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손사막의 동상)
제3회 식이요법을 발명하다
중국에는‘아미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수려하고(峨嵋天下秀) 청성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다(靑城天下幽)’는 말이 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죽는 사람을 구하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손사막은 늘 아름답고 아늑한 이 두 명산에 올라 약초를 캐고 심신을 수련했다.
어느 날, 손사막은 청성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소나무에 기대어 잠깐 쉬었다. 그런데 갑자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나타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지만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병을 치료하는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냐? 그런데 왜 늘 작은 동물을 보조약재로 쓰느냐? 작은 동물의 생명으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 설마 작은 동물은 생명이 아니라고 여기느냐? 우리 불가(佛家)에서 창도하는 중생평등에 비해서 네가 말하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이 더 관대하지 않느냐?”
말을 마친 미륵보살은 하늘로 훌쩍 날아올라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졌다.
손사막이 놀라서 깨니 대낮에 꾼 꿈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미륵보살이 한 말을 떠올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의사는 성품이 좋아야 한다는 의덕(醫德)을 제출하고 의학은 어진 기술이라고 인정하며 품성이 좋고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의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만 이는 중생이 평등하다는 불가의 이념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하다. 이제부터 작은 동물을 약으로 쓰지 말아야 하겠다.”
깊은 생각에 빠졌던 손사막이 머리를 드니 마침 버섯을 따는 영지(靈芝) 처녀가 광주리에 싱싱한 하얀 버섯을 가득 담아 등에 지고 골짜기를 올라오고 있었다. 손사막은 하얀 버섯 중에 검붉은 색의 버섯 몇 송이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영지야, 야생 버섯은 색깔이 산뜻할수록 독성이 강해서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 네가 오늘 웬 일이냐? 이런 독버섯을 따다니?”
손사막의 말에 영지는 등에 졌던 광주리를 내려놓고 검붉은 우산 모양의 버섯을 꺼내 들고 웃으며 말했다.
“신선 할아버지, 제 이름이 왜서 영지인지 아세요? 저의 어머님께 들었는데 저의 아버님께서는 생전에 이런 버섯이 맛은 아주 쓰지만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대요. 한 번은 이웃집 할머니가 숨이 차고 발까지 퉁퉁 부어 일을 할 수 없었대요. 그 할머니는 병을 치료할 돈도 없고 해서 죽으려고 고목아래서 자라는 독 버섯을 따다 물에 끓여 그 물을 마셨대요. 그런데 그 독버섯 물을 마시고 죽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숨이 덜 차고 붓기도 빠지더래요. 그래서 그 할머니는 저의 아버님에게 부탁해서 그 독버섯을 더 따다가 물에 끓여 마셨는데 병도 다 낫고 건강도 전에 비해 더 좋아졌다고 해요. 그 때 마침 제가 태어나서 아버님께서는 신선의 풀이라는 의미로 저에게 영지라는 이름을 달아주셨대요.”
민간에서 또 하나의 귀중한 약재를 발견한 손사막은 아주 기뻤다. 그가 영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데 영지가 눈물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이런 영지는 늘 낭떠러지의 고목 아래에서 자라요. 저의 아버님께서는 바로 영지를 캐다가 발을 헛디뎌 계곡에 떨어져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지금 어머님의 두 발이 부었는데 영지로도 붓기가 빠지지 않아요.”
슬픔에 빠진 영지를 보며 손사막이 급히 말했다.
“너의 모친은 숨은 차지 않지 않느냐? 그의 붓기는 다른 질병으로 인한 것이다.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영지가 기쁜 얼굴로 물었다.
“정말이에요? 무슨 병인데요?”
손사막이 되물었다.
“근래 죽도 못 마실 정도로 가난하지?”
손사막의 물음에 영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 그래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어머님께서는 밤낮으로 우시기만 하고 그래서 건강도 안 좋아지셨어요. 제가 버섯을 따서 쌀을 바꾸는데 올해 또 가뭄이 들어 쌀과 소금 값이 더 뛰었잖아요. 그러니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하고 쌀보다 산나물을 먹을 수밖에요.”
손사막은 은 부스러기를 꺼내서 영지에게 건네며 말했다.
“쌀겨가 좀 싸지 않느냐? 쌀겨를 사서 산나물에 버무려 모친께 대접해드려라. 그러면 붓기가 빠질 것이다.”
영지가 놀라며 물었다.
“쌀겨를 약으로 쓸 수 있나요?”
손사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어떤 병은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먹는 음식만 바꿔도 병이 치유된다. 이를 식이요법이라 하느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가 손사막이 묵는 도관(道觀)을 찾아와 기쁜 어조로 말했다.
“신선 할아버지, 제 어머님의 붓기가 다 빠졌어요. 감사 드립니다!”
영지의 말에 손사막이 대꾸했다.
“후에는 모친께 자주 현미로 죽을 만들어 드리면 된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저의 어머님께서 낮에는 눈이 잘 보이시다가 해만 지면 아예 앞을 못 보세요. 고칠 수 있는거죠?”
“고칠 수 있다. 짐승의 간으로 음식을 만들어 드려라. 그러면 된다.”
영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것도 식이요법인가요?”
“그렇다.”
“알았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니 병에 걸리면 식이요법을 쓰는 군요.”
손사막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너희 마을 최고의 부자는 가원외(賈員外)가 아니냐? 그런데 그 사람의 아내가 소갈병(消渴病)에 걸렸는데 식이요법으로 치료했다.”
“그 부잣집 마나님은 무슨 음식인들 못 먹겠어요? 그런데도 식이요법을 쓰다니요? 뭘 먹으라고 하셨나요?”
“육류를 먹지 말고 팥을 넣은 쌀죽을 먹으라고 했다.”
손사막의 말에 영지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병에 걸린거예요?”
“그건 아니다. 단지 그의 병은 오곡으로 치료할 수 있어서 하루 세끼 오곡중심으로 식사를 해결하라고 했단다.”
“할아버지는 무슨 병이든지 다 치료하시고 또 생각 못하시는 치료법이 없으시니 정말 신선이세요! 우리 이웃집 아줌마 아들이 금방 덜덜 떨다가도 또 불이라도 붙은 듯 열이 났는데 웅황주(雄黃酒)를 마시게 해서 고치셨다면서요. 그리고 우리 마을의 아명(阿明) 아줌마는 목이 굵어지는 병에 걸렸는데 양의 목살로 치료했다고 들었어요.”
현대의 병명으로 말하면 영지처녀의 모친은 각기병과 야맹증에 걸렸고 강원외의 아내는 당뇨병, 이웃집 아줌마 아들은 학질, 아명 아줌마는 갑상선 질환에 걸렸는데 손사막은 이를 모두 식이요법으로 치료한 것이다.
손사막이 창조한 중국 최초의 치료법은 모두 124개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밖에 손사막은 의학과는 무관하나 중국의 4대 발명과 관계되는 것을 창조했는데 그것이 바로 화약이다. 손사막이 쓴 <단경(丹經)>에는 “유황과 초석(硝石) 분말을 가마에 넣고 불이 붙은 조각자(皂角子)를 넣으면 화염이 생성된다”는 ‘내복유황법(內伏硫磺法)’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세계 최초로 화약의 조제법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1300여년 전에 중국인들은 벌써 화약을 만든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북송(北宋)의 증공량(曾公亮)이 화약의 조제법을 <무경총요(武經總要)>에 기록해 화약의 특허권을 수중에 장악했지만 처음으로 의서에 화약의 조제법을 기록한 손사막의 공도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손사막은 노후에 오대산(五臺山)에 은둔하면서 의서의 거작인 <천금방(千金方)>을 집필하고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일각에서는 손사막이 사실상 141살까지 살았다는 것을 고증하기도 했다. 손사막도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에서 그 책은 자신이 100살 후에야 쓴 것이라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손사막은 과연 약왕(葯王)이자 살아 있는 신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태종(唐太宗)도 그를 ‘당당하게 우뚝 솟아(巍巍堂堂) 오래도록 스승으로 남으리(百代之師)’라고 칭송하지 않았겠는가!
번역/편집: 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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