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에서 나는 유구한 역사의 문화재나 혼을 앗아가는 기이한 경관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감탄을 자아낸 것은 황산의 소나무 황산송(黃山松)이었다.

황산의 소나무는 흐르는 구름과 맑은 하늘아래 불규칙적으로 암석사이에 뿌리내리고 있다. 소나무는 가을해빛아래 밝고 수려하고 강인하고 시원한 짙푸름을 자랑하며 보는 사람들에게 꿈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안겨주었다. 특히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 자라난 소나무의 그 윤곽과 풍골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소나무를 구경하면서 길가의 철난간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가끔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계단의 낙엽을 쓸어가는 것이 보였고 멀리서는 몇 조각의 구름이 떨어뜨리는 빗 방울이 흔들거리는 나뭇잎위에 내려앉는다. 협곡의 시냇물가에 앉아서 나는 소나무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너들 "용조(龍爪)", "흑호(黑虎)", "연리(連理)"라는 소나무의 이름을 아느냐? "영객(迎客)"소나무의 마음을 아느냐? 그랬더니 소나무들이 갑자기 숨을 죽이며 사색에 잠긴 듯, 추억에 빠진 듯 했다. 그 순간 오로지 나의 발자국 소리만 더 뚜렷해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