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2 08:35:38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66] 장즈: 영웅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즈)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예순 여섯 번째는 소비(蘇毗)의 왕도(王都)이자 영웅의 도시인 장즈(江孜)이다. 티베트 녠추(年楚)하 강반에 자리잡은 고성 강즈는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지켜온다.

티베트 자치구 남부, 강디스(岡底斯) 산과 히말라야(喜馬拉雅) 산 사이, 야루장부(雅魯藏布) 강의 지천인 녠추하 상류에 위치한 장즈는 라싸(拉薩)와 시가체(日喀則)로 통하는 교통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장즈의 도시사는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즈는 티베트 소비(蘇毗) 부족의 정치중심지였다. 당시 소비 부족의 두령은 지세가 험준한 산마루에 궁전을 짓고 그 곳을 왕도(王都)로 삼았는데 그 건물이 바로 종산(宗山) 건물의 시작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종산의 성)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번왕조가 티베트를 통일하고 라싸에 도읍을 두면서 소비부족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소비의 왕도 장즈도 잇달아 몰락했다.

또 세월이 흘러 장즈에 할거해 있던 귀족 다진파바(打金帕巴)가 법왕(法王)으로 자처하고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의 아들 궁상단파(貢桑丹帕)가 종산에 호화로운 경당(經堂)을 지었다.

라마교 샤루파(夏魯派) 창시인 부둔(布敦)이 “이는 속세의 보석이자 천계의 궁전과 아름다움을 비할 수 있는 ‘제카얼즈(杰卡爾孜, 티베트어로 정상이라는 의미)’이다” 라고 경당을 치하했다.

(사진설명: 장즈고성과 백거사)

그로부터 경당은 ‘제즈’라 약칭하다가 발음이 ‘장즈’로 변해 오늘날까지 그 명칭을 이어온다. 장즈고성은 주변의 주요 도시를 오가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해 많은 불교 신도와 상인과 나그네들이 장즈를 찾았으며 장즈는 티베트에서 오래 전부터 명성을 떨쳤다.

장즈의 랜드마크인 백거사(白居寺)는 건축예술과 조각기법, 그림풍격 등 분야에서 한(漢) 족의 풍격을 흡수한 동시에 네팔과 캬슈미르, 인도 등지의 색채도 가미해 독특한 풍격을 형성한 당시 티베트 예술의 대표이다.

백거사에는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하얀 탑이 있는데 이 백탑은 티베트의 많은 탑 중 단연 으뜸이다. 탑의 단면이 팔각형이라고 해서 팔각탑(八角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높이가 30m에 달하며 모양이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백거탑)

이 탑은 명(明)나라 때인 1418년 당시 장즈의 법왕과 판첸 1세가 함께 축조했으며 축조시간이 10년을 넘는다. 백 칸이 넘는 불당(佛堂)을 겹겹으로 쌓아 조성한 이 탑은 사원에 탑이 있고 탑 중에 사원이 있으며 사원과 탑이 혼연일체를 이룬다.

불당의 내부에는 많은 불상이 공양되어 있는데 그 숫자가 10만 존을 넘는다고 전해지며 따라서 백거탑은 일명 백거사 혹은 십만불탑(十萬佛塔)이라고도 불린다.

장즈에서는 또 완전하게 보존된 귀족의 장원 파라장원(帕拉莊園)도 명물이다. 티베트에서 가장 잘 보존된 노예주의 장원인 파라장원은 티베트 12대 장원에 선정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즈)

파라장원은 원래 장즈 장가(江嘎) 마을에 조성되었는데 1904년 영국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영국군대를 향한 항쟁이 끝난 후 장즈고성의 서남쪽 녠추하 강변, 장즈고성과 4km 거리에 새롭게 파라장원을 건설했다.

파라가문의 권세가 증대되면서 파라장원의 규모도 날따라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된 파라장원의 주건물은 3층이며 경당(經堂)과 거실, 침실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갖춘다.

내부에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벽화가 즐비하며 많은 사진과 실물을 소장한 파라장원은 옛날 티베트 귀족과 농노들 간 서로 다른 생활상을 보여주는, 구 티베트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사진설명: 종산항영유적지와 기념비)

장즈는 소비부락의 왕도라는 월계관 외에 ‘영웅의 도시’라는 미명도 가진다. 장즈 중심의 산 정상에 웅장한 성이 하나 있는데 이 성이 바로 종산항영유적(宗山抗英遺跡)이다.

19세기 중반 영국군은 중국의 동남연해지역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동시에 중국의 서남 국경을 통해 티베트도 침략했다. 1904년 4월, 장즈를 점령한 영국군이 티베트 침략을 위한 전쟁을 준비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시가체 지역의 티베트 군민은 즉시 종산의 유리한 지형에 근거해 반격을 가하기로 결정하고 사제 총포와 칼, 활 등을 가지고 침략자들과 싸웠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장즈)

항쟁은 8개월 간 지속되었고 항쟁에 참가한 모든 용사들은 탄약과 식량이 다 떨어지자 벼랑에서 뛰어내려 아름다운 티베트 대지에 눈부시면서도 슬픈 영웅서사시를 썼다.

오늘날 종산 앞 광장에는 웅장한 장즈종산영웅기념비를 세워 1세기 전 외세의 침략에 맞서 목숨 바쳐 싸운 영웅의 군인과 티베트 백성들을 기리고 있다.

장즈 다마절(達瑪節)은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전한데 의하면 사잉(薩迎) 왕조 시기 장즈의 법왕 파바상부(帕巴桑布)가 백성들 속에서 높은 위망을 가졌다고 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즈의 일각)

파바상부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은 해마다 그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그 행사가 바로 다마절의 시작이다. 다마절은 전란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408년 파바상부의 아들 궁상라오파(貢桑繞帕)가 장즈 법왕을 이어받은 후 회복되었다.

궁상라오파는 다마절을 회복하면서 부친을 위해 제사의식을 가진 동시에 괘불과 굿 놀이 등 종교적 행사와 씨름, 무거운 짐을 메고 달리기 등 오락행사도 함께 가졌다.

1447년에 이르러서는 또 사격과 티베트 연극, 가무 등 오락행사를 추가해 오늘날 다마절은 제사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체육경기를 치르고 가무를 즐기는 명절의 분위기가 더 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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