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포증의 무덤)
제4회 두 눈을 감은 포청천
포증의 회갑 때 선물을 보내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단 황제가 포증에게 술 한 단지를 하사하고 시도 덧붙여 보내왔다.
그대는 덕망 높은 일품 경(德高望重一品卿)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니 위징과 같구려(日夜勤政似魏征)
오늘 짐이 축하주를 보내니(今日朕把壽酒送)
문밖에서 거절하면 도리가 아닌 듯하오(如拒門外理不通)
황제가 사람을 시켜 보내온 술을 바라보던 포증은 잠깐 생각 끝에 시 한 수를 지어 황제에게 올렸다.
공정무사는 소신의 충성이오(鐵面無私臣心忠)
관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공을 드러냄이네(爲官最忌自恃功)
열심히 일하는 건 본분이니(勤政本是分內事)
선물을 거절함은 청렴기풍 열기 위해서라(拒禮爲開淸廉風)
포증의 시를 읽고 포증이 다시 돌려보낸 축하주를 보던 황제가 어명을 내렸다.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포증을 개봉지부(開封知府)로 임명하니 즉시 부임하라.”
가우(嘉優) 2년(1057년), 포증은 북송(北宋)의 국도인 개봉의 지부를 맡게 되었다. 포증의 아내가 걱정했다.
“악을 혐오하기를 원수같이 하고 인정에 구애됨이 없이 공평무사한 당신이 어떻게 개봉지부를 맡을 수 있어요?”
“일을 공정하게 하고 법을 잘 지키면 되오.”
“개봉은 천자가 있는 곳이에요. 폐하께서 참언을 믿으면 당신의 일에 개입하실 것이 분명한데 그럼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리고 이 곳에는 온통 왕실의 친척들인데 그들이 권세를 믿고 걸핏하면 폐하를 구실로 삼으면 또 어떻게 하시겠어요?”
포증이 탄식했다.
“부인의 말이 맞소. 이 개봉지부를 하기는 확실히 쉽지 않소. 개봉지부를 맡아서 1년을 채우는 사람이 없고 또 친왕(親王)이나 재상(宰相)이 개봉지부를 겸한다고 들었소. 하지만 지금 폐하께서 나를 신뢰하시니 열심히 일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소? 우리가 바르기만 하면 왕실의 친척인들 뭐가 두렵겠소?”
하지만 포증은 개봉부에 와서 제일 먼저 부딪친 일이 왕실의 친척에 관계되는 큰 일이 아니라 일개 아전의 문제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송나라에는 백성이 관아에 와서 고소할 때 관리에게 직접 고소장을 건네지 못하고 ‘문패사(門牌司)’에게 맡겨 전달해야 했다. 문패사를 맡은 아전들은 그 기회에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긁어 모았다. 고소하러 온 백성들은 괴롭힘과 협박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포증은 사복차림으로 근처의 여인숙에 갔다가 고소하러 온 백성들이 아전을 욕하는 것을 듣고 이런 상황을 알았다. 백성들이 고소장을 제출하는 작은 일에서도 괴롭힘과 협박을 당한다는 것을 안 포증은 대로해서 관아에 돌아오자 명령을 내렸다.
“문패사를 철회하고 관아의 문을 활짝 열어 백성들이 직접 관청에 들어와 고소장을 제출할수 있도록 하라.”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환호했다.
“포청천(包靑天)이다 포청천! 아전에게 돈을 찔러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포공께서 계시니!”
며칠 후 죄인 한 명이 포증 앞에 끌려 나오자 큰 소리로 외쳤다.
“억울합니다! 소인 억울합니다!”
죄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죄인의 자백내용을 기록하는 아전이 입을 열었다.
“이 놈이 정말로 사리분별을 못하는구나! 술을 마시고 타인을 구타한 죄는 척장(脊杖) 20대인데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느냐?”
그 아전이 장형(杖刑) 담당자에게 눈치를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포증은 일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하고 역졸들에게 말했다.
“범인을 먼저 끌어내고 기록을 담당하는 아전을 포박하라.”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그 아전은 놀라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포증이 호통쳤다.
“네 이놈! 범인의 돈을 얼마나 받았느냐? 숨기지 말고 다 말하라!”
아전은 풀쩍 무릎을 꿇고 이실직고했다.
“나으리 소인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범인은 장형을 받기 싫어서 소인에게 은자 20냥을 주었습니다. 소인은 그에게 끌려 나오면 바로 억울하다고 외치라고 시켰습니다. 그러면 소인이 장형을 맡은 아전에게 눈치를 해서 20대 장형을 내리게 하지만 정말로 때리지 말고 때리는 모양새만 내라고 사전에 말해 두었습니다.”
“이런 일마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 부패와 비리가 이렇게 심하구나!”
포증은 그 두 아전에게 각기 척장 20대를 내리고 뇌물을 준 그 범인에게는 척장 40대의 형을 내렸다.
그날 황혼이 되자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포증도 가슴 속에 검은 구름이 드리운 듯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런 좀벌레들이 어디든 기어들어가서 기풍을 이렇게 흐려놓는구나. 비리아전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포증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천둥이 울고 소낙비가 쏟아졌다. 포증의 머리 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비가 많이 내리면 내일 개봉성이 또 물에 잠기겠다. 날이 밝으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나가서 돌아봐야겠다.”
이튿날 포증은 누런 물을 밟으며 혜민하(惠民河) 강기슭에 나갔다. 황하(黃河)의 지천인 혜민하는 개봉성을 가로 질러 흐른다. 혜민하의 양쪽 강기슭에는 별장이 숲을 이루고 강바닥에도 많은 정원이 조성되어 하도(河道)가 좁아졌다. 그 광경을 본 포증은 물난리가 나는 이유를 발견했다.
“이게 모두 왕실과 권신들 때문이구나.”
관청에 돌아온 포증은 즉시 “혜민하 양쪽 기슭의 불법 건축물을 즉시 철거하라. 제 기한에 철거하지 않고 땅문서를 위조하는 자는 일률로 응징한다”는 공시문을 써서 개봉성 곳곳에 붙이라고 명령했다.
인정에 구애됨이 없이 공평무사한 포증이 많은 권세가들을 무너뜨린 사례는 당시 조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포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세가도 없었다. 불법 건축물 제거 작업은 일말의 방해도 없이 신속하고 깔끔하게 전개되어 혜민하의 물난리가 철저하게 해결되었다.
어느 날 포증이 질환으로 자리에 누웠다. 포증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법을 엄격하게 지키니 이렇게 아파서 자리에 누워도 누구 한 사람 병문안을 오지 않네요. 당신처럼 벼슬을 할 바엔 아예 안 하기만 못할 것 같아요.”
“벼슬을 하는 목적이 사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면 안 하기만 못할 것이오.”
“당신은 항상 굳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포증이 한 번 웃으면 황하 물이 맑아진다’고들 말하지요. ‘성인이 나면 황하 물이 맑아 진다’는 속담이 있어서 백성들이 당신을 성인으로 보지만 또 ‘황하 물은 삼 천 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속담도 있지요. 그러니 당신은 근본 웃을 줄 모른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당신 얼굴이 전혀 검지 않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흑포공(黑包公), 염라대왕이라 부르지요.”
아내의 말에 포증이 놀라서 물었다.
“내가 어디가 염라대왕과 같다는 말이오? 이 호칭은 듣기 안 좋은데.”
“당신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염라대왕이 삼경에 죽으라 하면 오경까지 살아 남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당신이 염라대왕과 같다는 말은 당신이 법을 지킴에 인정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이 세상에 돈으로 매수할 수 없는 사람이 당신 혼자뿐이니깐요!”
포증이 즐거운 심정에 웃으며 말했다.
“관리를 매수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면 그게 가장 큰 포상이 아니겠소?”
무언가 생각하던 포증이 말을 이었다.
“참.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으니 당신이 내 유언을 기억하오. 우리 자손 중에 벼슬을 하는 사람이 법을 어기면 살아서 포씨가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죽어서 포씨가문의 선산에 묻히지 못한다고 말이오.”
‘자손’이라는 말에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대꾸했다.
“당신의 말을 들으니 우리 아들이 생각나네요. 억(繶)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에요. 우리 손자 정(綎)이 올해 여덟 살이니깐요.”
포증이 눈을 감으니 아들 억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때 억은 담주(潭州)에서 통판(通判)으로 있었는데 왜 갑자기 죽었지?”
포증은 생각할수록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한 복수로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듯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수많은 부패관리를 처벌한 대가인 것이다! 그렇다고 포증은 후회하지 않았다. 단지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다.
“억아, 내가 왔다.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포증은 마음 속으로 아들을 부르며 아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 해 포증은 64살이었다.
번역/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