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6 17:16:48 출처:cri
편집:金东光

거안제미(擧案齊眉)

◎글자풀이: 들 거(擧jǔ), 안석 안(案àn), 가지런할 제(齊qí), 눈썹 미(眉méi)

◎뜻풀이: ①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하다. ②부부가 서로 존경하다. 

◎출전 : 남조(南朝)•송나라(宋) 범엽(范曄) 『후한서•양홍전(後漢書•梁鴻傳)』

◎유래: 동한(東漢)때 양홍(梁鴻)이라는 서생이  학업에 열중해  당시의 최고학부인 태학(太學)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고향에 돌아갔다. 양홍이 성품이 바르고 학문이 깊음을 알고 있는 고향사람들은 그가 도읍에 남지 않고 귀향한 것을 알고는 양홍을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양홍은 태학생(太學生)의 틀을 전혀 차리지 않았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밭에 나가 일을 하군 했다. 

후에 양홍은 같은 현에 사는 맹광(孟光)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았고 얼마후에는 일가족이 패릉산(覇陵山)으로 이사를 했다. 이들 부부는 밭일과 베쌈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여유시간에는 함께 서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거문고를 타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는 패릉산지역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고 이를 피하기 위해 부부는 이름을 고치고 제(齊), 로(魯)일대에 옮겨가 한동안 살았다. 그후 양홍은 출사를 요구하는 조정의 관리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오중(吳中)이라는 곳에 가서 현지의 부자인 고백통(皋伯通)에게서 집 한채를 빌려서 생활했다. 양홍은 날마다 다른 집의 쌀을 빻아주거나 밭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았고 아내 맹광은 집에서 베쌈을 해서 생계를 도왔다. 

양홍이 집에 돌아가면 아내는 음식을 차린 소반을 들고 공손하게 양홍에게 드리군 했다. 남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아내는 절대 눈을 치켜 남편을 올려다보지 않았고 매번 소반을 눈썹높이까지 올렸다. 양홍도 번마다 예를 갖춰 두손으로 소반을 받군 했다. 어느 한번은 고백통이 이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경을 보고는 양홍이 결코 평범한 농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고백통은 양홍과 그 식구들을 자기 집으로 모셔갔고 이들이 먹고 입을 걱정이 없도록 배려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양홍이 독서와 저술에 몰두할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얼마후 양홍이 병으로 죽으니 맹광은 아들을 데리고 다시 고향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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