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05 15:16:35 출처:cri
편집:朱正善

바이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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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은 중국 남방지역의 오래된 민족이다. 바이족의 인구는 2000년 현재 약 185만명으로 집계되어  중국에서 인구규모가 15번째로 큰 소수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족은 중국에서 집거정도가 비교적 높은 민족으로서 중국 남방의 운남과 귀주, 호남성에 살고 있으며  그 중 운남성 대리(大理)바이족 자치주에 약 80%의 바이족이 모여 살고 있다. 대리는 바이족의 민족 기원지역이자 조상들의 거주지였고 지금의 바이족의 주요한 집거지이다. 그외 사천성과 중경시에도 바이족들이 일부 산재해 있다.  

바이족은 역사상 ‘백자’(白子), ‘백니’(白尼),백화(白伙)라고 스스로를 불렀으며 그 뜻은 ‘하얀 사람’이다. 그외 한족과 기타 민족들은 과거 바이족을 ‘민가’(民家), ‘나마’(那馬) 등 무려 60여가지로 호칭했는데 대리와 곤명, 호남성 상식(桑植)일대의 바이족은 한어로 ‘민가 ’, 여강(麗江),적경(迪慶), 노강(怒江)일대의 바이족은 나시어로 ‘나마’,귀주 위녕(威寧)일대의 바이족들은 성씨가 7개라고 해서 ‘칠성민’(七姓民)으로 불렸다.

문헌의 기재에 따르면 약 4천여년전의 신석기 시대에 바이족 선민들은 이미 운남 창산(蒼山) 이해(洱海)와 전지(滇池)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농경과 어업, 수렵 유목생활을 해왔다. 2008년 운남 검천(剑川) 해구(海口)에서 발굴된 3000여년전 고인류 문화유적이 당시 이해지역에 인류가 거주했으며 운남의 최초의 청동기문명을 배출시켰음을 입증해준다.

바이족의 선민은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전쟁, 영토확장,상어무역, 변강 주둔 등등의 역사적 원인으로 이해(洱海) 주변의 토착민과 곤명인이 하만인(河蛮人), 청해-티베트 고원에서 남하한 저인(氐人), 강인(姜人),그 외 부분적인 수인(叟人),전인(滇人), 한인 등 여러 종족과 융합되어 형성된 민족이다.   

바이족의 최초의 왕국인 백자국(白子國)은 전국시기에 창건되었으며 춘추시기로부터 당나라 초반에 이르기까지 바이족의 선민들의 대외상업무역교류가 초보적인 규모를 이루었다. 또 화하(華夏)문명과 고인도 문명이 잇달아 이해지역에 전파되면서 바이족의 선민들은 부단히 학습하고 벤치마킹해 범(梵), 한 특색이 다분한 바이족 민족문화도 초보적으로 형성하였다. 당나라와 송나라때 바이족은 운남성 대리 지역에서 선후로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을 건립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후 대리국이 몽골에 의해 멸망하면서 원명청 시대 바이족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점차 중원과 깊게 융합되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원나라 전에 일부 바이족과 이족, 다이족(傣族)의 선민은 모두 ‘백만’(白蛮), ‘오만’(烏蛮), ‘상방이’(上方夷), ‘하방이’(下方夷), ‘백이’(白夷)등 ‘만’과 ‘이’로 불렸으며 원나라 이후엔 문화적 속성이 한족에 근접한 군체가 하나의 민족으로 간주되어 ‘백인’이라고 불렸다. ‘백인’이 바로 바이족 선민의 최초의 통일된 민족명칭이다. 그러다 명나라와 청나라 이후에 바이족은 ‘민가’로 불렸고 새 중국 건국후인 1956년 11월에 상당수 바이족 인민들의 염원에 따라 ‘바이족’을 통일된 민족명칭으로 공식 확정했다.

명나라때부터 1956년 바이족의 민족신분이 확립되기까지의 수백년간은 운남 바이족이 꾸준히 한화된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의 운남 바이족들이 대리주 외 기타 지역에 띠염띠염 살고 있는 사실도 이를 말해준다. 역사학자인 마요(馬耀)는 바이족은 티베트 미얀마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이 각이한 갈래의 민족들을 동화시켜 형성된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 바이족 지역의 사회경제발전은 불균형적이였다. 일부 산간지대 특히는 고산지역에서는 여전히 봉건영주제나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원시공사(原始公社)도 잔재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바이족의 주요집거지인 대리중심지역에서는 한족지역과 마찬가지로 1953년에 민주개혁을 완성하고 1956년에 사회주의 개조를 마쳤다. 중국공산당11기 3중전회이후 바이족 지역은 빠른 발전을 가져와 교육과 의료보건이 크게 개선되고 바이족 인민들 중에서 교수나 작가, 의사, 과학연구 인원 등 인재도 많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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