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5 10:36:34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84] 경덕진: 천 년의 도자기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경덕진)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여든 네 번째는 천 년의 도자기 도시 경덕진(景德鎭)이다. 장강(長江)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경덕진은 역사적으로 광동(廣東)의 불산(佛山), 호북(湖北)의 한구(漢口), 하남(河南)의 주선진(酒仙鎭)과 함께 중국 4대 도시였다.

장강의 남쪽, 남령(南嶺)의 북쪽, 강서(江西) 성 동북부에 위치한 경덕진은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고성이다. 경덕진은 기원전 200년의 진(秦)나라 때 구강군(九江郡)에 속했고 한(漢) 나라 때는 파양현(鄱陽懸)에 속했으며 창남진(昌南鎭)이라 불렀다.

기원 300년의 동진(東晉) 때 형주자사(荊州刺使)가 이 곳에서 발생한 역모를 평정하고 새롭게 평정했다는 의미로 신평진(新平鎭)으로 개명했으며 이 때부터 도자기업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

(사진설명: 경덕진의 도요)

경덕진의 명칭은 천여 년 전의 송(宋) 나라 경덕(景德) 연간에 시작되었다. 당시 경덕진에서 송나라 황궁에 진상한 도자기가 품질이 좋고 바닥에 모두 ‘경덕년제(景德年製)’라는 글자가 새겨져 사람들은 그 도자기를 ‘경덕자기’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경덕자기를 만든 곳의 지명도 점차 경덕진으로 바뀌게 되었다.

송나라 황실이 남쪽으로 이주한 후 북방의 많은 도자기 장인들이 경덕진으로 밀려 들었다. 당시 경덕진에서는 벌써 ‘옥처럼 맑은’ 청자를 만들었는데 그 공법이 정교하고 수법이 세밀하기 그지 없었다. 중국 최초의 도자기 전문서인 <도기(陶記)>도 이 때 편찬되었다.

8백여 년 전의 원(元) 나라 때 경덕진은 중국에서 도자기 제조기술이 가장 높은 도요(陶窯)를 가지고 있었으며 원나라 조정의 도자기 관리기관인 ‘부량자국(浮梁瓷局)’도 경덕진에 설치되었다.

(사진설명: 경덕진의 도자기 중 영롱자)

그 뒤 명(明) 나라와 청(淸) 나라 때 경덕진은 줄곧 도자기업의 중심지였으며 황궁의 도자기를 제조하는 관요(官窯)도 모두 이 곳에 있었다. 당시 경덕진은 교통이 편리하고 경제가 번창한 중국 4대 유명 도시이자 명실공히 ‘도자기의 도시’였다.

현재도 도자기의 도시인 경덕진은 모양이 우아하고 품종이 다양하며 풍격이 독특한 많은 도자기를 만든다. ‘옥같이 하얗고 거울같이 밝으며 종이같이 엷고 경쇠같이 맑은 소리를 내는’ 경덕진의 도자기는 도자기 예술의 보물이다.

다양한 경덕진의 도자기 중 백색과 청색이 조화를 이루는 청화자(靑花瓷)와 반 투명한 구멍이 신비로운 영롱자(玲瓏瓷), 채색의 꽃이 화사한 분채자(粉彩瓷), 오색의 무늬가 아름다운 안색유자(顔色釉瓷) 등 네 가지가 가장 대표적이다.

(사진설명: 경덕진의 도자기 중 청화자)

원나라 때 제조되어 명나라와 청나라 때 최고의 번성을 누린 청화자는 백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도자기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아 ‘영원히 지지 않는 청색의 꽃’이라 불린다.

‘유리를 박은 도자기’라 불리는 영롱자는 투각기법을 이용해 도자기에 청색으로 온갖 무늬를 새겨 ‘청화영롱자’라 불리기도 한다. ‘동양예술의 보석’이라 불리는 분채자는 부드러운 색상으로 그린 전설 중심의 온갖 스토리를 담아 중국풍이 다분하다.

안색유자는 유료에 산화금속을 추가해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자연스러운 온갖 색채의 무늬가 형성되는 도자기이다. 안색유자는 굽는 과정이 어렵고 색채가 아름답다고 해서 ‘인간이 만든 보석’이라 불린다.

(사진설명: 호전고요의 일각)

1700여년의 도자기 역사는 경덕진에 풍부한 도자기문화를 부여했다. 경덕진이 보유한 정교한 도자기 제조공법과 독특한 도자기업 풍속, 소중한 고대 도자기문화 유적은 도자기 역사 연구에 참고적 가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 경덕진에는 30여 곳의 고대 도자기문화유적이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명소는 호전고요(湖田古窯) 유적지과 고령고광(高嶺古鑛) 유적지이다.

‘경덕진 도요 중의 보석’이라 불리는 호전고요 유적지는 경덕진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규모가 가장 큰 도요이다. 이 유적지에서 당(唐) 나라 후반과 송(宋), 원(元), 명(明) 나라 때의 도자기 문화재가 출토되어 7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경덕진의 도자기 제조기술과 도자기 예술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고령고광 유적지에서는 질 좋은 점토(粘土)가 나서 유명하다.

(사진설명: 삼려묘 옛 거리의 일각)

경덕진 도자기업의 흥성은 도시의 발전을 이끌어 경덕진은 예로부터 ‘강남의 대표 도시’라 불렸다. 원나라와 명나라, 청나라 때 번창한 도자기업으로상인들이 경덕진에 밀려들면서 많은 거리가 조성되고 건물이 축조되었다.

경덕진에 지금까지 보존된 명나라와 청나라 때 건물은 100여 채가 넘는다. 다수가 당시의 관리와 부자들의 저택이었던 이런 건물들은 규모가 웅장하고 조각이 정교하며 풍격이 독특해 고건물 연구와 도시발전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적 가치를 제공한다.

삼려묘(三閭廟) 옛 거리는 고대에 안휘(安徽)과 강서를 오가는 교통 요충지였다. 현재도 80m 길이의 명나라 때 거리와 다수의 명, 청 시기의 고건물이 보존되어 그 거리를 거닐면 명청 시기 경덕진의 번화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설명: 고도자역사박람구의 일각)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이 곳의 도자기업은 더 좋은 발전을 가져와 오늘날 경덕진의 4대 도자기는 품질이 더 향상되고 많은 상을 수상했다. 품종도 더 늘고 공법과 디자인도 더 풍부한 경덕진의 도자기는 현재 세계 100여개 나라와 지역으로 수출되며 경덕진은 도자기의 도시 명성을 온 세상에 떨친다.

‘역대 도자기를 한 공간에 모으고 천 년의 역사를 설명’하며 도자기의 도시문화를 더 잘 보여주기 위해 1980년대 경덕진은 근교에 풍격이 독특한 명소인 고도자역사박람구(古陶瓷歷史博覽區)를 조성했다.

고대 도요와 명청시기 건물, 도자기 역사 박물관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명소에서는 도자기 제조과정을 직접 보고 경덕진의 도자기 공법과 고대 도요의 풍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경덕진)

황산(黃山) 산발이 파양호(鄱陽湖) 벌판으로 이행하는 과도지대에 위치한 경덕진은 풍부한 도자기 역사를 보유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거느린다.

도심의 연화당(蓮花塘)은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고요함을 자랑한다. 한자로 여(呂) 자모양으로 된 연못에는 연꽃이 화사하고 수양버들이 한들거리며 연못의 주변에는 아늑한 오솔길 양쪽에 정자와 누각이 예스럽다.

경덕진의 거리를 거닐면 풍부한 도자기 유적지와 예스러운 명청시기 고건물, 곳곳에 가득한 온갖 도자기들이 경덕진의 풍부한 도자기문화를 말없이 설명하는 듯 하다.

(끝)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