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30 11:35:0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95] 복주: 閩越의 도읍

(사진설명: 아름다운 복주고성)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아흔 다섯 번째는 남방의 복지(福地)에 위치한 민월(閩越)의 도읍 복주(福州)이다. 유유하게 흐르는 민강(閩江)이 도시를 흘러 지나고 도심에는 세 산과 두 탑이 지켜서 있으며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가 도시에 독특한 운치를 가미한다.

복건(福建)성의 성도인 복주는 중국의 동남 연해 민강 하류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마주한 복주는 중국 동남 연해의 유명한 고성(古城)이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무역항이다.

복주는 22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제8대 손인 무제(無諸)가 기원전 202년 한(漢)나라를 도와 초(楚) 나라를 멸한 공으로 민월왕(閩越王)에 책봉된 후 복주의 야산(冶山)기슭에 야성(冶城)을 축조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복주)

282년 복주 태수(太守) 엄고(嚴高)가 자성(子城)을 축조했고 그 후 진(晉) 나라 때 중원(中原)의 사대부들이 북방의 난을 피해 대거 남하해 복주에 자리를 잡았다.

당(唐) 나라 후반에도 중원의 귀족들이 대거 남하하고 송(宋) 나라 때에는 정치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세 차례에 걸친 중원인과 민월인간 대 융합을 통해 복주는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고 성곽의 규모도 점점 더 확대되었다. 

복주성은 역대로 수차 증축했다. 1천여년 전 당나라 후반에 민왕(閩王) 왕심지(王審知)가 협성(夾城)을 축조하면서 경치가 수려한 어산(於山)과 오산(烏山), 병산(屛山)을 성안에 포함시켜 복주는 ‘산이 성안에 있고 성이 산중에 있는’ 독특한 도시 구도를 형성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어산)

북송(北宋) 때인 1066년, 복주 태수 장백옥(張伯玉)이 복주인들을 동원해 용수(榕樹) 나무를 많이 심었다. 따라서 ‘온 성안에 녹음이 우거진’ 복주는 ‘용수나무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복주성에는 어산과 오산, 병산 세 산이 도심에 우뚝 솟아 있고 백탑(白塔)과 오탑(烏塔)이 서로 마주보고 민강(閩江)이 도심을 흘러 지나며 ‘산 셋, 탑 둘, 강물 한 갈래’의 독특한 구도를 형성한다.

복주 도심에 위치한 어산은 모양이 거대한 거북이를 방불케 한다. 람오정(攬鰲亭)과 의오헌(倚鰲軒), 응오석(應鰲石), 접오문(接鰲門) 등 산중의 명소이름에도 모두 자라 오(鰲)자가 들어간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삼방칠항)

어산에는 또 평원대(平遠臺)와 척공사(戚公祠), 구선관(九仙觀), 천군전(天君殿), 대토전(大土殿)을 비롯해 많은 명승고적이 산재해 있으며 송나라 때부터 조성한 마애석각도 100여 곳이나 된다.

현재 복주의 유명한 명소가 된 삼방칠항(三坊七巷)은 옛날 복주성의 골목이었다. 3개의 동네와 7개의 골목을 말하는 삼방칠항은 옛날 귀족들이 살던 구역으로 오늘날도 건물은 명(明) 나라와 청(淸) 나라 때의 풍격을 유지하고 가옥들 사이에는 수십 개의 정원이 보존되어 있다.

골목이 얼기설기한 삼방칠항은 골목 바닥에 석판을 깔고 건물은 하얀 담벽에 청색의 기와를 얹어 산뜻하다. 건물마다 엄밀한 구도와 정교한 공법을 자랑하는 삼방칠항은 민월고성의 가옥특징을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서선사)

종교문화가 풍부한 복주에는 여러 가지 종교 형식이 사이 좋게 공생하며 그에 따라 사원도 많다. 그 중 서선사(西禪寺)는 복건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불교사원이다.

1500여년 전에 조성을 시작한 서선사는 남북방향으로 뻗은 중심선에 천왕전(天王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 법당(法堂), 장경루(藏經樓) 등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데 건물이 높고 넓으며 아늑한 정원이 건물들을 둘러싸서 조화롭다.

고산(鼓山) 산허리에 위치한 용천사(涌泉寺)는 1천여년 전 민왕(閩王) 왕심지(王審知)가 세운 것인데 구도가 교묘하고 공법이 정교해 ‘복건 사찰 중 으뜸’이라는 미명을 자랑한다. 용천사에는 또 수십 개의 사리와 2만여권의 불교경전이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화림사 대전)

병산(屛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화림사대전(華林寺大殿)은 장강(長江)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964년에 건설을 시작한 화림사대전은 웅장한 건물과 정교한 공법, 못 하나 사용하지 않은 교묘한 건축기법을 자랑하는 동시에 뚜렷한 민월의 지방 특색도 드러낸다.

‘바닷가의 추로(鄒魯)’라 불리는 복주는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해 민왕 왕심지가 ‘초현원(招賢院)’과 ‘사문학(四門學)’ 등 교육기관과 학당을 설립해서부터 1866년 중국 최초의 근대 해군학교인 마미선정학당(馬尾船政學堂)이 설립되기까지 1천여년 동안 복주의 학구열은 식을 줄 몰랐고 인재가 많이 났다.

북송(北宋)의 관리이자 유명한 서예가인 채양(蔡襄)과 청(淸) 나라 대신이자 애국 정치가인 임측서(林則徐), 양무운동(洋武運動)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심보정(沈葆楨), 화교의 두령이자 민주혁명가인 황내상(黃乃裳) 등이 그 대표들이다.

(사진설명: 복주의 온천)

복주인들은 예로부터 세상을 보는 안목과 넓은 흉금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50여개 나라와 지역으로 간 250여만 명의 화교들은 현지에서 중국인들의 우수한 미덕을 실천하고 중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준다.

‘세계 중국인 갑부’라 불리는 임소량(林紹良)과 ‘세계 설탕의 왕’ 곽학년(郭鶴年), ‘담배의 왕’ 채운휘(蔡雲輝), ‘목재의 왕’ 황쌍안(黃雙安) 등은 해외 창업에 성공하여 자신들의 행동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복주인의 정신을 온 세상에 알렸다.

복주는 온천의 도시이기도 하다. 남북길이 5km, 동서너비 1km의 범위의 지하에 온천이 집중되어 있는데 온천수의 수온이 높고 품질이 뛰어나며 물량이 많고 칼슘과 철분을 망라한 수십 가지 광물질이 함유되어 복주는 명실공히 온천의 도시이다.

(사진설명: 복주의 요리 불도장)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는 복주의 요리 불도장(佛跳墻)은 취춘원(聚春園)을 차린 정춘발(鄭春發)이 개발한 음식이다. 상어 지느러미와 해삼, 전복, 닭고기, 돼지 족발, 조개를 비롯한 20여 가지 식재료로 만든 불도장은 맛이 고소하면서도 깊어 국빈연에도 자주 오른다.

전한데 의하면 100여년 전의 청(淸) 나라 때 복주 관전국(官錢局)의 한 관원이 복주 포정사(布政使) 주련(周蓮)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로부터 주련은 그 집에서 맛본 한 가지 음식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음식은 닭고기와 오리고기, 양고기, 소시지 등을 뚝배기에 넣어 뭉근하게 끓인 것인데 맛이 깊고도 담백해 주련은 집에 돌아간 다음 개인 요리사 정춘발에게 그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시켰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복주)

정춘발이 주인이 설명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었으나 맛이 별로였다. 주련은 주춘발을 데리고 관전국 관리의 집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구했다. 불도장의 조리법을 배우고 돌아온 정춘발은 기존의 식재에 다양한 해물을 넣어 더 깊고 진한 맛을 냈다.

그 후 정춘발은 주련의 집에서 나와 음식점을 차리고 불도장을 전문 만들었다. 한 번은 선비 몇 몇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그 음식을 맛보고나서 모두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이 ‘뚝배기 뚜껑을 여니 육향이 멀리 퍼져 부처도 그 향기에 좌선을 그만 두고 담 넘어 오겠네’라는 시를 썼다. 그로부터 복수전(福壽全)이라 부르던 이 음식은 ‘불도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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