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09:48:27 출처:cri
편집:李仙玉

[이세민 편-3] 열린 마인드의 황제

(사진설명: 이세민의 동상)

제3회 열린 마인드의 황제

봄 바람이 불고 버드나무가 흐느적거렸다. 장안성(長安城) 곳곳에 활짝 핀 꽃은 송이마다 아름다운 웃음을 담은 듯 했다.

내일이면 20여개 국가의 사신들이 조공(朝貢)을 바치러 오게 된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은 재상 방현령(房玄齡)과 사신 접대 사항을 논의했다.

방현령이 아뢰었다.

“오늘날 대당(大唐)은 국토가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 오령(五嶺)을 넘으며 나라가 평안해 집집마다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습니다. 방방곡곡에서 오는 손님들도 건량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로에 충분하게 음식물을 공급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에 온 후 모두 동양의 선경에 이른 듯 더는 떠나기 싫어 이 곳에 정착합니다. 그리하여 적지 나라 사신들은 이번에 조공을 바치러 오는 기회에 우리 나라에 정착해 사는 그들 나라 국민의 상황도 알고자 합니다.”

태종제가 물었다.

“우리 나라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소?”

“다른 지역은 확실치 않습니다만 장안성(長安城)에는 약 10만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 장사를 하는 페르시아인이 가장 많습니다.”

“과거 봉덕이(封德彛)는 진(秦)을 따라 배워 가혹한 형벌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며 어진 정치를 펴려는 위징(魏征)의 주장을 반대했었지. 짐은 그 때 위징의 주장을 받아 들여 형벌을 관대하게 하고 과세를 줄여 백성들이 원기를 회복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도록 하는 동시에 교화를 강화했소. 그랬기에 오늘과 같은 치세(治世)의 성과를 거두었소. 아쉽게도 봉덕이가 세상을 떠나서 오늘과 같은 태평성대를 보지 못하는구려.”

“그렇습니다. 지금은 정치가 맑고 사회가 개방되어 사면팔방의 나라 사람들이 찾아오니 우리 나라는 진정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방현령의 말에 태종제가 뿌듯한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짐은 인재를 널리 구해 외국인이라 해도 우리 대당을 위해 일하려 하는 사람이면 모두 받아 들였소. 우리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외국인도 적지 않지 않소? 황궁 호위대에도 외국인이 몇 몇 있고.”

“무장들 속에는 돌궐인과 선비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예로부터 조정은 중화인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랑캐는 비천하다 여겼소. 하지만 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호인(胡人)이든 한인(漢人)이든 모두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하니 호인들도 짐을 믿을 수 있는 군주로 보지 않소. 장손(長孫)황후도 선비인이고 큰 무공을 세운 가서한(哥舒翰)도 돌궐인이잖소? 호인과 한인은 원래 한 집안이오.”

“삼 백 년의 북조(北朝)를 거치며 호인과 한인은 벌써 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방현령의 말에 태종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소. 짐의 몸에도 선비인의 피가 흐르니 짐은 외국인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오.”

태종제의 조모가 선비인이고 또 수문제(隨文帝)의 독고(獨孤) 황후와 자매간인 줄을 아는 방현령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지금 장안의 유학생 중에는 왜국인이 가장 많습니다. 왜국의 견당사(遣唐使)는 원래 한 번에 3,5백 명씩 파견했는데 지금은 한 번에 2천 명이 넘게 옵니다. 그리고 많은 유학생과 학문승(學文僧)들도 견당사들과 함께 와서 몇 년씩 우리 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국인들은 페르시아인처럼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배우는데 열중합니다.”

“조공을 바치러 오는 외국인이 너무 많고 나라들마다 모두 고유의 풍속습관을 보유하며 옷 차림도 다 달라서 가끔 누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헷갈릴 때가 있소. 머리가 아프군!”

태종제의 말에 방현령이 급히 두루마리 그림을 올리며 아뢰었다.

“중서시랑(中書侍郞) 안사고(顔師古)가 폐하께서 사면팔방의 조공을 받는 성황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화원에게 <왕회도(王會圖)>라는 이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폐하께서 이 그림을 보시면 여러 나라 사신들의 옷차림을 익히실 수 있습니다.”

태종제가 그림을 펼쳐 보니 과연 여러 나라 사신들의 기이한 옷차림과 상이한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안사고에게 각 나라 사신들 옷차림의 특징을 말하라 하시오.”

“폐하의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고자 각 나라 의상의 특징과 주된 습속을 소개하는 설명서를 곁들였습니다.”

방현령의 말에 태종제가 설명서를 펼치니 그림과 문자를 겸한 설명서는 과연 각 나라 의상과 풍속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태종제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 설명서를 보면 되겠소.”

당태종이 각 나라의 조공을 받은 이틀 후 대신이 아뢰었다.

“불경(佛經)을 가지러 천축(天竺)에 갔던 현장(玄奘) 법사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가져온 불경을 한문(漢文)으로 번역하고자 하는데 조정의 지원을 받았으면 합니다.”

태종제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는 불교의 대사이니 내일 짐이 직접 그를 만나겠소. 예부(禮部)도 최대한 그의 요구대로 경서(經書)번역을 지원하시오.”

다른 대신이 또 아뢰었다.

“경교(景敎)와 오교(袄敎), 마니교(摩尼敎)가 모두 장안에 사원과 성당을 세웠습니다. 여러 종교의 장로들도 모두 외국인들인데 폐하를 뵙고자 합니다.”

“여러 종교가 장안에서 전도하는 것은 윤허하지만 조정이 나서서 그들의 종교를 홍보하지는 마시오. 이제 더 많은 종교가 들어올 테니 짐은 그런 장로들을 만나지 않겠소. 짐이 현장법사를 만나는 것은 우리 나라에 불교를 신앙하는 국민이 너무 많아 경서 번역이 국가대사가 되었기에 반드시 짐이 몸소 관심하고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오.”

서로 다른 종족과 종교로 인해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던 당시 유럽의 각 나라들과 비교하면 종교신앙에 대한 태종제의 이런 열린 자세는 확실히 그를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개명한 황제로 만들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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