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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향이-3
2009-03-30 16:01:51               
cri

《혹시 선생님께서 저를 〈현지처〉로 보는게 아니예요?》

내가 할 말을 미향이가 먼저 꺼내니 내 쪽이 오히려 당황해났다.

《뭘…》

《아까 우리 사장님을 보는 눈길이 다르던데요.》

녀자들의 눈치 하나만은 알아줘야 하겠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이 부근엔 〈현지처〉 노릇을 하는 애들이 많아요. 그애들마저도 저를 자기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요.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그게 아니얘요. 우린 결혼할 사이예요.》

미향은 잠시 말을 끊고 호 하고 한숨을 내쉰다. 나는 나대로 잠자코 담배를 피우면서 그 아래 말을 기다렸다. 미향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사장님은 제가 처음 입사한 회사 사장님이 소개해주었어요. 안해와 사별한지 5년이나 되는 고독한 분이신데 자식 둘은 미국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따로 살고 있대요. 비록 나한테는 삼촌벌이 될 분이지만 전 그 분의 몸에서 묻어나는 고독하고도 우울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어요. 그 분도 내 몸에서 풍기는 슬픔에 가까운 그 우울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어요. 말하자면 동병상련이라 할가…》

그래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정심이고 사랑은 아니잖아. 이런 말이 있어. 동정 때문에 결혼한다는 것은 신화에 불구하다. 대부분은 안정감을 바라는 마음에서 또는 공허감을 채우자는 마음에서 그것이 아니면 그 어떤 실리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을 거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결혼까지 가야할 사랑이 아니야. 지친 새는 아무데나 앉는다는 말이 있어. 삶에 지친 몸이라고 주저없이 아무데나 기댔다가는 다시 춰설수 없게 영영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나의 입으로 나온 말은 엉뚱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하는거니까. 그 선택이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오.》

《고마워요…》

이때 커피숍의 복무원아가씨가 미향한테로 다가왔다.

《손님 한분이 찾아요.》

《누군데?》

《지난번에 왔던 그 사람.》

이말에 미향의 얼굴엔 삽시에 짜증기가 내비쳤다. 그는 지갑에서 백원짜리 한 장을 꺼내 복무원에게 주며 말했다.

《다시 찾아오지 말라고 하세요. 와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세요.》

복무원아가씨가 돈을 받아쥐고는 밖으로 나갔다. 바깥쪽을 보니 창밖에 키가 훤칠한 한 사내가 때국에 절은 양복을 어깨에 걸치고 서 있었다.

《누군데?》

《거지신세가 된 그런 사람이 있어요.》

우린 한참 더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못했구만. 보내준 번역료를 잘 받았소. 집사람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라더구만.》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훗일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련락주세요.》

전에는 말끝마다 도와달라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도움받을 일이 있으면 련락하라고 한다. 나는 주객이 전도된다는 그 말을 실감했다.

그날 내가 미향이와 헤여져 공공뻐스 정류소로 가는데 등뒤에서 우리말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잠간만.》

뒤를 돌아보니 아까 커피숍밖에 서있던 사내였다. 아마 사내는 내 뒤를 따랐는 모양이다.

《절 불렀습니까?》

《네. 미안하지만 저하고 잠간 이야기를 나눌수 없겠습니까?》

《뉘신지?》

《미향의 남편되는 사람입니다.》

《네?!》

《어디 가서 잠간 앉으시지요.》

나는 그 사내를 따라 부근에 있는 간의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음식점엔 손님이 없었다. 사내가 절인 락화생에 북경 이과주 한병을 불렀다. 나는 잠자코 사내만 지켜봤다. 사내는  술이 오기 바쁘게 내 앞의 잔에 술을 부었다. 술 붓는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자기 앞잔에다 술을 붓더니 마시자는 말도 없이 먼저 한잔 술을 단숨에 비웠다. 영락없는 알콜중독자였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쓱 훔치고는 사내는 말을 꺼냈다.

《미안합니다. 보다싶이 알콜중독자입니다. 술 한잔 먹어야 마음이 진정되고 말도 제대로 나갑니다. 량해해 주십시오.》

방금 마신 술이 인차 사내얼굴에 오르고 있었다. 먼저 코등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내는 지절지절 말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난 미향이한테 할짓 못할짓 다 한 놈입니다. 내 얘기 미향이한테서 들으셨습니까?》

나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어보였다.

《난 말입니다. 한때는 미향이의 백마왕자였습니다. 지금 이런 모습이지만 그땐 처녀들의 시선을 모을수 있는 츨츨한 모습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꼴이 됐습니다. 모두가 다 내 탓입니다.》

사내는 술 한잔을 벌컥 마셔버렸다.

《다 이 술과 계집 때문입니다. 거 있잖습니까 남자는 주색에 망한다는 말. 내가 바로 그렇게 망한 놈입니다…》

사내는 눈물까지 찔끔찔끔 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못봐줄 꼴불견이 둘 있는데 하나는 녀자가 하품을 짝짝 해대는 꼴이고 다른 하나는 사내가 눈물을 찔찔 짜는 꼬락서니다.

《난 미향이 없인 못삽니다. 절 도와주십시오. 아까보니 미향이와 가까운 사이같은데 곁에서 말 좀 해주십시오. 내가 무릎꿇고 지난 잘못을 빌고 앞으로 미향이를 황후같이 모실테니까 다시 가정을 회복하라고 설복해 주십시오.》

《그건 당사자끼리 나눌 얘긴데…》

《내 말은 미향의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자식아 그 꼴 해가지고 천하에 좋다는 말 다 긁어모아 해도 들어줄 사람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난 결심했습니다. 미향이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난 미향이와 함께 죽고 말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지지 않지요. 자 보십시오.》

사내는 털내의를 훌쩍 들어보였다. 바지 앞섶밑으로 쑥 찔러넣은 남포약 두 개가 보였다. 나는 벌어진 입을 한참이나 다물지 못했다. 사내가 털내의를 내리고는 또 술 한잔을 단숨에 굽냈다.

《이건 위협이나 공갈이 아닙니다. 이제 날 구제해 줄 사람은 미향뿐입니다. 지금도 난 미향의 신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술 살 돈도 미향이가 준겁니다.》

사내는 또 술 한잔을 털어넣었다. 그 꼴 보기싫고 또 말같지도 않은 말 듣기도 싫어 내가 한마디 했다.

《자네 자폭할 용기가 있나?》

《네?》

사내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자살할 용기가 있나 말이야!》

내가 술상을 내리쳤다. 술잔이 튀여올랐다.  

《무슨 말씀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있나 말이야?》

《전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좋아.》

내가 라이타불을 켜들었다.

《털내의를 올리게.》

《네?》

《내가 그 남포약에 불을 달아 줄테니까.》

이말에 사내는 몸을 뒤로 젖히다가 걸상과 함께 벌렁 뒤로 나가 넘어졌다. 나는 라이타불을 켠채로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처럼 눈만 꺼벅이고 있는 사내한테로 다가가 라이타불을 사내의 코앞에 대며 말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아예 이 자리에서 자폭하고 말아. 너 같은 인간은 언녕 죽은 목숨이야. 두 번 다시 죽겠다면 내가 불을 달아주지.》

사내는 후-하고 입김을 내불어 라이타불을 꺼버렸다.

《보아하니 죽을 용기는 없구만그래. 일어나!》

사내는 고스란히 일어나 앉았다.

《죽을 용기가 없으면 살 의욕이라도 가져. 조선족 사내라면 단 하루라도 사내답게 살아.》

말을 마치고 나는 음식점을 나왔다. 등뒤로 사내가 광기를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자식아 넌 대체 누구냐? 년놈들 다 죽이고 말겠다. 죽이고 말겠어…》

음식점에서 나오니 기동순찰차 한 대가 비상경보음을 울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기동순찰자는 간의음식점앞에 와서 급정거했다. 아마 간의음식점주인이 그 사내가 내보인 남포약을 보고 《110》에 신고했는 모양이다.

사내가 폭발물을 지녔으니 영락없이 잡혀갈 신세다.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제130조에는 총기, 탄약, 또는 관제 도검 또는 폭발성, 가연성, 유독성, 부식성 물품을 비법적으로 휴대하고 공중장소 또는 공공교통수단에 들어가 공공안전에 위험을 미쳤고 그 정상이 엄중한 자는 3년 이하의 유기징역, 구역, 또는 관제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형법조항에 따르면 사내는 적어도 구역형은 면치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내의 몸에서 나온 것은 남포약이 아니라 남포약 겉종이로 씌운 나무토막이였다. 경찰도 너무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경찰이 나한테 물었다.

《이 사람과 어떻게 되는 사입니까?》

《그저 우연하게 만난 사람입니다.》

《함께 술을 마셨다더군요.》

《술은 저사람이 혼자 마셨습니다.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여길 들어오게 된겁니다.》

《이 사람 정신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알콜중독자는 분명한데…》

《심한 알콜중독자는 정신병환자에 속하지요.》

하긴 그랬다. 알콜중독도 정신질환에 속하니까.

《이런 사람한테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데…》

경찰은 이렇게 말하고는 그 사내에게 일가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북경에 있는가고 물었다. 사내가 틀림없이 미향의 이름을 대려니 했는데 예상밖에도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래도 미향의 이름만은 팔고 싶지않았던 모양이다. 누굴 위협하고 공갈치려고 가짜 남포약을 가지고 다녔는가고 물으니 사내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이 말에 경찰은 또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웃음거리가 된 사내를 같은 민족으로서 지켜본다는 것이 망신스러웠고 고역스러웠다. 같은 민족이라도 이런 구제불능 사내의 보호자로 나설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사내는 가짜 폭발물로 공중질서를 파괴한 죄로 구역당한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없는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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