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천공개물>의 일각)
제3회 외딴 탑을 쌓는 官吏
늦은 봄, 분의현(分宜縣)의 전야는 노란 유채꽃의 바다로 변하고 소나무 설레는 산중에서는 꾀꼬리 우는 소리가 청아했다. 분의현 현령(縣令) 조국기(曺國褀)는 술 단지와 시집을 들고 송응성과 함께 봄놀이를 떠났다.
현령이 물었다.
“자네는 매일 책을 쓰던데 어떻게 오늘은 나와 함께 산과 들의 경치를 구경할 한가로움을 가졌는가? 설마 <천공개물(天工開物)>을 다 쓴 건가?”
송응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 형, 잘 맞추셨습니다. <천공개물>을 거의 다 써갑니다. 분의에 있는 4년 동안 저는 많은 걸 얻었습니다.”
“자네의 그렇게 많은 거작들을 읽은 나야 말로 얻은 것이 많지. 근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자네는 지금까지 <천공개물>은 언급하지 않네 그려. 오늘은 알려줄 수 있겠는가?”
“말씀만 하십시오! 어떤 걸 알고 싶으십니까?”
“<천공개물>이란 무슨 뜻인가? 책 제목을 왜 이렇게 달았는가?”
“‘교탈천공(巧奪天工)’과 ‘개물성무(開物成務)’ 두 성어에서 책명을 취했습니다.”
“<주역·계사상(周易·系辭上)>에 나오는 ‘개물성무’는 사물의 법칙을 알기만 하면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네 이 책에 모두 법칙성이 있는 것들을 썼는가?”
“그렇습니다. 이 두 성어를 합친 ‘천공개물’의 의미는 사물의 법칙을 따르면 자연을 초과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적이고 뜻도 정확하고, 참으로 좋은 책명이네 그려. 책에 기록한 생산기술의 내용이 아주 많을 것인데 분류는 어떻게 했는가?”
“분류법은 ‘귀오곡이천금옥(貴五谷而賤金玉),’이 한가지입니다.”
조 현령이 웃었다.
“하하, 귀오곡이천금옥이라, 오곡을 중히 여기고 금옥을 그 뒤에 둔다. 참으로 글도 아름답구려. 생산기술을 쓴 언어가 이렇게 시처럼 아름다우니 자네 참으로 대단하네!”
“그건 서문입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민생과 직결되는 생산기술을 제일 앞에 놓고 옥석의 채굴 및 가공과 같은 것은 제일 뒤에 두었습니다. 그 순서를 보면, 곡물의 재배에 관한 <내립(乃粒)>이 제일 먼저이고 그 뒤에 양잠과 방직에 관한 <내복(乃服)>과 원단 염색에 관한 <창시(彰施)>, 곡물 가공에 관한 <수정(粹精)>, 식염 생산에 관한 <작함(作咸)>, 사탕수수의 재배와 제당 및 양봉에 관한 <감기(甘嗜)>, 식물로 기름을 짜는 <고액(膏液)>, 벽돌, 기와, 도자기 제조에 관한 <도연(陶埏)>, 제철 및 주철에 관한 <야주(冶鑄)>, 선박과 마차를 만드는 <주거(舟車)>, 철기와 동기를 만드는 <추단(錘鍛)>, 석탄과 석회를 굽는 <파석(播石)>, 제지절차에 관한 <살청(殺靑)>, 금속 제련에 관한 <오금(五金)>, 무기 제조에 관한 <가병(佳兵)>, 염료 제작에 관한 <단청(丹靑)>, 술을 빚는 <곡얼(曲孼)>, 보석 채굴과 제조에 관한 <주옥(珠玉)> 이런 순으로 도합 18권입니다.”
송응성이 분류법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조 현령이 감탄했다.
“자네는 손금 보듯 환하게 알고 있네 그려! 삼라만상을 포함한 여러 업계의 생산기술이 다 있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벼슬과는 무관한데 자네는 왜 이렇게 공을 들이는가?”
조 현령의 질문에 송응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날의 선비들은 모두 경서의 죽은 글만 읽고 생산기술은 전혀 모릅니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한 이런 기술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기여하는데 서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서생은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書生百無一用)!’나는 평생 글만 읽었는데 다른 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 기여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책은 과거시험과는 무관하나 사람들의 생활에는 크게 연관됩니다! 하물며 입덕(立德)과 입공(立功), 입언(立言)은 삼불후(三不朽)입니다. 저는 제가 쓴 책이 반드시 후세에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라 믿습니다. 가사협(賈思勰)의 <제민요술(齊民要術)>을 보십시오. 천 년이 넘도록 전해지고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이 책을 보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야말로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지는 불후(不朽)이지요.”
송응성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조 현령이 또 물었다.
“단약 조제술은 쓰지 않은 것 같은데 무엇 때문인가?”
송응성이 화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약 조제술은 생산기술과 무관합니다. 저는 단약을 만들며 불로장생을 꿈꾸고 신선이 되고자 하는 그런 사기꾼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제가 어릴 때 가정(嘉靖) 황제폐하께서 궁중에서 연단을 만드시느라 수십 년 동안 나랏일을 보지 않아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마지막에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어서 땅에 묻히지 않았습니까?”
송응성이 갑자가 흥분하자 조 현령은 뭐라고 말할지 몰라 고민하는데 송응성이 말을 이었다.
“제가 기록한 여러 가지 생산기술은 모두 실험을 거친 것들입니다. 저는 기술의 원리를 터득하지 않은 것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는 수십 년을 준비했습니다. 20대 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깐요.”
조 현령이 웃었다.
“자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사후 불후(不朽)를 실현할 수 있을 거네.”
현령의 칭찬에 멋쩍어진 송응성이 화두를 돌렸다.
“우리 오늘 봄놀이를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천공개물> 이야기만 하다니요. 가십시다. 우리 뒷산의 절로 가봅시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사람 사는 마을에는 사월이라 꽃이 모두 지건만(人間四月芳菲盡) 산중 절의 복사꽃은 이제야 활짝 피어나네(山寺桃花始盛開)’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산중에 늦게 핀 꽃을 찾으면 오늘 우리 좋은 시 몇 수를 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말에 조 현령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송응성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