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6 10:50:54 출처:cri
편집:李仙玉

[손사막 편-2] 약물과 심리치료를 동반하다

제2회 약물과 심리치료를 동반하다

장손황후(長孫皇后)가 세상을 뜨고 양신(良臣) 위징(魏征)이 별세하고 심지어 현명한 군주 당태종(唐太宗)마저 붕어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손사막은 약초를 채집하고 사람을 구했다.

태종제의 뒤를 이은 고종(高宗)제가 즉위한지도 20년이 지난 함형(咸亨) 3년(672년) 고종제가 손사막을 불렀다.

“선생이 간의대부(諫議大夫) 벼슬을 거절한 것은 짐도 참았소. 하지만 지금 짐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치료해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거절할 셈이시오?”

고종제의 말에 손사막은 할 말이 없어서 황궁에 남아 황제의 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종제는 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공처가로 두려움이 심해 병에 걸린 듯 보일 뿐이었다. 단지 손사막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했다.

반 년이 지나 손사막은 더는 참지 못하고 고종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산인(山人) 건강이 좋지 않으니 산에 돌아가 한동안 쉬게 하여 주십시오. 산인 폐하께 기의 운행을 돕는 처방을 남길 터이니 15년 동안은 강녕하실 것입니다.”

손사막을 신선으로 여기는 고종제는 15년 동안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에 기뻐서 대답했다.

“선생이 산에 돌아가 쉬시려 한다니 짐도 더 말리지 않겠소. 선생은 연세도 계시니 짐이 좋은 말 한 필을 하사하리다. 또 장안성(長安城) 광덕방(光德坊)의 파양(鄱陽) 공주 저택도 선생에게 하사하니 그 곳에 머무시오. 계속 산중에 머물 수는 없지 않겠소. 늘 장안성에서 환자들을 보시오. 그래야 짐이 필요할 때 쉽게 선생을 부를 수 있지 않겠소?”

이렇게 손사막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절반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손사막은 황제가 내린 ‘직상약국승무랑(直尙藥局承務郞)’이라는 원하지 않는 감투를 억지로 쓰고 파양공주의 옛 저택에 기거했다. 그러자 송령문(宋令文), 맹승(孟冼), 노조린(盧照隣) 등과 같은 당시의 명인들이 손사막을 찾아와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 해 여름, 고종제가 구성궁(九成宮)으로 피서를 떠나면서 손사막을 수행시키는 바람에 노조린은 홀로 손사막의 거처에 머물게 되었다. 칠언시(七言詩) <장안고의(長安古意)>를 쓰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노조린은 왕발(王勃), 양형(楊炯), 낙빈왕(駱賓王)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초당사걸(初唐四傑)’중 한 명이다. 하지만 불행하게 풍비병(風痺病)에 걸린 노조린은 관절의 통증으로 죽기만 못한 삶을 살았다.

파양공주의 저택은 파양공주가 혼인도 하기 전에 요절하는 바람에 다년간 폐기되어 황량해졌다. 하지만 손사막이 기거하면서 봄이 와서 초목이 자라듯 스러져가던 정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배나무 한 그루만은 오랫동안 병충해를 입어서 그런지 새잎도 자라지 않고 꽃도 피우지 못했으며 나뭇잎은 노랗고 열매도 쓴 맛이 났다.

뼈에 느껴지는 통증으로 잠들지 못한 노조린은 야밤에 병이 든 배나무 주변을 거닐며 하늘에 뜬 조각달을 바라보았다. 질병으로 인해 촉지(蜀地)에 사는 연인 곽씨(郭氏)의 정도 저버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노조린은 가슴 속에 슬픔이 차올라 <병리수부(病梨樹賦)>를 읊조렸다.

노조린은 부의 서문에서 손사막을 높이 평가했다. 노조린은 박식하며 별자리와 의술, 점술, 양생술에 능하고 도가학술을 정통한 손사막은 도가의 창시자인 장자(莊子)를 방불케 하며 불교의 교리를 정통한 손사막은 또 당시의 인도 거사 유마힐과 흡사하다고 썼다. 노조린의 이 부가 전해지면서 후세 사람들은 손사막이 생전에 벌써 높은 명성을 자랑해 황제만 그를 극찬했을 뿐만 아니라 오만함이 특징인 문인들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손사막은 <병리수부>를 읽고 노조린이 병든 배나무로 스스로를 비유한 것도 보고 부(賦)의 끝에 생사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심경을 적은 것도 읽었다.

손사막은 노조린의 부를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

“노조린은 원래 경솔하고 방정맞았으며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그는 촉지에 현승(縣丞)으로 갔다가 소인의 모함을 받아 하옥되었다. 그 후 귀인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불치의 병에 걸리는 바람에 촉지로 돌아가 곽씨와 혼인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질병으로 인해 성격도 완전히 변했다. 그는 원래 벗들과 만나 앙천대소를 하며 좌중을 좌지우지하기를 좋아했으나 지금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 벗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죽을 생각까지 하는구나. 낙빈왕(駱賓王)이 <염정대곽씨답노조린(艶情代郭氏答盧照隣)>을 써서 곽씨와의 약속을 박정하게 어겼다고 그를 공격해도 그는 답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심리는 통증 완화에 불리하다. 그의 풍병(風病)도 치료하고 마음의 병도 고쳐야 하겠다. 그래야 진료 효과가 좋아질 것이다.”

노조린은 손사막이 <병리수부>를 읽자 신음하듯 물었다.

“병든 배나무도 병든 사람과 같아서 일부 질병은 치료할 수 있으나 일부는 치료가 불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명의는 고질일수록 더 잘 치료하는데 그건 무슨 이치입니까?”

“천지(天地)간에는 사시(四時)와 오행(五行)의 변화와 법칙이 있고 인체(人體)는 낡은 공기를 뱉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는 토고납신(吐故納新)의 변화와 법칙을 활용하고 있소. 음(陰)과 양(陽)의 균형이 깨지면 천지만물에 위험이 나타나고 사람의 몸에도 마찬가지로 이상이 생겨 질환에 걸리게 되는 법이오. 유명한 의사는 약물과 침석(鍼石)이나 침으로 질병을 치료하지만 성인들은 자연의 위험한 상황을 올바르게 돌려 세움에 있어서 고상한 품성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고 인간의 의식으로 보좌하오. 그리하여 인간의 질병이 치유되고 천지간의 재해도 해소되게 되는 법이지. ‘좋은 재상이 되지 못하면(不爲良相) 좋은 의사가 된다(便爲良醫)’는 말이 있지 않소. 좋은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과 좋은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는 같소. 사람이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쌓으며 마음을 넓게 가지면 질병이 쉽게 몸에 들어오지 못하며 병에 걸린다 해도 쉽게 치유되오. 노선생의 병은 물론 고질이지만 약물과 침석으로 치료하는 동시에 즐거운 심정을 유지하고 우울한 기운을 해소하며 가족과 사이 좋게 지내고 벗들과도 솔직하게 대해야 하오. 그래야 고질이 통제되고 약물치료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소.”

손사막은 천 여 년 전에 벌써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변증요법(辨證療法)을 썼으니 당시로서는 많이 앞서갔고 그의 이런 견해는 오늘날 현대 의학의 관점에도 부합한다. 노조린이 걸린 풍비병(風痺病)은 오늘날의 나병이며 이 질환은 오늘날도 불치의 병이다. 손사막의 변증요법으로 통증이 다소 완화되고 정서도 많이 좋아진 노조린은 그 후 5년 동안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해 당시(唐詩)가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했다.

노조린은 궁극적으로 나병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에 투신해 생명을 마감했지만 손사막이 노조린을 위해 시행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접목의 변증요법은 현대 의학계의 불치의 병 치료에서 여전히 심원하고 현실적인 의미를 가진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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