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09:28:02 출처:cri
편집:李仙玉

[악비 편-3] 북벌에서 승리하다

(사진설명: 악비의 동상)

제3회 북벌에서 승리하다

소흥(紹興) 10년(1140년), 남송(南宋) 황제는 악비에게 광주(光州)와 채주(蔡州), 순창(順昌)에 가서 유기(劉錡)의 군대를 지원하라는 명을 내렸다. 악비는 속으로 내심 기뻤다.

“이는 중원(中原)으로 쳐들어가 황하(黃河) 북쪽지역을 수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구나! 나는 이 기회에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서 네 번째 북벌을 해야겠다.”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악비는 즉시 군대를 두 갈래로 나누어 수하 장군이 한 갈래를 이끌고 순창으로 가서 유기의 군대와 합류하게 하고 자신은 다른 한 갈래를 거느리고 중원을 향해 북상했다.

악가군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영창부(穎昌府)를 점령하고 그 기세를 빌어 회녕부(淮寧府)를 수복했으며 영창부에 주력부대를 주둔시켰다.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언성(郾城)에 주둔한 악비는 북벌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준(張俊)과 왕덕(王德)의 부대가 박주(亳州)에서 철수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순간 악비는 깜짝 놀랐다.

“정세가 심각하구나. 우리 군대는 지원 없이 싸워야겠구나. 금(金)의 주력부대가 다시 공격해오면 많이 위험해지겠다.”

마음 속으로 걱정하고 분노하면서도 북벌로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으려는 악비의 의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과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 밤 악비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촛불을 들고 바닥에 꿇어 앉아 군사지도를 보고 있는데 갑자가 첩자가 들어와 보고했다.

“올술(兀術)이 용호대왕(龍虎大王), 삼로도통(三路都統)과 함께 만 오천의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언성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악비는 총명하고 음험한 올술이 자신을 생포해서 악가군을 두령이 없는 오합지졸로 만들어 놓고 하나씩 격파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적군의 수가 많아 역량의 대비가 현저하다. 맞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

악비는 냉정하게 생각하며 작전계획을 짰다.

“악운(岳雲)이 8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을 맡는다. 첫 전투이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만약 이기지 못하면 너의 목을 칠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간 악운은 용감무쌍하게 칼을 휘둘렀다. 적진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악운의 칼이 닿는 곳마다 금의 병사가 쓰러졌다. 악운의 장군 중 양재흥(楊再興)이 올술을 생포하려고 홀로 말을 달려 적진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양재흥은 비록 올술을 생포하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적군 백 명을 베는 기적을 창조했다. 악비는 양재흥이 적군의 포위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고 몸소 기병 40명을 거느리고 나가 양재흥을 추격하는 적군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통솔권자 악비가 몸소 출전한 것을 본 악가군 군사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악가군이 싸울수록 용감한 것을 본 올술은 기병을 파견해 오른쪽과 왼쪽으로 우회하는 괴자마(拐子馬) 작전으로 악가군을 포위하게 했다. 벌써부터 올술의 전술을 파악한 악비가 명령을 내렸다.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한 갈래는 정면으로 적군과 싸우고 다른 두 갈래는 양쪽으로 우회해 오는 적군을 막는다.”

올술은 괴자마전술도 실패하자 이번에는 근위병과 말에 갑옷을 입혀 돌격해왔다. 악비는 마찰도(麻扎刀)로 위로는 적군의 가슴을 찌르고 아래로는 말의 발굽을 자르라고 명령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올술의 근위병들이 분분히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악가군은 싸우면 싸울수록 더 용맹해졌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자 투지를 잃은 금의 군사는 분분히 후방으로 도주했다. 적은 수의 병력으로 강적을 이긴 악가군은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은 올술은 이틀 후 또 다시 공격해왔다. 악비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적군과 싸웠으며 부장(部將)인 왕강(王剛)에게 5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오리점(五里店)으로 가서 적정을 알아보게 했다. 왕강은 자색의 도포를 입은 한 장군이 군사를 순시하는 것을 보고 번개 같이 출전해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는 적진을 좌충우돌하며 칼을 휘둘렀다. 원래 그 장군은 금의 주장(主將) 아리타배근(阿李朶孛菫)이었다. 주장이 죽자 금의 군사들은 당황해서 각자 도주했고 악가군은 20리(里, 1리=0.5km)밖에 까지 추격했다.

언성대첩을 거쳐 악가군은 승승장구하며 정주(鄭州)와 낙양(洛陽)을 공격했다. 10년 전 올술이 송고종(宋高宗)을 추격한 것처럼 악비는 올술을 끝까지 쫓았다. 악가군에 쫓겨 황룡부(黃龍府)로 도주한 올술이 탄식했다.

“나는 평생 오늘과 같은 참패를 당해본 적이 없다. 산은 흔들 수 있어도 악가군은 전혀 드팀이 없구나!”

백전백승을 이루는 악가군은 민심을 크게 진작해 금(金)에 맞서려는 남송(南宋) 군민의 투지도 앙양되었다. 악비가 흥분해서 말했다.

“황룡부에 쳐들어가 폐하들과 실컷 술잔을 나누자!”

황룡부는 바로 당시 금나라의 수도인 오늘날의 북경(北京)을 말한다. 하지만 악비는 바로 이 때 남송 조정이 금나라와 강화를 준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금나라의 속국이 되어 금나라에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남방의 국토에 안주하려던 고종제는 악비가 언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황룡까지 쳐들어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악비가 자신의 큰 일을 방해할 것을 걱정한 고종제는 연속 12개의 금패(金牌)를 보내 군사를 이끌고 조정에 돌아와 공에 따라 상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금자패급각달(金字牌急脚達)이라는 명칭의 금패는 황제의 어명을 가장 빠른 속도로 전하는 패쪽을 말한다. 붉은 색을 칠한 나무 패쪽에 금박의 글자를 써서 급보를 전하는 사자가 몸에 달고 말을 타고 번개 같이 달린다. 사람들은 금패를 단 사자가 지나갈 때면 모두 너도나도 길을 피한다. 금패를 받은 악비가 비오 듯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10년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갔구나.”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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