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천주)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아흔 일곱 번째는 해상 실크로드의 기점 천주(泉州)이다. 700여년 전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천주를 ‘광명의 도시’라고 불렀다.
중세기의 눈부신 고성을 보유한 이 도시를 거닐면 오늘날도 천 년 전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잡으며 마음을 매료시킨다.
복건(福建)성 동남부에 위치한 천주는 바다를 사이 두고 대만(臺灣)과 마주 바라본다. 바닷가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주에는 산발이 기복을 이루고 구릉과 계곡, 분지가 조화롭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천주고성)
천주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은 동남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동남 계절풍이 천주의 농업과 임업, 어업생산에 유리한 여건을 마련한다.
천주는 산발이 기복을 이루고 벌판에 강물이 얼기설기하다. 해발고도 1,856m에 달하는 ‘복건 최고의 산발’인 대운산(戴雲山)이 동북방향에서 서남방향으로 뻗어 있고 대운산에서 발원한 진강(晉江)이 천주를 흘러 지난다.
‘중국의 동남지역에서 가장 수려’한 청원산(淸源山)은 면적이 62㎢, 정상의 해발은 498m에 달한다. 청원산 풍경 명승구에는 동굴 36개와 명소 18개가 있는데 그 중 노군암(老君岩)과 천수암(千手岩), 세지암(勢至岩) 등 바위가 명물이며 많은 마애석각이 아름다운 자연에 인문적 깊이를 더해준다.
(사진설명: 천주고성의 성문)
천주성곽은 당(唐) 나라 때인 730년에 처음으로 축조되었다. 당시 주성(州城) 성벽은 전부 화강암으로 쌓아 ‘석성(石城)’이라 불렀다. 오대(五代) 때 절도사(節度使) 유종효(留從效)가 해외무역의 발전에 적응하기 위해 천주성을 증축하고 도로와 화물창고를 새로 건설했으며 천주성의 주변에 자동나무를 심어 천주는 ‘자동나무의 도시’라는 이름도 가진다.
원(元) 나라 때 경제발전의 수요에 의해 천주에 행성(行省)을 두었으며 천주성도 대 규모로 확장되었다. 당시 천주성 증축에 사용한 벽돌의 모양이 잉어와 같다고 해서 천주는 또 ‘잉어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명(明) 나라와 청(淸) 나라 때 천주에는 부(府)를 두었고 벽돌로 쌓은 성벽을 다시 돌로 쌓은 석성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천주성의 성벽은 중화민국(中華民國) 시기의 전란으로 무너져 오늘은 성문만 남아 있다.
(사진설명: 천주항의 일각)
천주고성의 발전은 천주항 해외무역의 발전과 직결된다. 고대 중국의 천연적인 항만인 천주는 일찍 1500여년 전의 남조(南朝) 때에 벌써 외국과 내왕했다.
당(唐) 나라 때 교주(交州), 광주(廣州), 양주(揚州)와 함께 중국 대외무역의 4대 항만으로 부상한 천주에는 많은 외국의 상인과 사절, 전도사들이 들어왔다.
그 후 남송(南宋)때 천주는 중국에서 2대 상업항만 중 하나로 부상해 동남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지역의 70여개 나라와 왕래했다. 원(元) 나라 때에 이르러 전례 없는 번성을 이룬 천주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과 함께 세계 최대의 항만으로 발전해 천주의 외국인은 수만 명에 달하고 천주와 교류한 나라와 지역은 100개가 넘었다.
(사진설명: 천주해외교통사박물관의 전시물)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여행기에서 모두 천주의 번창함을 높이 평가하고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큰 항만인 천주항에 감탄했다.
천주해외교통사(泉州海外交通史) 박물관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해외 교통사를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개원사관(開元寺館)과 동호신관(東湖新館)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신관은 1991년에 신축되었다.
돛대를 펼치고 항행하는 선박모양의 외관을 가진 박물관은 ‘천주해외교통사진렬관(陳列館)’과 ‘천주종교석각관’, ‘천주민속진렬관’, ‘중국고대선박모형관’ 등 네 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개원사와 쌍탑)
해외무역의 발전으로 천주는 다원화 문화의 특색을 띤다. 불교와 도교, 이슬람교, 고(古) 힌두교, 마니교, 경교(景敎) 등 여러 가지 종교가 천주에 전파되어 많은 유물과 문화재를 남겼다. 이로 인해 천주는 ‘세계종교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원사(開元寺)와 쌍탑(雙塔) 중 사원은 원래 현지의 부자 황수공(黃守恭)의 뽕나무 밭이었다. 개원사와 뽕나무 밭에는 이런 사연이 전해진다. 어느 날 황수공의 꿈속에서 한 스님이 절을 짓는 땅을 시주하라고 말했다. 그 말에 황수공은 뽕나무에 연꽃이 피면 땅을 내놓겠다고 대답하고 꿈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과연 뽕나무에 하얀 연꽃이 피어났다. 황수공은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어 뽕나무 밭을 사원의 입지로 시주해 사원을 지었는데 그 사원이 바로 개원사라는 전설이다.
(사진설명: 개원사의 쌍탑과 숲)
당나라 때인 686년에 공사를 시작한 개원사는 처음에 연화도장(蓮花道場)이라 불렀다. 개원사에는 현재도 전설 속 하얀 연꽃을 피웠다는 뽕나무가 보존되어 있다.
여전히 무성한 잎을 가진 이 뽕나무는 중국에서 수령이 가장 길며 현재는 개원사의 명물이 되었다. 738년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연간, 중국 전역의 주(州)와 도(道)에 각자 절을 하나씩 지으라는 칙령이 내려졌고 그에 따라 연화도장은 연호를 따서 개원사라 개명했다.
오대(五代)와 송(宋) 나라 때의 발전을 통해 개원사는 120개의 절을 거느렸으며 원(元) 나라 때 하나로 통합했다. 현재 천주 개원사는 복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원이다.
(사진설명: 개원사의 대웅전)
개원사 본전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백 개의 돌 기둥에 받들려 백주전(百柱殿)이라고도 부른다. 대웅보전의 두공에는 새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불교의 묘음조(妙音鳥)와 기독교의 천사, 중국의 비천(飛天)을 한 몸에 모은 ‘비천악기(飛天樂伎)’가 조각되어 있다.
전각 앞의 월대(月臺) 수미좌(須彌座)에는 사람의 얼굴에 사자의 몸을 가진 72기의 석상이 있으며 전각 뒤의 두 기둥에는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인도 등지의 신화가 조각되어 있다. 이로부터 원나라 때 천주는 개방정도가 높았고 외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개원사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솟은 쌍탑은 대웅보전과 품(品)자의 구도를 형성한다. 목조건물을 모방한 팔각형에 5층으로 된 쌍탑은 모두 누각모양의 석탑이다. 동탑은 865년에 신축했고 1250년에 개축했다. 서탑은 916년에 지었다가 수차 보수하고 개축했으며 현재의 탑은 1237년에 개축한 것이다.
(사진설명: 청정사의 정문)
천주 청정사(淸淨寺)는 중국에서 역사가 유구한 고대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이다. 사원에 보존된 고대 아랍어로 된 비석에 의하면 청정사는 북송(北宋) 때인 1009년에 신축했으며 원(元) 나라와 명(明) 나라 때 개축했다.
현재까지 사원의 정문과 봉천단(奉天壇), 명선당(明善堂)이 보존되어 있다. 높이 20m, 너비 4.5m의 정문은 청색과 백색의 화강암으로 축조했고 바깥과 가운데, 안쪽 세 겹으로 되어 있다.
세 겹의 문은 모두 원형의 아치형으로 되어 있으며 정문의 위에는 평평한 단을 조성해 이슬람 신도들이 올라서서 달을 바라보며 라마단의 일자를 결정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낙양교)
봉천전은 사면의 돌 벽만 남고 천정은 오간 데 없으며 남쪽의 내벽에 아랍어로 된 <코란경>이 새겨져 있다. 청정사에는 1407년 명 왕조가 청정사 보존을 위해 내린 <상유(上諭)>가 새겨진 비석도 있다.
남송(南宋) 시기 해외무역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천주일대에는 많은 교량을 건설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다리가 바로 1060년에 완공한 낙양교(洛陽橋)이다.
낙양강(洛陽江)을 가로 질러 복주(福州)와 천주항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중국에서 최초로 되는 양식(梁式) 석교이다. 낙양교는 길이 834m, 너비 7m이며 노면에 화강암을 깔고 46개의 교각을 세웠다.
(사진설명: 낙양교의 일각)
낙양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 입구에 위치한 낙양교는 신축 초반에 급한 물살로 인해 교각이 수차 물에 떠밀려 내려갔다. 장인들은 먼저 교각을 세울 강바닥에 많은 돌을 쌓아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 교각을 세웠다.
그리고 교각 근처에서 많은 굴을 양식해 교량의 기반과 교각이 단단하게 맞물리게 했다. 생물을 이용한 이런 방법은 고대 중국인들의 중요한 과학적인 창조이다.
이 방법은 교량 건설역사에서 독특한 방법이자 세계적으로 최초로 생물학을 교량공정에 이용한 쾌거이다. 낙양교의 건설은 교량 건축사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으며 천주의 교통발전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발휘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