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이시진)
제3회 생명을 어여삐 여기는 良醫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쓰기 위해 천신만고를 마다하지 않고 아무리 궁벽한 산간벽지도 다 다니고 온갖 신비스러운 곳도 다 물어서 찾아 갔다.
어느 날, 이시진은 한 광산을 지나다가 그 광산이 납광인 것을 알고 왕광화에게 말했다.
“고서에는 납이 독성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게 좀 의심스럽다. 연단술사들이 수은과 납을 원료로 불로장생의 단약을 조제하는데 그 단약을 먹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빨리 죽는 것을 많이 보았다. 수은은 독성이 있다는 것을 시험도 해봤다. 수은에는 극독물질이 함유되어 수은으로 만든 단약은 생체의 외부에 사용할 수는 있지만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이번에 납이 독성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이시진과 왕광화는 광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광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납이 왜 독이 없겠습니까? 여기 광부들 다수가 만성 납중독으로 죽습니다. 피부가 노랗게 되면 사람이 곧 죽습니다. 광부들이 죽을 때 다 비슷합니다. 피부가 노랗게 되고 심지어 눈도 노랗게 변하며 복수(腹水)가 생겨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것이지 안 그러면 누가 목숨 걸고 여기서 일하겠습니까?”
많은 광부들의 얼굴빛이 어두운 것을 본 이시진은 그들 모두가 만성 중독 증상임을 확인하고 납에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때 이시진은 납덩이를 사려고 광산주를 찾아온 한 도사(道士)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도사가 수은과 납으로 단약을 만들어 무지한 백성들에게 파는 것은 물욕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과 같다.”
이시진이 다가가서 도사에게 물었다.
“도사님, 납덩이를 구하러 오셨습니까?”
도사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내가 납덩이를 사든 말든 그대와 무슨 상관이요?”
“이 광부들을 보십시오. 얼굴빛이 어둡고 일부는 노랗기까지 합니다. 병색이 짙지 않습니까?”
“광부의 병색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소?”
“이들은 모두 오랫동안 납광을 채굴하고 납덩이를 제련하면서 납의 독성에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광부들이야 생계를 위해 부득이하게 납의 피해를 받지만 도사님께서는 독이 있는 납으로 단약을 만들어 환자에게 처방하고 심지어 불로장생까지 생각하시니 의도와는 딴판이 아닙니까? 납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단약을 만들지 마십시오.”
이시진의 말이 길어질수록 도사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는 말까지 나오자 화를 버럭 냈다.
“어디서 온 떠돌이 의사가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도가(道家)의 신선술을 네가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 감히 도사를 훈계하다니? 나는 너같이 무지한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가던 길이나 가라.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고 대역무도한 말은 적게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안 그러면 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니.”
왕광화가 급히 이시진을 잡아 당겼다.
“뜻이 다른 사람과는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갑시다!”
이시진을 끌고 가면서 왕광화가 도사에게 설명했다.
“저의 스승님께서 호의에서 말씀하신 건데 도사님은 어찌 그렇게 험한 말을 합니까?”
왕광화의 말에 도사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도 호의에서 말한 거다! 황제폐하께서 도교를 숭상하시고 단약에 심취하셔서 불사의 단약을 구하시는데 네 스승이 이런 말을 하고 다니면 생명이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시진이 놀라서 물었다.
“설마 도사님께서는 황제폐하를 위해서 납덩이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나는 황제폐하를 위해서가 아니오만 나의 스승님께서는 확실히 폐하의 부름을 받들고 입궐해서 단약을 만들고 계시오. 납덩이도 스승님께서 나에게 구해오라 하셨소.”
진지한 얼굴의 도사를 보며 이시진은 그의 말이 사실이다 싶어 할말을 잃고 말없이 왕광화를 따라 광산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시진이 고향에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약에 빠져 불로장생을 꿈꾸던 자금성의 가정(嘉靖)제가 붕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시진은 아픈 가슴을 붙잡고 이렇게 생각했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제(秦始皇帝)는 단약에 목숨을 잃고 역시 불로장생을 추구하던 한무제(漢武帝)도 단약에 의해 죽었다. 우리 황제폐하께서도 그 뒤를 이어 결국 독성이 있는 단약의 피해를 입으셨구나. 나는 수은이나 납과 같이 단약을 제조하는 원료에 독성이 있다는 내용을 반드시 확실하게 <본초>에 써넣어야겠다. 그래서 단약에 독이 있으니 절대 믿지 말라고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