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도강언과 도강언시)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여든 번째는 수리시설의 도시 도강언(都江堰)이다. 고대 촉(蜀)의 선민들이 살던 도강언은 이빙(李氷)이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을 축조한 것으로 인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도강언시에는 수리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과 정원, 풍부한 문화재가 집중되어 있다. 도강언시는 산과 물과 도시와 숲이 조화로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의 도시이자 경치가 아름다운 관광의 명승이다.
민강(岷江)의 중류, 민강이 산발을 나와 벌판으로 흘러 드는 곳, 성도(成都) 벌판의 서북쪽에 위치한 도강언시는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으로 인해 명명되었으며 천혜의 땅 사천(四川)의 원천이라 불린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도강언시)
도강언은 예로부터 사천분지에서 서북쪽으로 소수민족 지역, 청해(靑海)와 감숙(甘肅)으로 통하는 요충지이자 상업무역의 중심지이며 군사요지로 역대로 도강언성의 서쪽에 관문을 설치하고 군사시설을 두었으며 ‘사천 서부의 요충지’라 불렸다.
일찍 3천여 년 전에 이 곳에는 촉의 선민이 살면서 주왕(紂王) 토벌전쟁에 참가했으며 진(秦)은 촉을 병탄한 후 촉을 중요시해 기원전 277년 이빙을 촉군(蜀郡) 태수(太守)로 파견했다.
이빙은 촉에 이른 후 현지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도강언 수리시설을 건설함으로써 해마다 어김없이 범람하던 홍수를 막고 척박하던 촉의 땅을 살찌게 했으며 그로부터 사천은 명실공히 천혜의 땅, 천부지국(天府之國)이 되었다.
(사진설명: 도강언 고성의 일각)
동한(東漢) 때인 143년 장도릉(張道陵)이 청성산(靑城山)에 올라 도교를 전파하면서 청성산은 도교 발상지 중 하나가 되었다. 북송(北宋) 때인 993년 오늘날 도강언시 청성산진 미강(味江)촌에서 농민봉기가 발발해 성도를 점령하고 ‘대촉(大蜀)’ 정권을 수립했다.
도강언시는 2천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이자 도강언 수리 시설로 흥한 도시이다. 진나라 때 이빙이 도강언 수리시설을 건설한 후 이 곳은 선후로 도(道)와 군(郡), 군(軍), 주(州), 현(縣)의 소재지였으며 점차 성도벌판에서 티베트와 청해, 감숙으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와 사천서부의 중요한 물자 집산지로 발전했다.
600여년 전의 명(明)나라와 그 뒤의 청(淸)나라 때 교통이 편리하고 경제가 번창한 도강언시는 인근의 도시들에 비해 큰 규모를 자랑하며 ‘미니 성도’라 불리기도 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도강언 수리시설)
장강(長江) 상류의 지천인 민강은 사천 북부의 고산지대에서 발원하는데 해마다 여름이 되어 산사태가 나면 세차게 흘러 내리는 강물이 좁은 강바닥을 넘어나서 홍수피해가 심각했고 홍수가 휩쓸고 지나가면 벌판에 모래가 깔려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그와 반면에 동쪽 기슭에 솟은 옥루산(玉壘山)에 막혀 민강이 동쪽으로 흐르지 못해 성도벌판의 서쪽에는 수해가 나는 반면 동쪽은 가물어 땅이 척박하고 백성들이 고난에서 허덕였다.
진나라 황제의 명으로 촉군 태수로 온 이빙은 현지 상황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선인들의 치수(治水) 경험을 바탕으로 기원전 256년, 민강이 산을 나와 성도벌판으로 흘러 드는 곳에 세계적인 수리시설 도강언을 건설했다.
(사진설명: 도강언 수리시설 중 어취)
도강언은 강물을 두 갈래로 나누는 어취(魚嘴)와 토사를 막는 비사언(飛沙堰), 강물을 끌어 들이는 보병(寶甁) 등 세 개의 공사로 구성된, 홍수방지와 토사제거, 수운, 관개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합형 수리시설이다.
도강언 수리시설의 건설로 인해 자연재해가 빈발하던 사천 서부의 성도벌판은 ‘가뭄과 수해가 사람을 따르고 흉작과 기근을 모르는’ 천부지국(天府之國)이 되어 진나라의 6국 통일과 천부지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발전에서 거대한 역할을 했다.
2200여년 이래 줄곧 기능을 발휘해 지금도 성도벌판을 위해 수해방지와 관개를 이루어주는 도강언 수리시설은 중국과 세계 수리역사의 기적으로 인정되며 ‘살아 있는 수리박물관’, ‘수문화의 요람’이라 불린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이왕묘)
이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천인들은 494년과~498년에 이빙부자를 위해 이왕묘(二王廟)를 세웠다. 이왕묘는 원래 치수 공덕을 쌓은 이빙부자를 추앙한다는 의미로 ‘숭덕사(崇德詞)’라 불렀다.
송(宋)나라와 원(元) 나라 때 이빙부자는 왕으로 책봉되었고 그에 따라 숭석사를 이왕묘라 개칭했다. 오늘날 도강언 수리시설의 옆에 위치한 이왕묘는 청(淸)나라 때 개축한 건물이다.
강물을 바라보는 산 자락에 위치한 이왕묘의 건물은 산세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겹겹하다. 누각과 정자, 전각, 사당, 담벽 등이 조화로운 이왕묘에 들어서면 아늑하기 그지 없고 곳곳에 치수를 위해 이빙이 제출한 ‘삼자경(三字經)’과 ‘육자지(六字旨)’, ‘팔자격언(八字格言)’ 등이 새겨져 있으며 이빙의 업적을 칭송한 역대의 비석과 시, 액자 등이 소장되어 있다.
(사진설명: 이퇴의 보병구와 복룡관)
도강언시의 서남쪽에 이퇴(離堆)라는 산이 있는데 이빙이 이 곳에 물을 끌어 들이는 인수로 보병구를 내면서 외딴 산이 되었다. 삼면이 아찔한 절벽이고 산자락으로 세찬 물결이 흐르는 이퇴산은 인근의 산과 물과 성과 언제와 고적과 어울려 심히 장관이다.
이퇴산의 위에는 복룡관(伏龍觀)이 있는데 이 역시 이빙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다. 전한데 의하면 옛날 민강에 못된 용이 살며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쳤는데 이빙부자가 하늘의 이랑진군(二郞眞君)을 초청해 용을 물리치게 했다.
이랑진군은 어려운 싸움 끝에 청성산 기슭에서 용을 잡아 철삭으로 묶어 이퇴산에 감금했다. 후에 사람들은 이빙의 공덕을 기리고자 못된 용이 잡힌 곳에 복룡관을 지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청성산)
중국의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이빙을 기리기 위해 1990년부터 도강언 방수절(放水節)을 회복했다. 청명이면 관개수로의 물길을 여는 방수절은 중국 수문화에서 가장 독특한 민속행사로 중국의 무형문화재에 선정되었다.
도강언시에서 서남쪽으로 15km 거리에 위치한 청성산(靑城山)은 중국 도교의 발상지 중 하나로 도교 10대 동천(洞天) 중의 ‘제5동천’이며 ‘신선의 도회(都會)’라 불린다.
동한 때인 143년 도교의 창시인 장도릉(張道陵)이 이 산에서 중국의 본토종교인 도교(道敎)를 창시하고 전파해 청성산은 중국의 4대 도교명산 중 으뜸이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청성산)
앞뒤 두 산으로 나뉜 청성산은 둘레가 60km 이며 산발의 모양이 성곽을 방불케 한다. 숲이 무성하고 사계절 녹음이 짙은 청성산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청성산에는 36개의 산봉우리, 38채의 전각, 8개의 큰 동굴, 72개의 작은 동굴, 108개의 명소가 있다. 아늑하고 험준하며 빼어난 계곡이 얼기설기한 청성산은 운해와 일출, 성등(聖燈)으로 유명하며 이로 인해 청성산은 ‘제5의 명산’이라는 미명을 가진다.
수려한 경치의 청성산은 도교의 명산이자 은자들의 은둔지이기도 해서 당(唐)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와 송(宋)나라 때의 시인 육유(陸游), 명(明)나라 때의 시인 양성암(楊晟庵), 근대의 화백 서비홍(徐悲鴻) 등 역대로 많은 명인들이 청성산에 은둔했고 그러면서 오늘날 청선산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마애석각이 풍부하고 전각이 웅장하며 정자가 아담하고 명인들의 서예작품도 아주 많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