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辉
2019-12-11 19:54:59 출처:cri
편집:宋辉

[청취자의 벗] 2019년 12월 12일 방송듣기

남: 오늘도 여러분의 따뜻한 사연과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청취자의 벗>프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송휘입니다.

여: 안녕하세요? 이명란입니다.

남: 남: 스페인 속담에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가 바로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라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후회 없이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여: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 중, 첫 번째 날이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중의 대사인데요. 아무쪼록 연말연시에 마무리 잘 하고 좋은 추억 만들어 가시기 바라면서 오늘의 <청취자의 벗>프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노래 한 곡 듣고 오늘의 <편지 왔어요> 코너로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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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어서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편지사연들을 소개해 드리는 <편지 왔어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한국의 김연준 청취자의 사연부터 만나 보겠습니다.

(청취자 편지) 한국의 김연준 청취자

지난 주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영하 7도 까지 내려가는 등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여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약간 올랐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는 몸을 움추러들게 만듭니다.

지난 주말 덕유산 국립공원에 다녀 왔습니다.

덕유산은 무주리조트가 위치해 겨울철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제가 방문한 당일 스키장 개장식이 열려 스키 매니아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덕유산은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이용해 설천봉을 거쳐 정상인 향적봉에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겨울철 눈꽃이 장관인 곳입니다.

제가 방문한 날도 정상 부근에 눈이 내려 아름다운 눈꽃을 감상하기에 좋았습니다.

주변에 무주구천동과 태권도원, 라제통문 등 유명 관광지가 많아 한번쯤 방문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 중국 왕의 외교부장이 방한해 한국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환담을 나눴습니다.

한중 외교부장관의 회담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을 포함한 고위급 교류와 실질협력을 위한 방안,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 양국의 관심사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달 말 사천 성도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과 내년으로 예상되는 습근평 주석의 방한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양국장관은 한중 인문교류 촉진과 외교차관 전략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고 청소년 교류사업도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진전을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중 양국이 긴밀히 협력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중 양국의 고위급 대화가 지속되고 내년 습근평 주석의 방한이 실현되면 한중 관계는 한 단계 더 높은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사천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 연준

남: 네, 주말을 이용해 덕유산 국립공원을 방문했다는 내용과 왕의 중국 외교부장의 한국 방문 상황에 대한 김연준 청취자의 피드백 잘 들었습니다. 특히 겨울철 스키를 즐기려는 분들에게는 덕유산 스키장이 더 없는 행선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 강경화 한국 외교장관의 초청에 응해 왕의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2월 4일부터 5일까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전날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회담에 이어 5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서울 청와대 대통령부에서 왕의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면담했습니다.

남: 문재인 대통령은 왕의 부장에게 습근평 주석에 대한 친절한 안부를 전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올해는 한중 양국에 있어 중요한 의의가 있는 한해라며 자신은 습근평 주석과 6월 오사카에서 성공적인 회동을 가졌으며 양자관계가 중대한 진전을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여: 그는 한중간 긴밀한 대화와 협력은 동북아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고 지역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중요하고 안정적인 역량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한국 발전전략계획과 "일대일로"구상간 접점을 적극 찾을 것이며 제3측 협력의 전개를 통해 양국간 인문교류를 한층 긴밀히 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 문제인 대통령은 한국은 계획에 따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과정을 추진하는 것을 지지하며 한중일 자유무역구건설을 가속화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번 달 말 중국을 방문해 제8차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며 중국측과 긴밀히 협조해 회의가 원만한 성공을 이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 그는 또 반도 평화실현 과정에서 중국은 중요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며 한국은 이을 높이 평가하며 각측과 함께 노력해 반도평화행정을 추동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 왕의 부장은 현재 일방주의 강권정치가 국제 및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웃나라로 중한 양국은 대화와 협력을 적시적으로 강화하고 함께 다자주의를 고수하고 자유무역을 수호하며 국제관계 기본준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 왕의 부장은 양국관계가 양국 수반의 인솔하에 양호한 발전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중국은 한국측과 다음단계 고위층 왕래와 관련해 긴밀하게 소통할 의향이 있으며 대통령 각하가 중국을 방문해 제8차 중일한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표시했습니다.

남: 왕의 부장은 이어 조선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왕의부장은 또 한국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오아시아포럼 이사장도 각기 만났습니다.

여: 네, 김연준 청취자의 바람처럼 12월 하순에 개최 될 제8차 중일한 지도자회의가 순조롭게 개최되고 중한 관계도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계속해 다음 사연 만나 보겠습니다. 장춘의 박춘애 청취자입니다.

(청취자 편지) 장춘의 박순애 청취자

존경하는 윤영학 선생님과 부인 마경옥 선생님을 찾아서

송휘, 한창송, 이명란 선생님 그리고 아나운서 여러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 하신 노고에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1월 22일은 우리 경제 개발구 노인협회 활동일이였습니다.

김옥춘 회장님은 추운 겨울 활동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표시함과 동시에 전임회장 송철봉, 고문 김옥금과 김옥춘 세분께서 "음마하 조선족" 양로원을 찾아 윤영학 선생님의 병문안을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금년에 일본에 가서 진찰을 받고 의사선생님의 소견대로 지금은 양로원에서 요양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분이, 우리 곁에 살아있는 “뢰봉”이 병세가 악화되어 손 놓고 있다고 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앞을 가리였습니다.

하여 저는 장복순 전 3조조장을 찾아가 만약 윤영학 선생님의 병문안을 가거든 나도 꼭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원 장춘시 조선족중학교 교장선생님이시던 구순군 교장선생님의 딸과 사위가 자가용차, 동료 차까지 2대가 가는데 (24일 일요일) 구교장 선생님은 본인이 가시려던 것을 그 학교 졸업생인 나에게 양보하여 천만 감사했습니다.

한 차에 앉은 전임 회장 박인숙 회장님, 량선옥 선생님은 윤영학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곁에 살아있는 뢰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당에 충성하며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우리 민족의 말, 글을 사랑하시는 찾아보기 힘든 참된 분입니다.  

두 아들을 병으로 먼저 이 세상을 떠나 보낸 그 마음을 무엇으로 형용 하겠습니까?

윤영학 선생님은 남편 잃은 며느리를 앞세우고 눈보라 치는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이름 없이 깊은 산속에 누워계시는 항일혁명열사들의 이름을 12명이나 찾아 주었습니다. 그때 협회 정순애(구태구 조선족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돈 200원을 드리면서 노비에 보태 쓰시라 하였습니다. 윤 선생님께서는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그 돈으로 화환을 사서 혁명열사들에게 드렸답니다.

저는 2012년 애청자클럽에 참가하였는데 2조 조장을 책임졌습니다. 반세기도 넘도록 우리 말, 우리 글을 별로 사용하지 않은 나로서는 과분한 책임이었습니다. 윤선생님 부부는 나와 한 소조였습니다. 하기에 내가 국제방송국에 편지를 쓰면 목요일 저녁에 청취하시고는 나에게 고무의 전화를 매번 꼭 하여주었습니다. (난 금요일 아침에야 청취합니다)지어는 흑룡강성 아성에 갔을 때에도 전화가 와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남편이 뇌졸중으로 자립 못하신다는 것을 아신 선생님은 일본에 병 치료를 가서 본인이 써보시고 좋으시면 타국 일본에서 딸이 위암수술을 받고 본인이 병 치료한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활용품을 저에게 부쳐 주었습니다. 친형제면 이보다 더 하겠습니까? 놀랍고 감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2016년 9월 12일은 우리 협회 남하진 선생님께서 타계한 날입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9월 10일 교사절을 맞으면서 남하진 선생님께 문안을 오셨다가 남하진 선생님의 병이 위급하여 입원치료를 하신다 하여 병원에 찾아가니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며칠 남지 않은 생이라 하였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병원 근처에 호텔을 잡고 일주일이나 병원 간호를 하셨고 남하진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셨을 때 우리 협회에서 이런 대사에 익숙하신 오태근 선생님을 모셔다 후사처리를 알뜰히 처리하셨고 추도식에까지 참여 하시고서야 구태로(그때는 장춘시에 속하지 않았음) 돌아갔습니다. 친형제면 이보다 더하오리까.

윤선생님은 언제나 초심을 명기하고 계십니다.

1986년 연길에서 있은 <새 중국 창건 특수기여 영웅인물> 백 명중 한 사람으로 홍보된 새 중국 3대 악성(乐星)중 한 분인 정률성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 <정률성 평전>책을 통해 중국에 온지 불과 5년도 안 되는 그분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창작하고 뒤이어 <조선인민군 군가>를 창작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기적을 창조했습니다. 하여 윤영학 선생님은 우리 민족에 이런 위인이 계심으로 하여 민족 자호감을 크게 가졌습니다.

19세기에 고향을 떠나 가고 싶지만 가보지 못하신 고장을 2016년 1월 15일 아침에 일본에 가 병 치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 서울에서 광주행 고속버스로 우리 중국 조선족 위인이 나서 자란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항일전쟁과 공화국 창건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고 정률성 영웅의 고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울 파주시에 수십 년간 중국인민지원군 열사 유해를 보살펴 주신 고마운 한국분들을 찾아뵈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노고와 지성에 감사 드렸습니다. 뒤늦게 찾아가 지원군 열사들에게 사과하였으며 조국인민들은 당신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며 우리는 당신들의 덕분에 당과 습근평 주석의 옳바른 영도하에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이 고이 잠드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의 형님인 윤영희는 12살에 혁명에 참가하였고 1936년 2월, 처창즈 유격구를 보위하는 자위반격전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희생된 지 79년만에 열사증을 받았습니다. 열사비를 세우는데 쓰려고 돈 2만원을 모아두었는데 국가에선 항일혁명열사 비석은 국가에서 책임진다 하여 그 돈을 평소에 자주 열사능원을 찾아오는 처창즈 3중에 증정하여 학생들의 혁명전통교육사업에 더욱 큰 지지를 하였습니다.

병 치료에 아껴쓰고 생활에서 아껴쓰며 모은 돈 만원도 우리민족 연변축구에 기부하였습니다.

2016년 연변에 큰 홍수가 났을때 구태구 뢰봉반이 홍수제거활동을 할 때 80고령에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흙탕물 청소에 참가하였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연길 맹인 뢰봉반 반장 김봉숙 노인 팔십세 회갑에도 두 분이 가셨습니다.

윤영학 선생님께서 민족의 부흥을 위해 인민을 위해 헌신하신 업적은 한입으로나 글로 쓰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음마하 조선족 양로원>에 이르니 벌써 마경옥 선생님께서는 아래층 복도에 내려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보고 싶고 그립던 만남이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울었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 윤영학 선생님은 우리를 마중하려고 앉지도 못하는 몸으로 복도까지 나오셨습니다. 어느 정도의 의지와 얼마나 큰 노력으로 일어나 우리를 마중하러 나왔겠습니까? 그 소중하고 고귀한 정을 어찌 한입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눈물 속에 담긴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윤영학선생님께서 만남의 감사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장복순 여사가 "윤선생님, 사랑니 날 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하니 윤선생님은 "아니, 사랑니 하나 났습니다." 하여 모두들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장복순 여사가 또 "모두 눈을 감소!"하고 어깨 나란히 사진 한 장 찰칵, 너도 나도 서로 보며 사진 찰칵찰칵...

문오회장 김화는 "협회 오면서부터 친애하는 윤선생님께서 저에게 관심이 제일 컸습니다. 나는 선생님 내외를 아버지, 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우리는 선생님의 친자식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의 부인 마경옥 선생님은 "이제 여러분들이 말씀했는데 개발구 노년협회는 한집식구입니다. 평소 우리가 곤난하면 돈으로, 몸이 아프면 약으로 어떤 분들은 옷도 주고 하여 정신상 많은 고무를 받았습니다. 원래 일년을 살면 잘 산다 하였는데 여러분들의 독려로 지금 2년이 넘었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도 후사처리에 수요되는 물품을 한아름 안고 오셨군요. 하여 우리 부부는 '노인협회 송가'를 지었으니 노래로 보답하겠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두 분께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인송가>

"노인협회 우리 낙원 얼마나 좋아

우리 양주 이곳에서 만복 누리네

자식들 다 키우고 고생 끝나던 날

노인협회 종소리에 달려왔네.

아~아~ 노인협회 잊지 못할 그 은혜

우리 양주 무엇으로 보답하리까..."

노래 부르시는 마경옥 선생님도 눈물 흘리면서 불렀고 우리도 눈물을 흘리면서 덩실덩실 노래 가락에 춤을 추었습니다.

양선옥 선생님은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내십시오. 두 분께서 좋은 일을 하도 많이 하셔서 하늘도 감동했습니다. 하니 지금부터 자기 건강을 위하여 많이 드시고 오래오래 앉으신다면 그것이 우리들에 대한 보답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신옥 고문(이번 일을 조직한 구교장 사모님)은 "윤영학 선생님은 의지가 강하시고 유머적이고 낙관적이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병 치료에서 기적을 창조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부부가 이 좋은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즐기면서 오래오래 앉으세요.

우리는 작별사진을 찰칵 찍었습니다.

윤영학 선생님, 당신은 혁명가정에서 태어난 당의 훌륭한 아들임에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 곁에 계시는 “산 뢰봉”입니다.

2019년 11월 28일

경제개발구 노인협회

박순애 올림

여: 네, 참 가슴이 먹먹한 사연이었습니다. 저희 방송의 열성 청취자이고 장춘시애청애독자클럽의 창시인의 한 사람인 윤영학 선생님의 병문안을 다녀온 이야기를 보내오신 박순애 청취자 수고 많았습니다.

남: 그렇습니다. 윤영학 선생님은 장춘시애청자애독자클럽의 설립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장춘시 조선족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일들을 해 오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구태구 음마하 양로원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여전히 청취자들을 이끌고 음마하애청자애독자소조를 설립하고 맹활약을 하고 계십니다.

여: 여러분들의 관심과 문안이 병마를 이겨내는 의지와 동력으로 변해 윤영학 청취자가 하루빨리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기를 저희도 간절히 바라면서 노래 한 곡 선물하겠습니다.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계속해 [퀴즈한마당] 코너로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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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즈한마당]

남: '퀴즈한마당' 코너에서는 매달에 한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지식경연과는 달리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정답을 찾아나서야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 퀴즈문제를 내어 드리기 전에 먼저 12월의 퀴즈 답안을 보내오신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취자 편지) 장춘애청자 애독자클럽 음마하 소조

송휘, 리명란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연말사업총화로 매우 분망히 보내시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부득이한 경우에 봉착해 부득이 필을 들게 되어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우리 애청자소조성원은 모두 양로원에 입주한 노인들이어서 평균 연령이 85세이고 문화 정도는 소학교입니다. 하여 CRl방송에서도 특히 통속적인 언어로 진행되는 “편지왔어요”프로와 퀴즈풀이를 주로 청취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12월 퀴즈풀이가 까다로워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입니다. 춘절버금으로 가는 작은 설은 보통 섣달 그믐날인데 1년 입춘부터 시작되어“대한”에 끝나는 24절기외 또 무슨 절기가 있는지? 문제의 절기의 이름을 요구하는데 “절기”라는 두 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지도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중국에서나 조선, 한국에서 작은 설을“제야”(除夕)라고 하는데 이것이 절기에는 속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속한 답장을 기다립니다.

장춘애청자 애독자클럽 음마하 소조

2019, 12, 10

여: 네, 그럼 계속해 12월의 퀴즈문제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설날에 버금가는 작은 설날이라는 의미의 절기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남: “설날에 버금가는 작은 설날이라는 의미의 절기의 명칭은 무엇일까요?”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 편지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면 되고요, 우편 번호는 100040번입니다.

남: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시고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송휘, 진행에 송휘, 이명란이었습니다.

남: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주 같은 시간에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남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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