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2 09:44:14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96] 장주: 바닷가 꽃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주)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아흔 여섯 번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화교(華僑)의 고향이자 바닷가 꽃의 도시인 장주(漳州)이다. 구룡강(九龍江)의 하류에 위치한 수선(水仙)의 고향 장주는 맑고 자연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푸른 바나나 재배원과 수려한 전야, 퐁퐁 솟아 나는 샘물, 대지를 감도는 운무는 장주의 첫 인상이다. 그 아름다움에 끌려 장주에 들어서면 장주는 더 아름다운 내적인 매력을 풍긴다.

복건(福建) 성의 남쪽, 대만해협(臺灣海峽)의 서쪽에 위치한 장주는 서쪽으로 용암(龍岩)시와 이웃하고 남쪽으로 산두(汕頭)시, 북쪽으로 천주(泉州)시, 동쪽으로 하문(廈門)시와 연결된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장주고성)

서쪽에 구불구불한 산발이 펼쳐지고 동쪽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동굴이 아늑한 바위산이 지켜선 장주는 산과 바다를 가까이하고 강과 벌판을 거느린 풍요로운 복지(福地)이다.

기원전 112년 한(漢) 나라가 남월국(南越國)을 멸한 후 중원인(中原人)들이 장주에 밀려들어 현지 토착민들과의 융합을 시작했다. 413년, 동진(東晉) 왕조는 장주에 수안현(綏安縣)을 두었고 양(梁) 나라 때인 540년에는 용계현(龍溪縣)을 두었다.

677년 당(唐) 나라 장군 진정(陳政)이 병사하자 그의 아들 진원광(陳元光)이 어지를 받들어 부친의 직위를 계승하고 잔도(棧道)를 놓으며 영남(嶺南)을 평정했다.

(사진설명: 장주항과 저 멀리 보이는 하문)

686년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장주(漳州) 설립에 관한 진원광의 소를 윤허했다. 장주의 도읍은 양산(梁山) 기슭의 서림성(西林城), 오늘날의 서림촌에 두었는데 장강(漳江)의 이름을 따서 장주라 했다.

716년 장주의 도읍을 오늘날의 장포현으로 옮겼고 786년에 오늘날의 장주로 이전했다. 그 후에도 장주는 관할지가 수차 변했지만 현지 행정기관의 소재지 지위는 시종 변하지 않아 12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장주는 한 때 해외무역의 중심도시였다. 1천여 년 전의 오대(五代) 때 삼불제국(三佛齊國)의 한 장군이 향료를 가지고 장주에 와서 통상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장주부성의 서쪽에 보현원(普賢院)을 지었다.

(사진설명: 장주고성의 거리와 패방)

송(宋) 나라 때 장주는 천주(泉州), 복주(福州), 흥화(興化)와 함께 복건의 4대 조선소를 둔 도시가 되면서 해외무역이 더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원(元) 조정은 복건 시박사(市舶司)와 염운사(鹽運司)를 도독전운사(都督轉運司)로 합병해서 장주와 천주의 소금업과 해운을 관리하게 했다.

명(明) 나라 때 장주의 해외 무역은 더 빠른 발전을 가져와 장주성 동남쪽으로 25km 거리에 위치한 월항(月港)이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사이에 천주항(泉州港)을 대신했다. 그로써 장주는 중국의 동남 연해지역에서 해외교통과 통상의 중심이자 중국에서 출발해 마닐라 경유로 아메리카에 이르는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기항이 되었다.

문화가 번영하고 인재가 많이 나는 장주는 ‘바닷가의 추로(鄒魯)’라 불린다. 708년, 당 왕조가 파견한 초대 장주 자사(刺史) 진원광(陳元光)이 중국 최초의 서원인 송주서원(松州書院)을 장주에 세웠다.

(사진설명: 장주문묘의 일각)

송나라 때인 1190년에는 장주 지주(知州)로 부임한 주희(朱熹)가 관학(官學)을 크게 발전시켜 유가(儒家)의 사상을 널리 전파했으며 ‘빈현관(賓賢館)’을 두고 명사들을 초청해 강의를 하면서 많은 학자를 길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장주에는 39개의 서원이 있었고 많은 명인들이 배출되었다. 그 중 명나라 후반의 교육자 황도주(黃道周)는 그림에 조예가 깊고 박식했다. 그가 세운 업산강당(鄴山講堂) 유적지와 그가 쓴 ‘동고서원(東皋書院)’ 편액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 장주에서는 명나라 지리학자 장섭(張燮)과 청나라 교육자이자 수리학자인 장형양(張亨陽), 사고전서관(四庫全書館)을 총괄한 청나라 관리 채신(蔡新), 청나라 교육자 채세원(蔡世遠) 등을 비롯해 많은 명인들이 났다.

(사진설명: 웅장한 장주원루의 일각)

세계적인 기이한 경관이자 ‘신화와 같은 산악지대 건축물’이라 인정되는 장주원루(漳州圓樓)는 토루(土樓)라고도 불리는 가장 오래된 건축기법으로 축조한 방대한 규모의 빌딩들이다.

686년, 당나라 진원광이 장주를 세울 때 사용했던 군영이자 산채에서 기원한 장주원루는 왜구가 출몰하고 도적이 판을 치던 당시 복건 남부 사회의 산물이다.

원형도 있고 네모난 모양도 있는 이런 건물의 집들은 둥근 복도로 연결되거나 반달모양을 가지는 등 풍부한 양식을 보존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런 건물은 1,000여채에 달하는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장주)

장주는 유명한 ‘꽃과 과일의 고향’이기도 하다. 장주에는 1,200여 종의 꽃 품종과 330여 종의 과일 품종이 있다. 장주에는 꽃 시장 거리와 수선화 밭, 백화촌(百花村), 봉황산(鳳凰山) 여지나무 밭, 마구(馬口) 꽃 박람회 등 다양한 꽃의 명소가 있다.

장주의 과일 중에는 여지와 용안(龍眼), 감귤, 바나나, 유자, 파인애플 등 ‘6대 과일’이 가장 유명하다. 요염하면서도 아름답고 향기가 진동해 ‘아객(雅客)’, ‘능파선자(凌波仙子)’라 불리는 중국의 전통 명화 수선화는 장주시 시화(市花)이다.

장주에는 해마다 설이 되면 수선화로 우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길함을 소원하는 풍속이 전해지고 이런 풍속은 장주와 복건은 물론이고 홍콩과 마카오, 대만에서도 성행한다.

(사진설명: 장주의 목판 세화)

500여년 전부터 장주는 중국에서 유명한 목판 세화의 생산지였으며 장주의 목판 세화는 해외에까지 수출되었다. 장주의 목판 세화제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안금화서방(顔錦華書坊)이다.

장주의 목판 세화는 이미지가 심플하고 색상의 조합이 자유로우며 굵고 짧은 무늬에서 정교함과 활발함이 엿보여 풍격이 소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장주의 목판 세화는 시골 운치가 짙다. 그리고  산뜻한 색상을 주로 사용하고 다수가 채색인 중국의 다른 지역 세화와 달리 장주의 세화는 검정색을 바탕으로 해서 이색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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