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7 10:27:49 출처:cri
편집:李仙玉

[곽수경 편-2] 천문학의 귀재

(사진설명: 곽수경 기념관의 일각)

제2회 천문학의 귀재

곽수경(郭守敬)은 수리관(水利官) 직을 담당하는 동시에 천문관(天文官) 직무도 겸했다. 이는 그의 스승 유병충(劉秉忠)과 절친 왕순(王恂)의 천거 덕분이었다. 유병충은 조정에서 공부랑중(工部郎中)을 맡고 왕순은 황궁에서 태자의 공부를 동반하는 반독(伴讀)이 되었다. 후에 왕순은 태자의 측근이 되어 오늘날의 최고 명문대 총장에 맞먹는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가 되었다. 황제가 새 역법을 개정하려 할 때는 역법 개정을 제안한 유병충이 타계한 뒤라 왕순이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천거로 곽수경은 수리공사를 담당하는 공부랑중도 되고 역법개정을 주재하는 동지태사원사(同知太史院事)도 되었던 것이다.

곽수경은 새 역법을 제정하려면 천문현상을 정확하게 관측하고 관측을 통해 수집한 정확한 수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천문현상을 관측하려면 우선 관측기기가 있어야 하는데 전란과 왕조 교체에 국도 천도까지 겹치다 보니 송(宋) 나라 때의 천문기기가 거의 다 부서지거나 사라졌다.

곽수경은 새로운 관측기기를 만들려고 작심했다. 그는 설계도를 그려서 황제에게 올렸다. 그 도면을 본 황제는 급한 마음에 빨리 제조에 들어가라고 그 자리에서 어명을 내렸다. 황제는 곽수경이 새로 만들고자 한 관측기기는 간의(簡儀)와 고표(高表), 후극의(候極儀), 혼천상(渾天象), 영롱의(玲瓏儀), 앙의(仰儀), 입운의(立運儀), 증리의(證理儀), 경부(景符), 규기(窺畿), 일월식의(日月食儀), 성구(星晷), 정시의(定時儀)을 망라해 도합 30여가지나 되어 제조에 시간이 많이 들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후 곽수경은 천문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각지로 파견한 사람들의 사용상 편리를 위해 또 정방안(正方案)과 환표(丸表), 현정의(懸正儀), 좌정의(座正儀) 등 네 가지 계기를 만들었으며 앙규복구도(仰規覆矩圖)와 이방혼개도(異方圂蓋圖), 일출입영단도(日出入永短圖) 등 다섯 가지 천문도를 그려 기기와 참조하며 사용하게 했다.

곽수경은 확실히 신인(神人)이었다! 그가 손쉽게 만든 기기들 중 몇 가지는 전대미문의 세계 제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중 세계 최초의 대적도의(大赤道儀) 간의(簡儀)를 보자!

간의는 이름처럼 간단한 기기가 아니라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복잡한 기기인데 이 기기를 통해 북극성(北極星)을 제외한 전체 하늘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간의(簡儀)라 이름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간의는 서로 수직으로 나란히 하는 두 개의 둥근 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적도환(赤道環)은 지구의 적도면과 평행을 이루고 적경쌍환(赤經雙環)은 적도환의 중심에 수직으로 위치해 금속 축을 안고 돈다. 두 바퀴의 중간에는 내부에 십자사(十字絲) 장치를 둔 규관(窺管)이 있는데 현재의 망원경을 말하는 이 규관은 적경쌍환을 중심으로 돌 수 있다. 천체를 관측할 때 규관으로 어느 별에 초점을 맞추면 내부의 눈금판에서 그 별의 위치를 읽을 수 있다. 곽수경이 제작한 이 대적도의는 이와 유사한 유럽인들의 발명에 비해 3,4백 년이나 앞섰다.

이번에는 앙의(仰儀)를 보자. 앙의는 이름 그대로 하늘을 향해 놓은 가마 솥을 방불케 하는 구리 반구(半球)이다. 솥의 변두리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가 새겨져 있고 가로 세로 두 개의 장대가 작은 판자를 받들고 있는데 판자의 반구 중심 위치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으로 햇빛이 구면(球面)에 원형상(圓形象)으로 비치면 구면에 새겨진 눈금판을 통해 태양의 방위를 읽을 수 있다. 일식(日食)이 발생하면 구면에 비친 모양에도 변화가 생겨 비 원형상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앙의를 통해 일식의 방위와 정도, 시간까지 관측할 수 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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