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제남)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백네 번째는 산과 호수의 도시 제남(濟南)이다. 태산(泰山)의 북쪽 산자락, 황하(黃河) 강의 남쪽 기슭에 샘물이 솟아나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고즈넉한 도시가 있다. 이 도시가 바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 제남이다.
산동(山東) 성 소재지 제남은 산동의 중서부, 제수(濟水) 강의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이름이 제남이다. 제남은 ‘사면에 연꽃이 피고 삼면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으며 도시의 반은 산이고 반은 호수’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제남은 예로부터 태산 문화권에 속하며 동이(東夷) 문화를 형성했다. 2천 5백여년 전 제(齊)나라가 이 곳에 성곽을 쌓고 낙읍(泺邑)이라 부르다가 역하(歷下)라 개명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제남)
기원전 200년대의 진(秦) 나라 때 제남은 제북군(濟北郡)에 속했고 한(漢) 나라 초반에는 제남군(濟南郡)을 두어 그때로부터 제남이라는 지명을 처음 사용해 지금까지 이른다.
310년 서진(西晉) 후반에 제남국 소재지를 역성(歷城)으로 옮기면서 제남은 역대 군(郡)이나 주(州), 부(府)의 소재지가 되어 줄곧 산동반도의 행정중심의 지위를 가졌다.
제남은 지세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도시 남쪽 산악지대의 지하수가 북쪽의 도심에 흘러 든 후 지면으로 솟아오르며 제남성에 ‘샘물 백 개가 다투어 솟아나는’ 정경을 형성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명호와 제남)
청(淸) 나라 소설가 유악(劉鶚)은 <노잔유기(老殘遊記)>에서 제남을 ‘집집마다 샘물이 솟아나고 문 앞마다 버드나무가 휘늘어져 있다’고 묘사했다. 통계에 의하면 제남에는 4대 샘물 구역, 10대 샘물의 군락, 72개의 샘물이 있다.
천연적인 샘물의 박물관이자 ‘샘물의 도시’라 불리는 제남의 샘물은 수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모양도 다양하다. 그 중 표돌천(趵突泉)과 흑호천(黑虎泉), 진주천(珍珠泉), 금선천(金線泉)이 가장 유명해 4대 샘물로 인정된다.
제남의 4대 샘물과 72개 샘물 중 으뜸을 차지하는 표돌천은 ‘이 세상 제1의 샘물’이라 불린다. 사서에 기록된 표돌천의 역사는 3천여 년 전의 상(商) 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표돌천)
상나라 때 표돌천은 낙수(泺水) 강의 수원지로 ‘낙(泺)’이라 불렀고 1천여 년 전 송(宋) 나라 문학가 증공(曾巩)이 ‘표돌천’이라 개명했다. ‘표돌천’이란 발로 땅을 차고 솟아 올라옴을 의미하며 ‘표돌등공(趵突騰空)’은 명(明)과 청(淸) 나라 때 제남 8경의 으뜸이었다.
표돌천의 샘물은 표돌천공원의 낙원당(泺源堂) 앞에 조성된 길이 30m, 너비 18m, 깊이 2.2m의 연못에서 쉬지 않고 솟아오른다. 표돌천의 샘물은 물량이 많고 수질이 좋으며 물맛이 달며 수온은 1년 사계절 섭씨 18도 정도를 유지한다.
전한데 의하면 청나라 건륭(乾隆)제는 강남(江南)으로 갈 때 북경(北京)에서 나는 샘물 옥천수(玉泉水)를 소지했는데 제남에서 표돌천의 물맛을 한 번 보고 나서는 옥천수 대신 표돌천의 물을 가지고 다녔다. 건륭제는 또 표돌천을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 책봉해 그로부터 표돌천은 이 세상 제일의 샘물이라는 미명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설명: 아늑한 하원)
주변에 노금선천(老金線泉)과 류서천(柳絮泉), 속옥천(涑玉泉), 마포천(馬跑泉), 황화천(皇華泉), 와우천(臥牛泉), 금선천(金線泉) 등 15줄기의 샘물을 거느린 표돌천은 독특한 경관을 형성해 공원으로 개발되었다.
표돌천공원에는 샘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란정(觀瀾亭)과 이청조(李淸照) 기념관, 망압정(望鴨亭)을 비롯한 인문명소가 기이한 바위의 동산, 화사한 꽃나무와 어울려 아름다운 산수와 풍부한 인문 경관을 형성한다.
진주천(珍珠泉)과 왕부지(王府池)를 비롯한 샘물은 모두 도심의 대명호(大明湖)에 흘러 들어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한다. 제남 3대 명승 중 하나인 대명호의 남쪽 기슭에서는 또 청(淸) 나라 때인 1909년에 조성한 맑은 시냇물과 꼬불꼬불한 복도, 아담한 동산, 화사한 꽃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정원 하원(遐園)이 명물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명호의 일각)
청나라 후반에 신축했다가 1961년에 개축한 남송(南宋) 사인(詞人) 신기질(辛棄疾) 기념사(記念祠)도 대명호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대명호를 사이두고 그 맞은 켠에는 송(宋) 나라 문학가이자 제주(齊州) 지주(知州)였던 증공(曾巩)의 사당 남풍사(南豊祠)가 있다.
대명호의 섬에는 1500여년 전의 북위(北魏)때 명명하고 청나라 때인 1693년에 개축한 역하정(歷下亭)과 어비정(御碑亭), 명사헌(名士軒) 등 예스러운 고건물들이 아름다운 호수와 조화의 하모니를 이룬다.
이 밖에 대명호의 기슭에는 회파루(匯波樓)와 회천당(匯泉堂), 월하정(月下亭), 명호거(名湖居) 등 다양한 모양과 운치를 자랑하는 고건물이 산재해 ‘천 가지 비경을 한 곳에 모은 신기한 자연(造化鍾神秀)’을 펼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명호)
제남의 3대 명승 중 하나인 대명호는 제남성에 흘러 든 샘물이 모여 조성된 호수이다. 대명호의 수면은 제남 옛 도시의 1/4를 차지하며 수면 면적은 46헥타르에 달하고 수심은 최대로 4m에 달한다.
경치가 수려한 대명호의 수중에서는 물고기가 노닐고 수면에는 연꽃이 화사하며 그 사이로 예스러운 모양의 유람선이 오가고 호수 기슭에는 버드나무가 휘늘어지고 온갖 꽃이 화사하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는 온갖 모양의 정자와 누각이 산재해 먼 산과 가까운 호수, 푸른 하늘과 하나로 어우러진 대명호는 거대한 채색의 아름다운 그림인 듯 황홀경을 펼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천불산)
대명호에는 또 울지 않는 개구리, 뱀이 없는 호수 , 가뭄에도 줄지 않는 호숫물, 장마에도 붓지 않는 호숫물 등 ‘4대 기이한 현상’이 있다. 여름이면 대명호는 또 해마다 연꽃축제도 개최한다.
과거 역산(歷山)이라고 부른 천불산(千佛山)은 제남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순(舜) 임금이 이 곳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순경산(舜耕山)이라고도 부르는 천불산은 1500여년 전 불교의 성행으로 바위에 불상을 많이 새기면서 점차 천불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높은 산봉우리의 산발이 기복을 이루고 산발에는 숲이 우거진 천불산 산중에는 당(唐) 나라 때 지은 사찰 흥국사(興國寺)가 아늑함을 자랑하고 바위마다 불상이 새겨져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천불산의 불상)
흥국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과 관음당(觀音堂), 문창각(文昌閣) 등 건물에 역대의 석각이 보존되어 있으며 사찰 남쪽의 천불애(千佛崖)에 천 년 전에 조성된 마애석각이 남아 있고 천불애 하단의 만불동(萬佛洞)에도 2만 8천여 기의 불상이 보존되어 있다.
흥국사 옆의 산등성이에는 500여년 전에 지은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에 올라서서 저 멀리 바라보면 거울 같은 대명호와 비단 띠 같은 황하, 샘물의 도시 제남이 한 눈에 보인다.
흥국사에서 서쪽으로 50km 거리에 중국 4대 고찰 중 하나인 영암사(靈岩寺)가 아늑함과 예스러움을 겸한다. 북위(北魏) 때인 520년에 신축한 영암사에서 산정까지 올라가는 오솔길 양옆에는 423쪽의 마애석각 혹은 바위에 새긴 글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영암사)
영암사의 석각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천불전(千佛殿)에 소장되어 있는 1천여년 전 송(宋) 나라 때의 채색 나한(羅漢) 조각상이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이 조각상은 ‘중국 제일의 유명한 조각상’이라 불린다.
제남 최대의 불교성지인 영암사를 찾는 신도와 관광객은 아주 많다. 특히 해마다 음력으로 3월 초사흘과 초이레, 중양절(重陽節) 등 민간 명절 때면 영암사를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 천불산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예로부터 영웅과 명인이 많이 난 제남에는 그들이 남긴 인문명소도 많다. 당 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는 ‘역하정은 제(齊)의 땅에서 제일 오래된 정자요(海右此亭古) 제남은 명사들이 많이 나는 곳이라(濟南名士多)’라는 시구를 남겼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제남)
제남에는 옛날 순 임금이 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남겼다고 전해지는 우물 순정(舜井)과 그 주변의 거리 순정가(舜井街)가 보존되어 있으며 순 임금을 위한 사당 순묘(舜廟)도 있다.
1500여년 전 춘추(春秋) 시기 제(齊) 나라 대부(大夫) 포숙아(鮑叔牙)는 제나라를 위해 큰 기여를 했다. 후세 사람들은 포숙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제남 동쪽 근교에 위치한 포숙아가 묻힌 산을 포산(鮑山)이라 부른다.
그 밖에도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들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송나라 문학자들인 구양수(歐陽脩)와 소동파(蘇東坡), 증공(曾巩) 등도 모두 제남에 흔적과 작품을 남겼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제남)
특히 송나라 때 유명한 사인(詞人)들인 이청조(李淸照)와 신기질(辛棄疾)이 제남에서 태어나 사람들은 지금도 그들을 기린다. 대명호 공원에 이청조 기념당이 있는 외 도심에서 40km 거리의 맥천(脈泉) 공원에 이청조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청조원(淸照園)이라고도 부르는 이청조의 생가는 송나라 때 강남 풍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넓은 부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고 그 사이사이에 산재한 음풍사(吟風榭)와 연침응향(燕寢凝香), 해당헌(海棠軒), 비랑(碑廊) 등 15채의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가헌사(稼軒祠)라고도 하는 신기질 기념사당은 대명호 기슭에 위치해 있다. 남쪽을 향한 가헌사는 중심선에 주요 건물이 줄지어 있고 양쪽에 별채를 거느리며 건물들은 복도로 연결되어 엄밀한 구도를 자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