을 받았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오. 수문제는 머리 속은 환하지만 마음은 어두운 황제였소. 북주(北周)의 어린 황제와 태후의 손에서 황권을 빼앗은 수문제는 늘 대신들이 자신을 본받아 정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자신이 몸소 행했소. 결과 자신은 기가 쇠진했지만 제대로 된 일도 하나 없었소. 수문제의 속생각을 잘 알기 때문에 황제의 명령만 기다린 대신들은 어명을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했소. 이 세상의 일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변화가 많은데 어찌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겠소? 그리하여 짐은 여러 가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을 충분하게 신뢰하여 그들이 각자 기량을 한껏 뽐내게 하겠소. 그렇게 해야 밝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오.”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폐하, 영명하십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태종제가 말을 이었다.

“후에도 천자의 조서가 실제에 맞지 않는다면 경들은 반드시 시정을 요구하는 소를 올려야 하오. 천자의 조서라고 해서 옳고 그르든 관계 없이 어명을 집행해서는 안 되오.”

대신들이 또 다시 ‘폐하, 영명하십니다! 폐하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태종제는 갑자기 또 한 가지 일을 떠올리고 방현령에게 물었다.

“방 경, 국사(國史)를 편찬하는 사관(史官)들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키는 일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 하는 것을 논의하지 않으시오?”

방현령이 아뢰었다.

“소신 이 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면 영웅호걸들이 세상을 다투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누군가에 빌붙고 성공하면 정권을 잡게 됩니다. 모두들 죽기살기로 다투니 나라를 세우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이 때 위징이 나서서 다른 견해를 아뢰었다.

“군주는 하늘이 내리는데 그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군주는 모두 때가 되면 궐기하게 됩니다. 보통 하늘이 내린 기회에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군주가 천하를 얻은 후 백성들은 편안한 생활을 원하고 군주는 사치와 황음무도를 원합니다. 결과 지나친 조세를 부과해 백성들의 생활이 궁핍하고 세상이 불안해져 백성들이 일어나 반기를 들게 됩니다. 그러니 나라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태종제가 웃었다.

“방 경은 짐과 함께 천하를 평정하고 전장을 누비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기에 나라를 세우는 것이 더 어렵다 하고 위(魏) 경은 짐을 보좌해서 천하를 다스리며 언제나 조금이라도 일을 소홀히 해서 백성들이 만족하지 않을까 두려워 나라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오. 사실 나라를 세우는 일이 어렵다 해도 이미 지난 과거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지금 우리 군신이 함께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큰 일이오.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노력하기만 하면 기필코 태평성대를 열 수 있을 것이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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