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무용 '두룽의 정'
먼저 두룽족의 창세기신화 “카워카푸가 만물을 가르다”를 알아본다. 이는 설산의 물에서 만물이 갈라져 나왔다는 신화적인 설법으로 서남 소수민족 신화중에서도 아주 독특하다. “미까펑”이라는 신화는 천녀가 곡물의 종자를 인간에 가져다 주었다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는 서남의 이족, 나시족, 챵족의 신화와 비슷한 점이 많다. 두룽족의 이런 신화들은 이들의 독특한 원시종교신앙인 요정숭배와 자연숭배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대 인류가 대자연과 싸우던 정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신화를 통해 우리는 고대의 두룽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들이 살았던 지리적환경을 유추해볼수 있다.두룽족은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신을 주제로 하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이를 구전의 형식으로 보존해 왔다. 이런 신화들중에는 창세기 신화외에도 곡물의 기원신화, 해를 쏘던 신화, 인류와 요정과의 싸움을 다룬 신화, 홍수기원 신화가 있는가 하면 불, 곡물종자, 가축, 약, 문자 등의 유래를 담은 신화도 있어 흥미롭다.
이들의 시가문학를 보면 수렵가를 포함한 노동가, 풍속가, 사랑가 등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원시사회 해체시기의 문학방식이 많으며 이는 원시창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즉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성을 나타내고 시와 노래, 무용의 삼위 일체를 이루며 주로 자연정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 등을 보여준다.
예술: 두룽족은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 생산과 수확, 수렵, 혼인, 경축 등 장소에서 노래와 춤으로 자신의 정감을 표현하고 내면의 희로애락을 토로한다. 평시에 많이 사용하는 악기로는 현, 피리, 가죽북 등이 있다. 성년이 되면 즉흥적으로 노래를 짓거나 춤을 출수 있다. 이들의 아름다운 노래는 구성진 반주소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동경과 진솔한 감정을 드러낸다. 힘있고 빠른 가락에 맞춰 추는 춤은 칼이나 활을 들거나 어깨와 손을 서로 잡고 흥겹게 추는데 이는 생활을 즐기고 부지런하며 용감한 두룽족인들의 내면세계를 나타낸다.
언어와 문자: 두룽족의 언어는 한어-티베트어계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며 그 갈래는 아직 확정된 결론이 없다. 그러나 언어학자들 중에는 이들의 언어가 징퍼어, 로바어 등 다른 소수민족의 언어에 근접하기에 같은 갈래일 가능성을 주장한다. 두룽어는 크게 두가지 방언으로 나뉘는데 두룽강의 두룽어 방언과 공산지역 누강두룽어 방언으로 나뉜다. 이들은 라틴자모를 기초로 하는 병음문자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 이들은 문자가 없었으며 결승, 목각 방법과 그림, 자수 도안으로 여러가지 내용을 표달했으며 이는 문자의 시작단계라고 볼수 있다. 20세기 50년대에 와서 미얀마에 있는 일부 두룽인들이 미국 전도사와 함께 현지말을 표준음으로 하고 라틴자모를 차용한 병음문자를 창제했다. 이 문자는 두룽족지역에 기독교를 포교하는 행사중에 주로 쓰였고 “성경”의 번역과 기독교의 교리 등을 번역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일왕문”이라 했다. 1983년에 현지인들의 소망에 따라 운남성 관련 부문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병음문자방안을 제정했으며 방언과 토착어, 단어 등에 대한 대비비교를 통해 표준어음을 쓰는 문자를 창제하고 1984년부터 공산현 두룽족들 중에서 시범 사용하였다.
두룽족의 천문역법: 두룽족은 자신들만의 역법계산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장기간의 생산과 생활중에서 자연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들은 큰 눈이 내려 산길을 막은 때로부터 다음해 큰 눈이 내릴 때 까지를 1년으로 했으며 이를 “극우(極友)”라고 하고 1년을 열12개의 부동한 명절과 달로 나누었다. 1월은 아멍이라고 이름했는데 이는 눈오는 달을 지낸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모두가 휴식을 위주로 한다. 2월은 아보우라고 하는데 이는 풀이 나오는 달이고 산천초목이 생장을 시작하는 절기이며 농경을 시작한다. 3월은 파종의 달이며 4월은 꽃피는 계절이고 파종을 끝낸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와 생활과 관련되는 내용으로 12월까지 이어진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두룽족인들은 선진적인 역법을 배웠고 과학적인 영농법을 익혔다. 현재 이들은 한족과 다른 민족들이 사용하는 역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민간의 습관에 따라 “파종의 달”, “수확의 달”, “설 쇠는 달” 등을 여전히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두룽족의 복장문화: 두룽족의 전통복장은 매우 간단한 특징을 보인다. 남녀복장 모두가 어깨를 드러내고 종아리에는 각반을 찬다. 남자들은 왼쪽에는 칼을 차고 오른 쪽에는 광주리를 멘다. 여자들은 마로 짠 담요식 복식으로 무릎까지 두른다. 이런 복식은 낮에는 옷이요,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했다. 과거에 일부 남자들은 나뭇 잎으로 허리 아랫부분을 가리는 경우도 있다.
두룽족은 남녀 모두가 산발을 하며 앞머리는 눈썹까지 드리우고 뒷머리는 어깨까지 덮으며 좌우는 귀를 가리웠다. 과거에는 귀고리, 귀걸이를 하거나 목걸이를 많이 했는데 지금에 와서 남자들은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또 여자들이 얼굴문신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통상 열두세살 정도되면 얼굴문신을 했다. 지역마다 문신을 하는 모양이 달랐는데 두룽강 상류 일대는 이마, 두 볼, 코와 아래위 입술에 꽃 문신을 했다. 하류 일대에서는 코끝과 아래입술 부위에 문신을 했다. 이 문신의 내력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두룽족의 여인들의 성년식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무술적인 수요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혹자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외족의 침입중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신을 했다 하고 또 혹자는 두룽족의 이미 소실된 토템과 일종의 연계가 있다고 본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이런 얼굴문신 풍속은 기본상 사라진 상태이다.