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좇을 종(從 cóng), 착할 선(shàn 善), 같을 여(如 rú), 흐를 류(流 liú).
◎뜻풀이: 남의 충고(비판)를 잘 받아들이다.
◎출전: 춘추•로(春秋•魯) 좌구명(左丘明) 『좌전•성공8년(左傳•成公八年)』
◎유래: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초(楚)나라가 정(鄭)나라를 공격하니 정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정나라의 동맹국인 진(晉)나라가 이를 보고 난서(欒書)에게 대군을 주어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의 군세가 강함을 보고 본국으로 철군했다. 난서가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동맹국인 채(蔡)나라를 공격했고 이에 초나라는 공자 신(公子申)과 공자 성(成)에게 신현(申縣)과 식현(息縣)의 군대를 주어 진나라에 저항하도록 했다.
난서가 출전을 하려 하니 지장자(知莊子) 등 세 사람이 이렇게 권고했다. “초나라 군사가 철군했다가 지금 다시 왔으니 대적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싸움에 이긴다 하더라도 이는 초나라의 두개 현의 군사를 이긴 것이니 자랑거리가 안됩니다. 허나 만약 지게 된다면 이는 큰 치욕으로 될 터이니 싸워서는 안됩니다.”
난서가 이 권고를 받아들여 군사를 거두려 하니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장군을 보필하는 사람은 11명이고 지금 세사람만이 싸우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으니 싸우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왜 다수 사람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까?”
이에 난서가 답했다. “정확한 견해만이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할수 있는 것이오. 지장자를 비롯한 세사람은 진나라의 현자들이고 그들의 의견이 정확하니 이는 대다수 사람들을 대변할수 있는 것이요. 허니 나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오.”
난서는 즉시 철군을 명령했다. 2년후 난서는 초나라가 경계를 늦춘 틈을 타서 재차 출병하여 채나라와 심(沈)나라를 공격했으며 그 결과 빠른 시일내에 승전을 거두었다.
『좌전』중에는 난서를 칭찬하여 ‘남의 충고를 잘 받아 들였다’고 했다. 여기에서 “종선여류”라는 성어가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