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선경을 방불케 하는 태로산)

정신을 가다듬고 깊은 산속, 산봉에 둘어쌓인 이 호수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듯 한다. 그 아름다움의 유혹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를 무아의 경지로 이끈 그 아름다움은 말로 하면 거짓이고 말로 하지 않으면 진실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만 꿈과 같은 정서만이 남아 내 온 몸을 감싼다. 저 부드러움을 보라! 둘레가 약 천미터가 되는 호수는 여성의 틀어올린 머리와 같다. 눈을 들어 저 멀리 바라보니 중앙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외 나머지 부분에는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없이 모두 부드러운 풀들로 덮여 있어 그 풀을 한 조각 베어내 머리 수건으로 하거나 카펫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부드러운 풀을 보자 우리는 뼈가 있다는 것을 잊은 듯 풀위에 꿇어 앉았다가는 풍덩 엉덩이도 풀위에 대보고, 혹은 아예 풀위에 큰 대자로 누워보기도 했다. 그러자 키 높은 풀에 쌓여 그 누구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모두들 또 다시 서로 부르며 떠들썩하게 몸을 일으키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서야 이 곳이 신비한 실종을 유발하는 버무다 삼각이 아닌줄 증명하고는 이 곳이야말로 연인들의 극락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간개념이 없는 이곳, 방향감이 없는 이곳, 하늘과 땅사이의 이곳, 부드러움속에서 모두가 융화되는 이 곳에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번에는 그 조용함을 들어보라! 조용함을 듣는다는 것을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호수를 등지고 바다를 향해 서면 바람이 귓가에서 들려주는 듣기 좋은 음악속에 저 멀리 호수 밑바닥에서 전해오는 속삭임이 들린다. 물결이 하나도 일지 않는 호수는 만년에 한 번 숨쉬는 듯, 아니면 첫 눈에 정이 든 우리를 보고 숨죽이는 듯 하다. 이따금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태고적 이야기를 하니 시간터널에라도 빠진 듯 오늘날이 어느 세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바람이 풀을 가볍게 쓰다듬자 풀위에 푸른 파도가 생겨났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없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들려오는 가벼운 새 소리도 실처럼 가늘어 하늘에서 들려오는지, 땅에서 들려오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소리를 들으려면 먼저 자신이 숨을 죽이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니 이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조용함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